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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집사의 하루 -9

 

 

 

이사 가는 날

살고 있던 자취방 계약이 끝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방을 빼야 하는 날짜와 입주일이 겹치지 않아
며칠 간 인근에 사는 후배네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살림살이도 거의 없는 남자 방이라 짐을 옮기는 건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지만, 정작 리배 녀석이 걱정이었다.
 고양이는 보금자리가 바뀌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 다는데...
게다가 짐을 옮기기로 한 날짜는 12월 30일. 연말이다.
31일에 본가에 올라가 1일 저녁에나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라 거의 이틀을
혼자 보내야 하는 녀석이 걱정되었다.

 후배와 같이 이사짐을 옮기면서 집안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니 리배도
뭔가 이상한걸 눈치 챈듯이 우리들 다리 사이에서 계속 왔다 갔다한다.
캣타워를 분해 할때는
 '이봐 집사. 당신 대체 뭐하는 짓이야?'라는 눈빛으로 쳐다보고있었다.

 

 "리배야. 우리 이제 새집으로 이사갈거야. 걱정돼? 괜찮아 괜찮아."
녀석을 안심시키려고 볼과 배를 쓰다듬어 주면서 안아들었지만
녀석은 바둥바둥 돌아다니게 놔두라는 듯 금새 뛰쳐나간다.

그리곤 황폐해진 집안을 망연자실한듯 멍하니 앉아 쳐다보고 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후배네 집에 이삿짐을 옮기고 녀석을 방에 내려놓았다.
"리배야. 저 삼촌 처음보지? 나쁜사람 아냐. 해치지 않아. 괜찮아 괜찮다."
 처음 보는 사람. 그리고 바뀐 환경에 겁을 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진격의 고양이. 우리의 리배. 방안을 샅샅히 뒤지기 시작한다.
TV 뒤, 옷장 뒤, 침대 틈새를 돌아다니며 온갖 먼지란 먼지는 끌고 나왔다.
그리고 후배 배위로 훌쩍 올라가 앉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듯 했다.
 '아저씨. 아저씨도 청소 좀 해야겠어?'

 저놈 완전 배신자다. 정작 내가 부를 땐 오지도 않더니 후배가 부르니
조르르 달려가 무릎위에 앉는다.
 "야! 너 임마 그러는거 아냐. 거기가 여기보다 푹신할지 몰라도 너랑 사는 건 나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금방 익숙해진게 참 다행스러웠다.

 예전에 2년이란 시간을 같이 살았던 후배였다. 오랫만에 한 집에서 자려니
한 잔하지 않고는 잘 수 없었다. 오랫만에 밖에 나가 둘이 소주 한잔 하고 들어오니
 리배는 마치 자기 집인냥, 후배의 침대에 올라가서 자고있었다.
 후배네 집에 신세를 지는데 방안에 온통 고양이 털을 선물해 주고 갈순 없으니,
리배는 주방에서 재우기로 했다.(주방이라곤 하지만 1m x 1m 도 되지 않는 넓이다.)
주방으로 리배를 옮겨 놓고 문을 닫았다. 1분이나 지났을까? 녀석이 울기 시작한다.
 "끼앵... 끼양...."
 "저건... 뭐지? 야 저게 개가 우는 소리냐 고양이가 우는 소리냐?"
 참 희안했다. 후배와 난 한참을 깔깔대고 웃다가 그냥 방안에서 재우기로 했다.
그리고 취한 두 남자는 잠에 곯아 떨어졌다.

 

 "악!!! 뭐야!!!!"
자는 중에 후배가 비명을 지르면서 깼고, 그 소리에 나도 덩달아 눈을 떴다.
 "왜? 무슨일이야?"
 "형.....얘 왜이래?"
그랬다. 리배의 버릇이 나온거다. 머리 카락만 보면 앞발로 마구 마구 헝클어대고 머리카락을 씹어대는 그 버릇.
 후배 말로는 자는데 누가 와서 머리를 핥더니 머리를 막 미친듯이 헤집더란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이 친구가 탈모로 고생하는 친구다.
위에서 보면 살색과 검은 색이 반반으로 보일 정도다.
그 머리를 테러를 해놨으니.... 너무 미안하고 무안했다.
 "그 새끼 머리카락 성애자야... 걍 밖에서 재우자"
 "형 됐어. 그냥 형이 안고 자 ㅋㅋㅋ"
리배를 끌어 안고 이불을 뒤집어 썼다. 바둥바둥.
억지로 1분 쯤 끌어안고 있었다. 잠잠해진다. 다행이다 잔다.
 그렇게 2시간 쯤 잤을까? 아침 알람소리에 일어났다.
부시시한 머리를 하고 일어난 두 남자.
 "잘 잤냐?"
 "형은? 잘 잤겠어?"
리배는 내 품이 아닌 그 친구 품안에 있었다.

 "형. 자는데 이놈이 내 다리 사이에 와서 비비작 대더라? 그러다가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 들던데?"
 "걔 원래 그래"
 "얘 변태 아냐?"
 "그런 가봐... 사춘긴가봐"
 "잘 길러. 아빠 안닮게"
 ".........출근이나 하자"
 "그럽시다. 얘 여기 걍 두고가. 알아서 잘 노네. 휴일 지나고 입주 할때 데려가 그냥"
 '그래 테러 한번 제대로 당해봐...'

 

 반려 동물은 주인을 닮는 다는데.... 난 아닌데... 난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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