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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익숙한게 좋은거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잠을 채 떨치기도 전에 너부터 찾는다. " 아, 이제 없지... " 익숙함의 다른 이름은 망각일까. 익숙하다보니 이제 네가 없다는 것조차 잊게 된다. 넌 언제나 내 곁에, 금방이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있다는 당연함과 익숙함. 그들에게 배신 당한 나의 초라한 혼잣말. 밥을 먹어도 왠지 허기가 가시질 않아 내 입은 그저 한숨만 내뱉는다. 허전하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 생활에 나는 없었다. 날 울고 웃게 하는 너로 인해 살았나 싶다. 처음엔 멋모르고 달려들다 목메이다가도 반복되는 달콤함과 쓰라림에도 익숙해져 계속 찾게 된다. 당연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왜 했을까. 왜 항상 내 옆에 있어주던 너를 떠나보냈을까. 하루의 시간이 이렇게 긴 줄 몰랐었다. 어리석었다며 날 욕하고 그러면.. 더보기
그녀다. 2 ep. 달도 안 뜰때가 있다. 벚꽃놀이에 빠진 커플 저주 기념. 아니 사실 그건 내 바람이고 하아. 평소 연주하던 동아리 밴드 공연을 끝내고 뒷풀이로 거하게 먹다가 먼저 가보겠노라며 자리를 떴다. ' 아까 미친듯이 뛰더니 지금은 왜 빼냐며 더 있다가 ' 라고 붙잡는 형들에게 ' 더 있으면 막차도 못타요, 저 돈 없어서 택시 못타요. ' 했더니 택시비 줄테니 더 먹자고 말리긴 했는데 사실 막차보다 남자들끼리 먹는 술이 맛있어봤자 여자껴서 먹는 것보다 더 하겠냐. 그냥 나왔다. 내가 여자에게 인기가 없어서 그렇지 이거봐, 남자들에게는 인기 많다니까? 남자들에게 인기 있어봤자 어디에 쓰냐고 하겠지만 나름 뭐 쓸데가 있을건데... 그 흔한 소개팅 한 번 안들어오는 걸 보니 쓸데없을거란 네 생각이 맞는 것 같기도.. 더보기
3. 쿠션, 소설책, 담요 ( 너와 나 ) 게임에 웹서핑 하면서 왠종일 만지작 거렸더니 이제 작작 만지라며 투정부리 듯 열을 낸다. 폰 주제에 주인님의 손길을 싫어하다니... 배터리 갈아끼울 겸 허리가 아파 잠시 일어났다. 그래, 내가 봐도 너무 폰만 잡고 사는 것 같긴하다. 아무 이유없이 그저 손가는 대로 만지작 거리다 보면 계속 달고 있게 되더라. 이걸 습관이라고 해야 할지, 버릇이라고 해야 할지. 이 참에 너도 열 좀 식히라고 내버려두고 책장앞에 섰다. 간만에 소설책이나 읽어볼까? 요즘 좀 안 보긴 했지...뭘 볼까 손끝으로 슥 훑다가 멈췄다. 아... 이걸 여태 안봤었네... 내 손을 멈추게 한 책을 꺼내들곤 자리를 잡는다. 쿠션을 등에 대고 무릎을 세워 담요를 덮고 그 위에 책을 놓는다. 읽어야지 해놓고 막상 시간이 없다, 읽을 기분이 .. 더보기
2. 휴대폰, 컴퓨터, 맥주 늘상 똑같은 회사생활 김부장 새끼, 지가 나이만 많으면 다냐. 왜 지가 하면 될걸 나한테 미뤄놓고 지랄이냐고.. 차마 입밖으로 시원하게 쏟아내지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처리하겠습니다만 연발한 뒤 자리 돌아오면 김부장 새끼 눈깔이 뒤통수에 싸늘하게 꽂힌다. 성질같으면 진짜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자 하고 싶은데 먹고 살기 급급한 처지니 역시나 오늘도 참아낸다. 매주마다 이번엔 진짜 회사때려친다 하면서 로또 한장씩 사는게 그나마의 위안이랄까. 칼퇴근에 눈치보다 할 것도 없는 책상에서 일하는 척하다 한시간 늦게 나왔다. 이렇게 기분 뭐같을 때 한잔 같이 할 친구를 찾고자 해도 몇안되는 전화부 목록을 내리다보면 어느새 통화버튼 한번 누르지도 못하고 스크롤바는 끝에 닿아 더 내려가지도 않는다. 내가 먼저 찾지 않으면.. 더보기
1. 우산,전화,다이어리 아직 해질때는 아닌데 하늘빛이 심상찮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햇살 가득하던 거리가 어둑해진다. ' 비온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비가 오려나? 우산도 없는데 비오면 안되는데... 곧 그치겠지? 아씨, 비오면 돌아다니기도 귀찮은데 흠... ' 창밖으로 그늘이 져가는 거리에 슬쩍 눈길 한 번 준 뒤 쓰고있던 다이어리로 다시 눈을 돌린다. 새해가 되고 이주나 지나서야 겨우 여유가 생겨 간만에 한적한 토요일 오후를 즐기던 참이었다. 올해는 부디 행복으로 가득찬 일년이 되길 바라며 새 것 특유의 냄새가 나는 신년 다이어리 빈칸위로 약간의 설렘섞인 다짐들과 희망적인 문구들을 적어내려간다. ' 음, 올해는 꼭 오빠랑 바다 보러 가야지. 살 좀 빼려면 고생 좀 하겠구나. 으휴. ' 빨간색 볼펜으로 ' 다이어트 ' 적고는 중요.. 더보기
그녀다. 1 ep. 떨어지는 벚꽃이 달빛을 머금다 ( 벚꽃도 늙어간다 ) 풋풋했던 첫사랑의 두근거림이 바람따라 끈적하게 흘러가기 시작하는 계절이 다가온다. 이곳 저곳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손에 손잡은 커플들의 거리. 너네 여기서 정모하냐. " 아나, 벚꽃축제 끝난거 아니었어?. " 딱히 나에게 피해준 것도 아닌데 애정어린 닭살행각에 아니꼬와 코웃음치는 나란 남자. 차가운 도시 남자라고 하기엔 모양새가 영 아니올시다인 그냥 남자. ' 아가들아, 이제 벚꽃놀이 끝났다. 딴데가서 놀아라. 형아가 니들 보고 있기 힘들다. ' 하고 싶지만 부러워서 그러는거라고 오해할까봐 입밖으로 뱉진 못했다. 뭐 사실 딱히 부럽진 않......긴 뭐가 부럽다. 젠장. 그래도 20대 초반 나름 잘나가던 쏠로였을 때는 친구들이랑 와서 벚꽃 흩날.. 더보기
칫솔 양치하면서 거울보다 문득 네가 생각났다. 나란히 놓여있는 주인잃은 칫솔. 거울속에 비춰진 모습이 나란 걸 알면서도 왠지 낯설기만 해 한동안을 칫솔을 입에 물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푸석해진 피부, 거뭇해진 눈가, 잠은 또 얼마나 설쳤는지 눈도 살짝 충혈된 듯 그래, 네가 떠나고 나니 이모양이다. 흡사 태풍이 휘몰고 간 것 마냥 방안은 어지러워진 지 오래 도둑도 훔칠 거 있나 찾아왔다가 안쓰러워 청소까지 해주고 갈 기세. 그래, 네 손길이 끊어지고 나니 내 손길조차 거부한다. 아니, 내가 거부하는 거겠지. 냉장고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반찬들. 언제 만들었는지도 몰라 차마 꺼내지도 못하겠다. 이미 쉬어버려 먹지도 못할텐데 치울 생각조차 없다. 어짜피 먹을 일도 없을테니 싱크대안 설거지도 한가득. 물기 하나 없이.. 더보기
넌 다른 여자들 같지 않았다 넌 다른 여자들 같지 않았다. 뭘 사달라며 바라는 것도 없었고 지나가는 말이라도 갖고 싶다 한적이 없었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가는 것보다 시장 근처 국밥이 더 정겹다며 좋은데 가자는 내 손을 잡아끌던 너였고 일이 바빠 전화할 틈이 없었다던 내게 밥은 잘 챙겨먹었냐며 전화안해줘도 되니까 야근에 끼니 거르지말라던 그런 여자였다. 그런 너를 난 아줌마같다며 깔보기만 했었고 다른 여자같지 않아 편하기는 하다고 생각했었다. 인사동. 11월의 어느날 밤. 거리를 밝혀주던 가로등 불빛만큼 아니 그보다 더 빛이 나던 네 웃음이 기억난다. 소위 없이살았어도 넌 그 빛을 머금고 살았었다. 배고프다며 밥을 먹자며 들어간 곳에서도 난 밥값을 계산하며 머릴 굴리고 있었지만 넌 그때도 ' 오늘 밥은 내가 사는거니 먹고 싶은.. 더보기
식은 커피 " 늦어도 괜찮아, 천천히 와도 돼. "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목소리에 전화 끊으면서 난 ' 다행이다. 잔소리 안들어도 되겠구나. ' 하면서 그 앨 만나러 갔었어. 오늘은 뭐하지? 밥은 뭐 먹지?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래, 어느 연인들이 그러하듯이 말야. 카페문을 열자마자 둘러볼 것도 없이 그 애가 보였지. 좀 미안해서 오래 기다렸지? 했더니 고개를 저으면서 말하는거야. 늦게올지 몰라 같이 주문한 커피가 식었다고 새로 사다줄까 하길래 됐다고 식은거 먹겠다했지. 사실 그때도 나 몰랐었다? 자리앉아서 폰만 꺼내고 톡온거나 보고 있었거든. 뭐부터 할까? 밥은 먹었어? 영화보러 갈까? 뭘 하든 괜찮다던 애였으니까 당연히 ' 나 하자는 대로 하겠지. ' 하고 그냥 별 생각없이 예의상 물어보던 그 때도 그저 오면서 .. 더보기
[717]의 첫 연재를 마치며 717의 일차 연재를 끝내며… 처음부터 연재 할 생각을 하며 썼던 것은 아니었다. 717이란 숫자를 매개체로 단편을 쭉 이어나갈 생각도 없었다. 첫 글인 를 쓸 때는 연애 감정을 끄적거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특히 요즘 사람들의 연애 모습 혹은 방법 등에 대한 이야기를 헤어짐이란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하고 싶었다. 남자 입장에 편중되어 썼던 이유는 원래 계획에 여자 편을 따로 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을 써놓고 이렇게 저렇게 살펴보니 를 쓰면서 괜히 강조하고 싶었던 시간이 유난히 내 눈에 들어왔다. 시간 7시 17분. 숫자 717에 집중하다 보니 연애 이야기보다 사람들의 일상을 적어보고 싶어졌다. 왠지 모르게 각각의 하루를 연결해 주는 느낌의 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다음으로 쓰게 된 것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