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아자렐로와 리 베르메호 콤비는 <조커>로 한차례 이슈를 몰고 온 경력이 있다. 배트맨의 영원한 숙적인 조커를 나름대로 해석한 이 작품은 조커라는 캐릭터를 현대의 암흑가에 아무렇지 않게 접목시키며 독특한 세계를 구성한 것으로 많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무엇보다 이 조커의 이미지가 영화<다크 나이트>에서 구축한 조커의 이미지와 상당량 공유되고 있었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
본래 이 <조커>라는 작품에는 부제로 ‘다크 나이트’라는 부제가 붙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영화와 이미지가 겹치는 바, 다크 나이트라는 부제를 빼게 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원래 제목이 <조커 : 다크 나이트>가 될 예정이었을까? 사실은 그들이 <조커>의 3년 전에 그린 이 <루터> 때문이다.
<루터>는 본래 <루터 : 맨 오브 스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다. 그리고 이 <루터>와 대구를 맞추기 위해 <조커>에게 다크 나이트라는 이름을 부여할 예정이었던 것. 물론 이 이야기는 단순히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조커>에게 원래 <조커 : 다크 나이트>라는 이름이 붙을 예정이었고, 그것이 전작인 <루터>에게서 계승받은 것이라면 두 작품은 단순히 작명의 공통점 이상의 어떠한 공유지점이 있을 테니 말이다.
<조커>가 조커와 배트맨 그리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코믹북 캐릭터들을 현실의 암흑가로 끌고 왔듯이, <루터>도 어떠한 현실로 눈길을 돌린다. 하지만 <조커>와는 그 시선 너머가 다르다. <조커>가 그리고 있는 많은 캐릭터들은 현실로부터 그렇게 먼 지점에서 생성된 인물들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현대의 어딘가에 생존할 정도로 리얼리티가 넘치는 것만은 아니지만, 최소한 현실 어딘가에 발붙이고 있다는 인상은 풍긴다. 하지만 슈퍼맨은? 그에게만은 어떠한 현실적인 지점도 부착할 수 없다. 슈퍼맨은 이름 그대로 슈퍼맨이며, 초인이다. 그가 보이는 경이적인 능력은 아무리 현실적이라는 딱지를 부착시킨다고 해도 지면에 안착 시킬 수가 없다. 슈퍼맨이 ‘하늘을 난다’는 것은 단순히 만화 내에서 날아다니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루터>는 그래서 그의 존재를 현실로 끌어 내리려는 무모한 선택은 하지 않는다. 다만 항상 하늘을 나는 초인의 눈에서 보던 세상을 인간의 눈에서 보도록 결정한다. 그리고 그 관점을 부여받은 선택받은 인간으로 렉스 루터를 선정하였다. 너무 먼 길을 돌아서 온 듯 하지만, 확실히 이 <루터>의 주인공은 제목대로 ‘렉스 루터’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렉스 루터’이며, ‘인간’이다.
물론 렉스 루터 역시 경이롭다. 그는 인간이면서도 인간의 한계까지 단련되어있다. 인간이 갖기 힘든 부와 명성을 갖추고 있으며 매력이 넘친다. 그리고 몇 수도 넘겨보는 강력한 지능을 갖추고 있다. 이런 인물을 ‘인간’이라는 대표적인 존재로 꺼내도 올바른 것일까? 하지만 그렇기에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의도가 더 빛을 발한다. 일단, 렉스 루터는 굉장히 인간적이다. 그가 아무리 인간으로써 초인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그의 정신은 인간이다. 우리로써는 상상도 못할 지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선악이 공존하고 파멸적이며 증오에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우리가 렉스 루터 정도의 인간이 된다면 분명히 다른 세상을 보고 있으리라 동경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루터도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 그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신에 큰 결함을 갖춘 인간이다.
또한, 그가 아무리 대단하고 뛰어난 인물이라 한들 그 또한 인간이다. 최소한 슈퍼맨이라는 존재 앞에서는 말이다. 바로 이 선택이 이 만화가 가진 관점을 더욱 뛰어나게 만든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신화의 신 앞에서는 무력한 것과 마찬가지로, 렉스 루터가 영웅적인 기질과 재능을 갖춘 인간이라 하더라도 슈퍼맨 앞에서는 한없이 작고 나약한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가장 신에 가까우면서도 신 앞에서는 여전히 단순한 인간으로 돌변해 버리는 그가 더욱 작품에 잘 어울렸던 것이다.
그렇기에 본 작품에서는 슈퍼맨을 우리가 알던 어떠한 이미지로 그리지 않는다. 그의 모습은 인간인‘우리’가 보는 관점이 섞여 들어가 있다. 이것은 아주 단순히 표면적인, 외형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그는 우리가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궤적을 남기며 날고, 태양을 등에 업고 있으며 권위를 뽐내듯이 새빨간 두 눈을 번뜩인다. 여기서 그의 내면이 가진 신적 권위를 읊을 필요는 없다. 그가 날고, 바위를 들고, 빛을 뿜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우리’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렉스 루터의 해석이 담겨진 괴물 같은 형상이 덧붙여 진다. 신은 인간이 해석함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는 주장과 같다. 한마디로 이 작품에서의 슈퍼맨은 신이다.
결국, <루터>는 한 현인이 신에 대항하는 이야기다. 루터는 마치 바벨탑을 올리듯이 첨탑을 올린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신의 권위에 대항하고, 그의 권속을 꺾으려 든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이 현인이 가진 진짜 관점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과연 루터는 슈퍼맨을 증오하고 있는 것인가?
루터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바벨탑과 함께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바벨탑도 함께 만들어 낸다. 인간의 높은 지성을 하나로 모은 또 하나의 신인 ‘호프’를 창조한다. 그녀는 신인 슈퍼맨의 권능을 그대로 재현함에도 불구하고 신처럼 권위를 뽐내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루터를 자신과 같은 높이로 바라보며 함께한다.
루터는 항상 자신의 옆에서 여성적인 매력을 뽐내는 비서 모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지만, 슈퍼맨을 꼭 빼닮은 호프에게는 마음을 허락한다. 이 허가가 진짜 의미에서의 애정인지, 아니면 책략의 일부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이 교접이 루터에게 필수적인 것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루터는 언제든 호프를 조종할 수 있고, 그로 인해서 신의 권위를 농락할 수 있었다.
루터는 단순히 신의 권위와 존속을 증오하고 있었을 뿐일까? 그와 동일한 능력을 지닌 여성이 자신과 동등한 높이로 떨어졌을 때 그는 아무 거리낌없이 그녀를 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루터가 슈퍼맨에게 갖는 감정은 증오가 아니라 애증이다. 그리고 그의 위치를 몰아내기 보다는 그의 위치에 올라서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그와 ‘함께’ 올라서든, 홀로 올라서든 그것이 중요하진 않다. 하지만 신의 위치는 단순히 손을 뻗는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로써는 올라 설 수 없는 위대한 권속이다. 그렇기에 그를 공격하고 배격하고 더럽히려고 하는 것이지 않을까? 가질 수 없는 것이면, 지워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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