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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칫솔 양치하면서 거울보다 문득 네가 생각났다. 나란히 놓여있는 주인잃은 칫솔. 거울속에 비춰진 모습이 나란 걸 알면서도 왠지 낯설기만 해 한동안을 칫솔을 입에 물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푸석해진 피부, 거뭇해진 눈가, 잠은 또 얼마나 설쳤는지 눈도 살짝 충혈된 듯 그래, 네가 떠나고 나니 이모양이다. 흡사 태풍이 휘몰고 간 것 마냥 방안은 어지러워진 지 오래 도둑도 훔칠 거 있나 찾아왔다가 안쓰러워 청소까지 해주고 갈 기세. 그래, 네 손길이 끊어지고 나니 내 손길조차 거부한다. 아니, 내가 거부하는 거겠지. 냉장고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반찬들. 언제 만들었는지도 몰라 차마 꺼내지도 못하겠다. 이미 쉬어버려 먹지도 못할텐데 치울 생각조차 없다. 어짜피 먹을 일도 없을테니 싱크대안 설거지도 한가득. 물기 하나 없이.. 더보기
넌 다른 여자들 같지 않았다 넌 다른 여자들 같지 않았다. 뭘 사달라며 바라는 것도 없었고 지나가는 말이라도 갖고 싶다 한적이 없었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가는 것보다 시장 근처 국밥이 더 정겹다며 좋은데 가자는 내 손을 잡아끌던 너였고 일이 바빠 전화할 틈이 없었다던 내게 밥은 잘 챙겨먹었냐며 전화안해줘도 되니까 야근에 끼니 거르지말라던 그런 여자였다. 그런 너를 난 아줌마같다며 깔보기만 했었고 다른 여자같지 않아 편하기는 하다고 생각했었다. 인사동. 11월의 어느날 밤. 거리를 밝혀주던 가로등 불빛만큼 아니 그보다 더 빛이 나던 네 웃음이 기억난다. 소위 없이살았어도 넌 그 빛을 머금고 살았었다. 배고프다며 밥을 먹자며 들어간 곳에서도 난 밥값을 계산하며 머릴 굴리고 있었지만 넌 그때도 ' 오늘 밥은 내가 사는거니 먹고 싶은.. 더보기
[717]의 첫 연재를 마치며 717의 일차 연재를 끝내며… 처음부터 연재 할 생각을 하며 썼던 것은 아니었다. 717이란 숫자를 매개체로 단편을 쭉 이어나갈 생각도 없었다. 첫 글인 를 쓸 때는 연애 감정을 끄적거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특히 요즘 사람들의 연애 모습 혹은 방법 등에 대한 이야기를 헤어짐이란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하고 싶었다. 남자 입장에 편중되어 썼던 이유는 원래 계획에 여자 편을 따로 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을 써놓고 이렇게 저렇게 살펴보니 를 쓰면서 괜히 강조하고 싶었던 시간이 유난히 내 눈에 들어왔다. 시간 7시 17분. 숫자 717에 집중하다 보니 연애 이야기보다 사람들의 일상을 적어보고 싶어졌다. 왠지 모르게 각각의 하루를 연결해 주는 느낌의 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다음으로 쓰게 된 것이.. 더보기
[717] 글쟁이 핑계 “정말 안 써진다. 안 써져.” 열심히 끄적거려 놓았는데 영 맘에 들지 않는다. 그 순간 A4 용지로 10장 가까운 글을 없애버렸다. 종이 낭비할 일은 없다. 컴퓨터에 저장된 것을 지운 것 뿐이니까. 컴퓨터가 묻는다. “지우시겠습니까?” 그러면서 그 녀석은 두 가지의 선택지를 나에게 건네준다. “네, 아니오”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기분에 따라서, “네”를 눌렀다. 화면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글이 사라진다. 속이 시원하다. 그런데 곧 바로 머리를 헝크러뜨리기 시작했다. “으아!!!~~~” 곧 닥쳐온 후회. 엉터리 같지만 그 양의 글을 쓰기 위해서 보낸 시간, 이렇게 저렇게 보낸 시간 등등이 떠올랐다. ‘이 놈의 성질머리’, ‘아니, 쓸데없는 완벽주의’ 누구를 탓 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스스로를 욕하게 .. 더보기
[717] 혼자보는 영화 알람이 울린다. 7시 17분. 영화 상영시간은 7시 20분. 극장 앞 커피숍에서 간단히 커피를 마신다. 일주일에 한 번 빠르게 퇴근하는 날이 한 번씩 있다. 요즘 내가 일하면서 가장 만족스러워 하는 점이다. 전에 다녔던 회사들은 6시에 퇴근 하는 것이 한 달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엄청난 행사였다. 뉴스에서 법으로 주당 40시간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그건 나와는 상관 없는 세상 이야기다. 나 같은 사람이 일하는 곳에서는 “법을 지키면서 일자리를 잃을래? 아니면 법은 무시되더라도 일을 할래”라고 이야기 한다. 나만 이렇게 억울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옆 사람도 그렇고 앞 사람도 그렇고 길 건너 회사의 사람들도 비슷하다. 다들 말은 법을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현실에서 법은 사장님의 말 이다... 더보기
[717] 문명하셨습니다 휴가다. 엄밀히 말하면 내일부터지만, 내 기분은 집으로 돌아가는 이 순간부터다. 우여곡절 끝에 주말을 붙였다. 일주일쯤 되는 꽤 긴 휴가다. 남들은 휴가에 뭔가 뜻 깊은 일을 하라고 하지만 나는 싫다. 왜 내 휴가에 내가 즐거우면 안 되는 것일까? 내 휴가까지 왜 자기들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것일까? 난 단호하게 거부했다. 나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 휴가 땐 그냥 내가 재미난 일을 하고 싶다. 휴가의 의미 따위는 그런 것 아닌가? 며칠 전에 문명이란 게임을 구입했다. 사람들 말마따나 휴가 전체를 “문명했습니다”하고 외치고 끝날지도 모른다. 휴가를 즐길 만반의 준비는 끝났다. 이미 게임을 컴퓨터에 깔아두고 몇 번의 테스트(?) 게임을 해보았다. 그리고 지금 내.. 더보기
[717] 영어시험 소리가 들린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아! 씨!” 차마 욕은 하지 못한다. 아무도 없는 집에 나 혼자 있는 데도 욕을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용기 따위도 없다. 시끄러워서 짜증이 났는데, 차마 화를 내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알람이 오늘 내가 시험이 있음을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길어지는 내 백수 생활에 왜 영어 시험을 그리도 많이 봐야만 하는지 도통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래도 영어 시험을 꼬박꼬박 챙겨서 본다. 남들이 다 그 정도는 하기 때문이다. 맞다. 나는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하다. 아니 뛰어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남들에게 뒤쳐지는 것만 하지 않고 싶다. 내 삶에서 어떤 욕심을 부리면서 살았느냐 물어본다면, 아마도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아야 된다는.. 더보기
[717] 나 착한 사람이다 “야. 그냥 난 연애 안하고 살란다.” “아니. 그런 소리 좀 하지 말고 노력이라도 해보라고! 시도도 안 해보고 포기 하는 게 말이 되냐?” 내 이 한 마디에 친구의 잔소리는 또 한 번 장황하게 이어진다. 사실 친구들의 말대로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니다. 문제는 이 녀석이나 저 녀석이나 날 만나서 한다는 소리가 매번 똑같다는 것이고, 내가 바꾸고 노력해도 주변에서 그다지 긍정적인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친구 녀석들이 날 걱정해주는 마음. 그래 그 정도는 안다. 그것이 다소 거칠게 표현되는 것도 이해는 한다. 남자녀석들의 세계란 그런 것이니까. 그래도 그렇지 거기에다가 했던 이야기 하고 또 하고… 정말 저 녀석들은 지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래. 나 모태솔로로 연애 한 번 못해본 남자다. 남들이 종종 말하.. 더보기
[717] 삐에로 초조하다. 다음 공연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에 나는 항상 이렇다. 나는 삐에로다. 굵직굵직한 쇼들 사이 사이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관심을 모으러 다닌다. 다음에 이어질 커다란 쇼의 준비를 뒤에서 하는 동안 나는 사람들을 웃기는 일을 한다. 앞선 쇼가 끝나간다. 쇼에 연신 감탄하는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온다. 마치 바다의 파도소리 같다. 다 같이 "우와~"하고 감탄을 하고 다 같이 고요해진다. 그렇게 수 차례 반복하면 그 커다란 공연은 끝이 난다. 내 공연은 그렇게 감탄하던 사람들을 불규칙하게 웃게 한다. 한마음 한 뜻인 것 같았던 사람들이 제각각 웃고 제각각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다. 내 다음 차례에 큰 쇼를 준비하는 사람도 나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이 커다란 쇼가 준비되는 동안 지루.. 더보기
[717] 헤어지다 눈을 떴다. 어느새 밝은 햇살이 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눈을 뜨고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그녀가 침대 옆에 한참 동안 걸터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새하얀 등에 아침 햇살 때문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녀의 뒷모습은 고민에 빠진 사람처럼 매우 고요했다. 나는 슬며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 그녀와 만난 지 이년이 넘었지만 그렇게 차가운 손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가만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지금 깬 거야? 이제 일어나서 출근 준비해야지."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하다. "혹시 몸이 안 좋은 거야? 손이 굉장히 찬데?","그래? 별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대답을 하고서 그녀는 자신의 손을 비볐다. "차가워 진 건가?" 무심하게 이 한마디를 뱉고서는 주섬주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