윽. 오랜만에 쓰려니 양심이 쿡쿡 찔린다. 그렇다. 일주일만이다.
추워진 날씨에 손이 얼어 볼과 무릎이 파우더라도 두들긴 것 마냥 벌겋다. 그래도 이번 주만큼은, 하는 생각에 열심히 글을 쓴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콧물감기를 받기 전에 모두들 감기 조심하시길!
-
오늘의 제목은 <중2병이 불러온 불안으로 인한 불행이 일으킨 고난의 패턴을 고찰함으로서 얻게 되지만 불가능할 게 뻔한 삶의 질적 향상 기대와 욕구의 개밥>다른 말로 하자면…불행할테지만 행복해지고 싶어요다.
사실 지금까지의 내 글을 무척이나 음울했다. 소녀스럽게 다이어리에 옮겨적으려고 내 글을 들락날락 거릴 때마다 느낀다. 확실히 음울하다.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늘 고민한다. 그리고 이렇게 고민하는 이유도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1. 친구들과 있을 때는 온갖 우스개소리로 내 안의 고민들을 몰아내려고 애를 쓴다.
2. 혼자 남겨지자 부정적인 울림이 내 심장을 이리저리 튕겨가며 장난질을 쳐댄다.
3. 우울한 이야기를 실컷, 질릴 때까지 실컷 한다.
4. 이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들이 나를 피곤하고, 부정적인 사람으로 생각할까봐 불안해진다.
5. 억지로 농담을 하고 (심지어 그게 인터넷 상의 일일지라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 한다.
6. 위의 과정을 끝없이 반복한다. 그래, '환멸'도 이런 마음에서 쓴 것이다. 오늘은 어제가 되고.
이유가 뭘까? 나는 이런 과정을 반복할 때마다 생각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하지만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사실 난 모든 이유를 알고 있으니까.
중학교 시절 나도 느끼지 못했던 사춘기가 내 안에 살며시 스며들었다. 나는 사춘기의 열병을 심하게 앓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지만, 부모님 앞에서 콱 뛰어내리겠다며 창문으로 뛰어내리려고 한 적도 있을 정도니까.
그리고 이러한 사춘기는 화목하지 못한 가정환경 속에서 점점 더 크게 자랐다. 말로만 듣던 중2병이 내 자아에 입주했다. 이 하숙생은 몇 년동안 집세도 안내고 눌러앉았는데, 난 그 몇 년동안 끔찍한 짓들을 저질렀다.
이왕 숫자 나열한 거 몇 가지 더 나열해보겠다. 끄적끼적의 중2병 일기!
1.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불쌍하게 여기면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지 나 스스로도 이해가 안된다. 자기연민의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지. 나는 누군가가 나를 연민하고, 위로하고, 나와 오래도록 있길 바래서 조금만 친하다 싶으면 눈물을 흘리며 집안일을 한껏 오버해서 말했다. 부모님의 얼굴에 먹칠을 잔뜩 시켜드린 것이다. 내 이야기 속에서 부모님은 당장이도 긴급출동 sos에 나와야할 것 같았다.
2. 절친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에게 밤마다 울면서 전화해 죽고 싶다고, 자살할 거라고 큰소리를 땅땅 쳤다. 그리고 실제로 죽으려고도 했다. 그 때 모아놓은 유서를 엮어 책으로 만들면 흥미로울 것 같지만 아쉽게도 다 버렸다. 난 이런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좋아 일부러 울면서 친구가 자신이 아니면 내가 금방 죽을 것이라고 믿게 했다.
3. 감정조절도 못했다. 난 사소한 것에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고 화가 가라앉지 않으면 다 죽여버리겠다면서 주방 식칼을 꺼내들고 부들부들 떨었다. 무서워서 차마 휘두를 생각은 못했다는 게 다행이다.
4. 다들 이런 과정을 겪었는지 무척 궁금했다. 검색해보니 어떤 아이들을 만화를 보며 흑화한다. 크큭. 이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안심하면서 더 망나니처럼 굴었다. 동생과 같이 자기위로를 했다. 몇 년이 흐른 뒤 우리는 그 얘기에 대해선 입도 벙긋 안한다. 이 정도는 나도 해봤다, 싶을지 몰라도 야한 소설을 보고 뭣도 모르면서 그를 따라했던 것은 나에게 평생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남는다.
5. 친구와 함께 야한 문자를 주고 받았다. 지금 생각해도 참 인상적인 상황극이었지. bl이었고 상당한 수위였고 문자는 모두 대화체로 진행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문자들만 생각하면 죽고 싶다. 반항하지마 귀여운 아기고양이, 같은 문자를 보냈다니. 잘 기억은 안나지만 나의 문학적인 기질이 십분 발휘되어 백설공주와 난쟁이 같은 동화들도 패러디한 것 같다.
얌전한 편인가? 내 친구들에게 중2병을 물어보면 흑화한다. 크큭. 같은 얘기나 엄마, 아빠에게 귀여운 반항을 했던 것들밖에 안 나와서 잘 판단을 못하겠다.
어쨌든 내가 우울해하다가도 얼른 농담을 하는 이유는 바로 위의 다섯 가지 때문이다. 다들 이런 나에게 질려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다. 나라도 맨날 야한 소설을 보고 방 안에 찾아들어오는 거 아니면 죽겠다고 식칼을 붙잡고 우는 언니를 두고 싶지 않다. 심각한 자해는 아니지만 두꺼운 책으로 허벅지와 머리 등을 때리는 딸을 두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이 때문에 나는 더욱 심각해졌다. 모두들 나에게 질려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니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까 궁리하게 된 것이다.
나는 tv를 시청했고 그 곳에 나오는 웃기고 재밌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조금씩 벤치마킹했다. 그 사람들은 우울해해도 금방 털고 일어났으며 절대로 깊은 심연에 잠겨져 있지 않았다.
이쯤 되면 모두들 알겠지? 나는 어설프게 따라는 했지만 모든 것이 불안정한 상태라는 거다. 나에게는 아무리 힘든 상황이 닥쳐도 나를 지지해줄 친구가 없다. 있었지만 없어지는 게 반복된다. 울면서 전화할 만큼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다. 그로 인해 나는 늘 힘들고 방황한다.
예를 들자면, 해리포터를 닮고 싶어 퀴디치를 연습했지만 이상하게 해리포터가 겪는 고난만 올 뿐 론과 헤르미온느는 없는 상태라고나 할까.
매년 올 해는 평생 우정을 나눌 친구를 사귀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지만 늘 실망한다. 나와 친한 친구들은 내가 힘들고 슬퍼할 때 늘 곁에 없다. 자기들끼리 웃으며 즐거워하고 책상에 엎드려있는 나는 본 체 만 체 한다.
또한 결정적으로, 나는 그 아이들과 '제일 친한' 친구가 되고 싶은데 이 녀석들을 이미 '제일 친한' 친구가 있다.
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상태다. 그래서 다시 우스갯소리를 하고 밝게 행동한다. 그러면 자기들 농담에 나는 끼워주니까. 그러면 나는 그에 조금 위안을 받는 것이다. 세상에, 내가 너무 불쌍해보여 울고 싶어지네.
정리하자면 나는 진정한 친구, 나를 행복하게 해줄 대상을 찾기 위해 조울증환자처럼 행동한다. 이걸 고민하는 이유 또한 행복해지고 싶어서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면 늘 제자리에서 맴돌게 된다. 다른 사람들도 생각할 진부한 질문 말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행복해질 수 있을까?
휴. 늘 생각하는 거지만 진부한 것이야말로 삶의 진리다. 진부한 것은 욕구의 개밥이다. 온갖 욕망 덩어리가 잡다하게 섞였다는 말이다.
내 나이를 5배 정도로 잡아당겨야 끝이 날 내 인생. 인생의 목표를 벌써부터 생각하자니 묘하다. 그러나 행복에 대한 내 개인적인 조건을 달아보려고 한다.
행복욕구의 개밥 리스트.
1. 똑똑해봤자 필요없다. 사실. 똑똑해봤자 뭐하는데? 죽어라 공부하고 죽어라 일해서 죽어라 돈 벌고 죽어라 쓰는 것 외에 또 있나? 똑똑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며 새 시작하는 것은 진부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건 똑똑한 사람들의 욕망의 개밥이라고 할 수 있겠지. 진심으로 이를 자랑스러워하는 인간 아니면 못 견딘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돈만 보고 결혼하는 것도 말로는 쉽지 보통 강심장 아니면 못한다고.
2. 하고 싶은 것을 해야한다. & 모든 선택에 책임을 져야한다. 진부하디 진부한 내용이지. 교훈집에 보면 늘 써있는 내용 아닌가. 자기 선택에 책임을 안지고 남탓만 하면 내 인생이 너무 가엾지 않을까? 내가 프라다백을 하나 질렀다고 해보자. 나는 고시원에서 알바로 근근히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인데 말이다. 그리고 내가 남탓을 한다. "그 직원이 나에게 이걸 권하지만 않았어도! 엄마아빠가 수표를 주지만 않았어도! 에라이, 시발!" ……비참하다. 차라리 "난 프라다백을 사고 싶어서 산거야! 뭐 어때! 될대로 되라지! 이거 입고 돈 많은 남자나 꼬셔보자, 낄낄" 이게 더 행복해보인다.
3. 잠자코 때를 기다린다. 근데 이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친구, 진정한 동반자를 기다리는 과정은 힘들다. 그리고 타이밍 안 맞으면 끝이다. 타이밍이 안 맞았다는 건 인연 또한 아니라는 거겠지.
나는 어리다면 어린 나이지만 인생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개밥도 예쁜가 안 예쁜가에 따라 양이 달라지고, 명품종인가 아닌가에 따라 먹는 사료의 질도 달라지는 거 아니겠는가. 사실 난 아직 인생살이도 제대로 안해봤다. 또한 사람들의 눈초리라는 숙어도 잘 이해못한 상태다. 이런 내가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아니라고 반박하겠지. 세상은 아름답고 건전하며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난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하면 18년 인생을 살아온 것만큼 엿을 날려주겠다. 18번 엿을 날려주겠다는 얘기다. 19살이 되었을 때도 그런 말을 한다면 19금 야동이나 보라고 할 거다.
꿈은 이루어지고 세상은 아름답고 노력하면 뭐든 이루어지고 개천에서 용 난다고? 거지같은 소리다. 이 소리는 개밥이지만, 말했지 않은가! 개밥은 진리인 건 맞지만 욕구의 집합체기도 한다. 이건 욕구의 집합체에 불과한 개밥이다. 그냥 자기가 믿고 싶어서 그렇게 생각하는거겠지.
난 이런 개밥이 아주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충격을 줄여주려면 이런 것을 미리미리 생각해놔야한다. 세상은 아름다워! 라고 생각해오다 더러움을 마주친것보다 세상은 쓰레기장이야! 라고 생각해오다 진짜 쓰레기장인 걸 알게 되었을 때 더욱 적응해서 살 만하니까. 물론 이러면 동심이나 순수한 마음을 쉽게 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이런 애가 싫다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인생살이를 아주 잘 아는 듯한 어린애 캐릭터를 만들지나 말든지! 그 아이들에 대해서는 정말 현명해~라며 넋을 놓고 보다가 한 꼬마애가 "인생은 쓰레기야."라고 말하면 "뭐라는거야! 희망을 가져! 그건 멍청한 소리야."라고 말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그리고 수치적으로 봐도 그렇다. 세상의 이치를 일찍 깨닫고 일 년이라도 일찍 돈을 버는 것에 매진하거나 스스로의 인생을 찾는 것이 왜 하는지도 모르는 공부를 하면서 하루에 15시간씩 학교에서 조는 것보다 낫다. 나처럼 꿈이라도 결정해놓았으면 학교는 숙박업소요, 하면서 잠이나 자는 게 마음 편하지만 꿈도 결정해놓지 않았으면 학교가 숙박업소는 아닌데, 하면서 졸다말다 졸다말다 해서 더 피곤한 것보다 낫지 않은가.
그럼에도 왜 행복해지고 싶어하냐구? 간단하다. 그것은 오랜 시간 변하지 않을 인간의 본성이니까. 이런 나조차 인간의 본성을 따르고 싶으니까. 저 행복욕구 개밥 리스트를 지켜나간다면 많이 불행한 것보다 조금 불행할테니까. 개밥 때문에 불행해지고 개밥을 찾다니. 웃기는 소리지만 사실이다.
한 주를 쉰만큼 오랫동안 생각했고 분량도 늘였다. 벌써부터 다음에 쓸 내용이 걱정된다. 요즘 생각해왔던 것을 여기다 전부 적었으니까.
그럼 다들 조금 불행해지길 진심으로 기도하며 이만 글을 마치겠다.
'목요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끄적끼적] 인생계산 (6) | 2013.12.20 |
---|---|
찬란한 빛을 기대했었다 (0) | 2013.12.19 |
평범함을 그만 강조했으면... (2) | 2013.12.12 |
오랜만의 출사 이야기, 방배동 (4) | 2013.12.05 |
[끄적끼적] 환멸 (3) | 2013.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