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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완성체 - 색출 우리의 피부색은 모두 까맣다. 1년에 한두 번 다 같이 변하기는 하지만 곧 원래의 검정으로 돌아온다. 같은 피부색은 단순히 동질감만을 연상케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안전의 지표이다. 어느 순간부터 하얀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기원은 알 수 없다.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은 배척당하고, 결국 색출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수가 제법 많아질 때면 제거 작업이 이루어진다. 하나 둘 씩 잡아내어 내버리듯이 쫓아낸다. 그들은 그런 그들 스스로의 운명을 잘 알기에 우리들 사이에 숨어든다. 그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오인하여 몇몇 까만 이들이 같이 팽개쳐지는 일도 다반사다. 사실 그들이 끼치는 그 어떠한 부정적인 것은 존재 하지 않는다. 물론.. 더보기
완성체 - 평화시스템 품속에 아들의 모습이 담긴 종이를 넣었다. 심호흡을 하라고 그의 내부가 소리쳤다. 몇 번의 긴 숨이 오고가자, 차츰 진정되었다. 수명은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는 정면에 있는 붉은 색 버튼을 누르려 늙은 몸을 이끌고 다가갔다. 침침해진 수명의 눈에도 새하얀 벽면의 빨간색은 시야에 쉽게 들어왔다. 천천히 버튼을 누르자, 방 중앙 천장에서 직사각형의 하얀 것이 거꾸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벽면과 똑같은 재질로 그 끝에는 컴퓨터 화면이 꺼진 채로 달려 있었다. 수명은 아무런 소리 없이 내려오는 그것을 돌아보았다. 덕분에 소름 끼치는 정적은 유지되었다. 그것이 다 내려와 멈추자 컴퓨터 화면 앞바닥에서는 철제 의자 하나가 솟아올랐고, 그 왼편에는 나무로 된 관이 시간차로 올라왔다. 수명은 걸음을 떼어 자리에 .. 더보기
버림받은 녀석들 -1 "야!일단 관물대에 대충 쳐박고 다들 씻으러 갈 준비해! 서말년 뭐합니까?""뭐하긴 씻으러갈 준비하지 ㅋㅋㅋㅋ"이틀째 입고 있던 속옷을 쓰레기통에 쳐박는 내게 분대장 녀석이 소리쳤다.말년 휴가 20일 남기고 혹한기라니... 운도 지지리도 없던 군생활의 마지막 훈련이 끝났다. 노팬티에 활동복만 걸치고 그동안 짱박아둔 새 속옷을 꺼내들고 샤워장으로 향한다. '1월 5일 전역자들 행정실로 오시기 바랍니다.'"뭐냐? 또 왜 불러대고 지랄이야!!!"한 내무실에 알동기 3명... 타소대에 있는 몇명..행정실에 모이니 중대장이 우릴 반긴다. 우린 그 누구도 그가 반갑지 않았다."니들이 가장 고참이니 희생한번 해라""어떤걸 말이십니까?""오늘 불침번 너희가 돌아가면서 서라"'니미....'"그런데 중대장님 저희 24일날.. 더보기
집사의 하루 -11 망할 독감. 설 명절이 끝나고 얻은것은 돈도 체중도 아닌 독감이란 녀석이다. 면역력이 한없이 약한 우리 자취생들. 감기 한번 제대로 걸리면 왠지 떨어져 나가질 않는다. 부어버린 목. 줄줄 흐르는 콧물. 열때문에 벌개진 얼굴. 그리고 두통. 전기장판을 빵빵하게 틀어두고 두꺼운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땀을 한껏 흘리면서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새벽이 되도록 잠을 못잤다. 감기약에 취해 몽롱해 있는 상태. 어디선가 시원한 무언가가 머리위에 얹혀졌다. 무언가 하고 눈을 뜨니 머리 맡에 앉아있는 리배냥. 항상 이녀석이 물을 마실때면 양발을 다 적시곤 하는데... 마치 '집사 아프지마..'라며 바라보는듯한 눈빛으로 머리맡에 앉아있었다. 그게 너무나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으니 그르릉대는 소리를 내기 .. 더보기
삭제하시겠습니까? "야 괜찮냐? 너무 마신거 아냐?" 대학 동기들과의 술자리. 대학 OT에서 처음만나 10년 가까이 만나온 친구들. 그중 한명이 얼마뒤 결혼한다며 모은 자리. 이제 슬슬 하나둘 결혼이란걸 하는 나이가 되었다. 남자4명과 여자2명. 이 녀석들 중 올해 결혼하는 녀석이 세명이다. 한번에 싹 빠져나가는구만. 간단한 저녁 식사와 오랫만에 얘기좀 하자며 옮긴 술자리. 오늘따라 술이 안받는다. 오늘 이자리를 만든 녀석. 참 많이도 변했다. 어릴적 순수했던 모습은 어딜갔는지... 혼수며 예물이며 이런 말이 나올때마다 내 말수는 줄어만간다. 그때마다 손은 비어있는 술잔을 채우고 녀석들의 대화를 엿들을 뿐이다. "야 근데 니네 선물 뭐해줄거야?" "글쎄다~" "니네 갈때도 서로 다 해주자" 티비? 냉장고? 에어컨? "이 .. 더보기
집사의 하루 - 10 "리배~ 일루와~ 리배~ 리배~"모든 불이 꺼진방. 매트에 누워 잠들기 직전 항상 팔을 두드리며 리배를 부른다.그러면 어디서 달려온건지 후다닥 달려와 품에 안겨드는 녀석.요즘 떠도는 '낮이밤져'(낮엔 이기고 밤엔 져주는) 그런 녀석.서로 부비적거리며 잠든지도 거의 4개월이 돼간다.이녀석도 많이 컸고 또 그만큼 장난과 사고치는 일도 늘어났다.뭘 먹으려 할때면 항상 달려와 자신이 검사?를 하는 그런 녀석이다.하지만 그렇게 매번 얻어먹으려 달려들지만 항상 실패한다.그런 리배를 놀리는 재미도 참 쏠쏠하다. "리배찡~ 우리 좋은데 갈까? 오늘 형이 쏠게 가자~"이말을 알아 들은걸까? 가방에 슝~하니 들어간다.녀석과 같이 향했던 곳은 동.물.병.원. 마지막 예방접종 때문에 방문했던 날이다.집에 오는길. 가방에서 머.. 더보기
자취생의 새벽 새벽녘 저릿한 오른팔의 느낌에 잠에서 깬다. 곤히 잘도 잔다. 저녁시간엔 얼마나 싸웠는지 모른다. 그래도 잘 시간이 되니 품안으로 먼저 파고들어오더니 지금은 내 팔을 베고 곤히 자고있다. 팔을 살며시 빼는데 부스럭 거리는 이불 소리 때문인지 갸웃 고개를 흔든다. 참 이쁘다. 나도 모르게 뒷머리에 뺨을 비벼댔다. 왠지 잠이 오지 않아 티비나 잠깐 보다 잘 생각에 리모컨을 찾는다. 배터리가 다 된건지 오래된 티비라 그런것인지 버튼이 먹히질 않는다. 젠장. 괜한 짜증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여 이불위로 리모컨을 집어 던졌다. 10평이 채 되지 못하는 방 한칸. 10년은 된듯한 텔레비젼. 낡은 옷장과 책상... 그게 내가 살고있는 이 방이다. 100만원을 겨우 넘기는 월급.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하다. 답답하다. ".. 더보기
종착역 파란 하늘이 싱그러운 가을 아침. 차갑지만 청량감이 느껴지는 바람이 불어오는 날. 그녀를 만나는 날이다. 언제 어떻게 그녀와 알게 되었고 이러한 사이가 된것인지 모를 만큼 우린 그렇게 만났다. 가끔 만나 커피 한잔의 수다와 술자리, 때론 서로의 고민을 상담해 주기도 하며 그렇게 지내왔다. 친한 오빠 동생으로 지낸지도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흔히들 말한다. 남 녀 사이에 친구란 없다고. 이런 우리 사이를 보는 친구들은 내게 '너흰 첫 단추부터 잘못 맞았어'라고 말한다. 그 시간동안 혼자만 간직하고 있을 마음을 내비추기엔 이미 늦었다고... 애초에 서로 알고 지낸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내 마음을 보였다면 이런 뜨뜻 미지근한 관계는 없었을 거라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엔 첫 단추는 제대로 채워졌다... 더보기
집사의 하루 -9 이사 가는 날 살고 있던 자취방 계약이 끝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방을 빼야 하는 날짜와 입주일이 겹치지 않아 며칠 간 인근에 사는 후배네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살림살이도 거의 없는 남자 방이라 짐을 옮기는 건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지만, 정작 리배 녀석이 걱정이었다. 고양이는 보금자리가 바뀌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 다는데... 게다가 짐을 옮기기로 한 날짜는 12월 30일. 연말이다. 31일에 본가에 올라가 1일 저녁에나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라 거의 이틀을 혼자 보내야 하는 녀석이 걱정되었다. 후배와 같이 이사짐을 옮기면서 집안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니 리배도 뭔가 이상한걸 눈치 챈듯이 우리들 다리 사이에서 계속 왔다 갔다한다. 캣타워를 분해 할때는 '이봐 집사. 당신 대체.. 더보기
집사의 하루-8 누워서 티비를 볼 때.. 자리에 누워 책을 볼 때.. 방안에 혼자 있을 때면 리배 녀석은 어느새 다가와 날 앞발로 톡톡 건드린다. 관심좀 가져달라고.. 그러나 내가 머릴 쓰다 듬거나 하려고 하면 바로 후다닥 뛰어가 캣타워 밑으로 들어가 버린다. 마치 이런 관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말이다. 이자식아 이런건 안닮아도돼... 평소에 울지도 않는 녀석이 꼭 내가 화장실에 가거나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않고 있으면 그땐 꼭 울어댄다. 그것도 큰소리도 아니고 작게 웅얼거리듯이... 그럴 때면 '어디 갔어.. 불안해..보고싶어 빨리와' 라고 말하는듯 하다. 그리고 정작 눈앞에 있을 때면 내 앞에 가지런히 앉아 가만히 쳐다본다. 또 누워있을 때면 가슴위로 올라와 가만히 앉아있는다. 하지만 만지면 또 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