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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완성체 - 색출 우리의 피부색은 모두 까맣다. 1년에 한두 번 다 같이 변하기는 하지만 곧 원래의 검정으로 돌아온다. 같은 피부색은 단순히 동질감만을 연상케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안전의 지표이다. 어느 순간부터 하얀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기원은 알 수 없다.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은 배척당하고, 결국 색출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수가 제법 많아질 때면 제거 작업이 이루어진다. 하나 둘 씩 잡아내어 내버리듯이 쫓아낸다. 그들은 그런 그들 스스로의 운명을 잘 알기에 우리들 사이에 숨어든다. 그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오인하여 몇몇 까만 이들이 같이 팽개쳐지는 일도 다반사다. 사실 그들이 끼치는 그 어떠한 부정적인 것은 존재 하지 않는다. 물론.. 더보기
익숙한게 좋은거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잠을 채 떨치기도 전에 너부터 찾는다. " 아, 이제 없지... " 익숙함의 다른 이름은 망각일까. 익숙하다보니 이제 네가 없다는 것조차 잊게 된다. 넌 언제나 내 곁에, 금방이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있다는 당연함과 익숙함. 그들에게 배신 당한 나의 초라한 혼잣말. 밥을 먹어도 왠지 허기가 가시질 않아 내 입은 그저 한숨만 내뱉는다. 허전하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 생활에 나는 없었다. 날 울고 웃게 하는 너로 인해 살았나 싶다. 처음엔 멋모르고 달려들다 목메이다가도 반복되는 달콤함과 쓰라림에도 익숙해져 계속 찾게 된다. 당연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왜 했을까. 왜 항상 내 옆에 있어주던 너를 떠나보냈을까. 하루의 시간이 이렇게 긴 줄 몰랐었다. 어리석었다며 날 욕하고 그러면.. 더보기
반짝이는 눈 “퍽” 내 주먹이 녀석의 볼에 정확하게 맞았다. 주먹이 조금 얼얼했지만 참을 만하다. 녀석은 여전히 사나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얀 눈밭에 붉은 피가 섞인 침을 뱉고 욕지거리를 쏟아낸다. 그렇게 몇 번을 주먹과 발길질을 주고 받았다. 숨이 거칠어졌다. 나도 그리고 그 녀석도.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옆 반 거짓말쟁이 녀석의 말을 듣고 와서 시비를 거는 녀석을 보며 억울하다 말했지만 녀석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3년을 보아온 나보다 한달 전에 이름을 알게 된 옆 반 거짓말쟁이의 말을 믿는 저 녀석이 내 친구였다는 것도 분하다. 그래서 울고 싶을 정도로 아픈데 억지로 꾹 참는다. 싸움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 굳이 정하지 않았지만 그건 우.. 더보기
아이와 엄마 아이는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그저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점점 소리가 커졌다. 커지는 소리에 분노가 섞이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아이는 잠깐 뒤 돌아 보지만 이내 모니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두려운 감이 생겼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물거품으로 만들기엔 너무나 아까워 그렇게 하지 못하고 말았다. 아이가 바라보는 모니터에는 이런 저런 그림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엄마는 아이의 뒤에서 아이가 바라보는 모니터를 같이 바라봤다. 엄마는 아이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분노를 넘어선 차분함으로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엄마의 낮은 목소리에 경기를 일으키듯 놀라고 말았다. 더 이상 모니터 화면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의 몸 속 깊은 곳에서 쿵닥.. 더보기
그녀다. 2 ep. 달도 안 뜰때가 있다. 벚꽃놀이에 빠진 커플 저주 기념. 아니 사실 그건 내 바람이고 하아. 평소 연주하던 동아리 밴드 공연을 끝내고 뒷풀이로 거하게 먹다가 먼저 가보겠노라며 자리를 떴다. ' 아까 미친듯이 뛰더니 지금은 왜 빼냐며 더 있다가 ' 라고 붙잡는 형들에게 ' 더 있으면 막차도 못타요, 저 돈 없어서 택시 못타요. ' 했더니 택시비 줄테니 더 먹자고 말리긴 했는데 사실 막차보다 남자들끼리 먹는 술이 맛있어봤자 여자껴서 먹는 것보다 더 하겠냐. 그냥 나왔다. 내가 여자에게 인기가 없어서 그렇지 이거봐, 남자들에게는 인기 많다니까? 남자들에게 인기 있어봤자 어디에 쓰냐고 하겠지만 나름 뭐 쓸데가 있을건데... 그 흔한 소개팅 한 번 안들어오는 걸 보니 쓸데없을거란 네 생각이 맞는 것 같기도.. 더보기
방바닥과 아이 아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놀람이었다. 자신의 행동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지 몰랐다. 아니 왜 그렇게 혼나야 하는지 몰랐다. 자신을 갑작스레 혼내는 엄마의 호통에 깜짝 놀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 행동이 엄마의 호통을 불러올 것임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호통이 이렇게 큰 소리일줄은 몰랐다. 전혀 예측하던 상황이 아니었기에 아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 그리고 아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졌고, 깊숙한 곳에 서려있는 한이 올라온듯 서럽게 울었다. 아이는 한참을 울었다. 그럼에도 엄마의 호통은 끝나지 않았다. 엄마도 이번에는 아이의 버릇을 고쳐보겠다는 심산인듯 했다. 아이는 울음이 길어지면서 자꾸 다른 생각이 났다. 처음에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혼.. 더보기
3. 쿠션, 소설책, 담요 ( 너와 나 ) 게임에 웹서핑 하면서 왠종일 만지작 거렸더니 이제 작작 만지라며 투정부리 듯 열을 낸다. 폰 주제에 주인님의 손길을 싫어하다니... 배터리 갈아끼울 겸 허리가 아파 잠시 일어났다. 그래, 내가 봐도 너무 폰만 잡고 사는 것 같긴하다. 아무 이유없이 그저 손가는 대로 만지작 거리다 보면 계속 달고 있게 되더라. 이걸 습관이라고 해야 할지, 버릇이라고 해야 할지. 이 참에 너도 열 좀 식히라고 내버려두고 책장앞에 섰다. 간만에 소설책이나 읽어볼까? 요즘 좀 안 보긴 했지...뭘 볼까 손끝으로 슥 훑다가 멈췄다. 아... 이걸 여태 안봤었네... 내 손을 멈추게 한 책을 꺼내들곤 자리를 잡는다. 쿠션을 등에 대고 무릎을 세워 담요를 덮고 그 위에 책을 놓는다. 읽어야지 해놓고 막상 시간이 없다, 읽을 기분이 .. 더보기
2. 휴대폰, 컴퓨터, 맥주 늘상 똑같은 회사생활 김부장 새끼, 지가 나이만 많으면 다냐. 왜 지가 하면 될걸 나한테 미뤄놓고 지랄이냐고.. 차마 입밖으로 시원하게 쏟아내지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처리하겠습니다만 연발한 뒤 자리 돌아오면 김부장 새끼 눈깔이 뒤통수에 싸늘하게 꽂힌다. 성질같으면 진짜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자 하고 싶은데 먹고 살기 급급한 처지니 역시나 오늘도 참아낸다. 매주마다 이번엔 진짜 회사때려친다 하면서 로또 한장씩 사는게 그나마의 위안이랄까. 칼퇴근에 눈치보다 할 것도 없는 책상에서 일하는 척하다 한시간 늦게 나왔다. 이렇게 기분 뭐같을 때 한잔 같이 할 친구를 찾고자 해도 몇안되는 전화부 목록을 내리다보면 어느새 통화버튼 한번 누르지도 못하고 스크롤바는 끝에 닿아 더 내려가지도 않는다. 내가 먼저 찾지 않으면.. 더보기
1. 우산,전화,다이어리 아직 해질때는 아닌데 하늘빛이 심상찮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햇살 가득하던 거리가 어둑해진다. ' 비온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비가 오려나? 우산도 없는데 비오면 안되는데... 곧 그치겠지? 아씨, 비오면 돌아다니기도 귀찮은데 흠... ' 창밖으로 그늘이 져가는 거리에 슬쩍 눈길 한 번 준 뒤 쓰고있던 다이어리로 다시 눈을 돌린다. 새해가 되고 이주나 지나서야 겨우 여유가 생겨 간만에 한적한 토요일 오후를 즐기던 참이었다. 올해는 부디 행복으로 가득찬 일년이 되길 바라며 새 것 특유의 냄새가 나는 신년 다이어리 빈칸위로 약간의 설렘섞인 다짐들과 희망적인 문구들을 적어내려간다. ' 음, 올해는 꼭 오빠랑 바다 보러 가야지. 살 좀 빼려면 고생 좀 하겠구나. 으휴. ' 빨간색 볼펜으로 ' 다이어트 ' 적고는 중요.. 더보기
그녀다. 1 ep. 떨어지는 벚꽃이 달빛을 머금다 ( 벚꽃도 늙어간다 ) 풋풋했던 첫사랑의 두근거림이 바람따라 끈적하게 흘러가기 시작하는 계절이 다가온다. 이곳 저곳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손에 손잡은 커플들의 거리. 너네 여기서 정모하냐. " 아나, 벚꽃축제 끝난거 아니었어?. " 딱히 나에게 피해준 것도 아닌데 애정어린 닭살행각에 아니꼬와 코웃음치는 나란 남자. 차가운 도시 남자라고 하기엔 모양새가 영 아니올시다인 그냥 남자. ' 아가들아, 이제 벚꽃놀이 끝났다. 딴데가서 놀아라. 형아가 니들 보고 있기 힘들다. ' 하고 싶지만 부러워서 그러는거라고 오해할까봐 입밖으로 뱉진 못했다. 뭐 사실 딱히 부럽진 않......긴 뭐가 부럽다. 젠장. 그래도 20대 초반 나름 잘나가던 쏠로였을 때는 친구들이랑 와서 벚꽃 흩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