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으러 처음 나갔던 시절에 나는 그랬다.
"내가 찍은 사진들 하나 하나에 이야기를 붙여줘야지!"
처음에는 의욕과다의 생각인지도 모른채 말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은 사진을 찍고 돌아온 날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에 드는 사진과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 등장했으며, 한참을 사진을 보고 있어도 마땅한 글이 생각나지 않는 사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렇게 시작된 사진찍기였다. 그나마 처음 몇번의 출사는 사진을 찍었을 때의 느낌을 잘 전달하는 사진들과 내 글이 어울러졌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사진은 사진으로 남게 되었고, 글은 글로써 제각각의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사진은 더 이상 글을 위한 사진이
아니었고, 글도 사진을 위한 글이 아니게 되자 서로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맴돌게 되었다.
이후 몇 년 동안 찍은 사진들이 컴퓨터 속에서 잠을 자다가 컴퓨터의 고장으로 한꺼번에 눈 앞에서 사라졌다. 너무나 허탈해 웃음밖에 안 나오던 순간이었고, 너무나 허탈해서 굉장히 무덤덤해졌다. 남들 보이게 별거 아닐 수 도 있던 그 사진을 찍기 위해서 돌아다녔던 내 발걸음 조차 생각나지 않았고, 보내야 했던 시간도 생각나지 않았다.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는 몇개월이 지난 지금도 이해하가 가지 않지만 그 시간에는 그랬다.
아마 사진이 순간 사라졌던 시간 이후 처음이고, 나도 모르게 사진과 글이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난 시간 이후 몇년 만의 일이다. 사진을 위한 글을 쓰는 것과 글을 위한 사진을 찍은 것 말이다. 의도치 않았지만 이번 출사는 그런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과거의 나를 만나는 느낌의 출사였다.
지하철을 타고 서초역에서 내렸다. 전 날에는 원래 서초역이 목표가 아니었다. 정 반대 방향으로 가서 하남시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강남으로 발길이 향했고, 나도 모르게 서초역에서 내려버렸다. 그저 발길 닿는대로 밖으로 나왔더니 대법원이
눈앞에 보였다. 굉장히 횡한 느낌의 대법원과 주위 풍경은 한동안 나를 멍하게 서있게 만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스마트폰으로 거리와 속도를 재는 어플리케이션을 켰다. 그리고 주위 지도를 살펴보고나서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복잡한 도심이 아닌 그 횡한 느낌 가득한 방향으로 걸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나온 방배동.
두
시간 가량을 돌아다녔다. 강남이 항상 그렇듯 산에 있는 달동네를 연상 시킬 만한 높은 언덕도 올라가갔다가 내려왔고, 겉 보기에도
굉장히 부유해 보이는 건물들이 있는 곳과 굉장히 오래 된 건물이 있는 동네도 돌아다녔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한장의 사진을 찍고
나서 이 동네를 나타내는 문장이 떠올랐고, 하나의 사진 속에서 그 단어를 넣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을 닮고 싶은 한국 사람들의 동네"
방배동의 전체적인 느낌이었다. 사실 부유해 보이는 곳들의 느낌이 가장 잘 묻어나는 단어고 사진이지만 마지막까지의 걸음이 끝날 때까지 떠나지 않던 문장이었고, 사진이었다.
건물과 도로를 통해서 그 동네 사람들의 허세와 욕심을 확인할 수 있었고, 과거의 흔적들을 통해서 사람다움을 찾아 볼 수 있었던 동네기도 했다. 내 머리 속에 떠오른 문장 하나로 그리고 사진 하나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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