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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코스믹호러의 로컬라이징.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중 눈에 띄는 작품중 하나인 <인스머스의 그림자>. 명확한 단상아래 짧고 강한 임팩트의 단편들을 위주로 작업했던 그의 작품들 중에서 유독 이 작품이 꼽히는 이유는 하나이다. 다른 러브크래프트의 작품군과는 다르게 구조가 명확하고, 장르적으로도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대개 그의 작품들에서는 행동의 원천이 호기심으로 잡혀 있는 덕에 외부의 압력이 없는채로 진실을 향해 끝까지 달리게된다. 그러다보니 진실에 대한 설명이 나열되기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진실 그 자체가 공포심의 원천이었으며 그만큼 내러티브와 구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태도였다. 그의 단편인 <어둠속의 그림자>가 인디영화로 재 탄생하면서 마을의 소녀와 선택이라는 원작에는 없던 드라마를 부여한 것 역시 구조의 부재를 마감하기 위해서 였을것이다.


그런 작품군들에 반해 <인스머스의 그림자>는 확실히 구조적이다. 이 작품에는 진실에 의거한 공포와 더불어 폐쇄집단이 주는 '텃세의 공포'라는 실질적인 공포를 겹쳐낸다. 게다가 한밤중의 침입과 도주/추격이라는 비쥬얼적인 체감을 가져다주는 씬도 있으며, 최후의 반전은 모던하기 까지하다. 그 구조 그대로 현대의 미디어로 되살려도 전혀 옛스러움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이 구조를 차용한 작품들은 요즘에도 나오고 있다. 현대는 내러티브의 아이디어나 충격보다는 잘 만들어진 구조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그런 상황이니 <인스머스의 그림자>는 그야말로 코스믹 호러의 바이블같은 존재인 것이다. <인스머스의 그림자>가 갖는 특징을 한번 정리하자면, 무대가 되는 곳은 외부와 어느정도 단절된 폐쇄된 공동체(대체로는 마을). 독자적인 문화, 의식 혹은 괴질(향토병)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은 어떠한 폐쇄 종교(대체로는 토속 종교)에 의해 만들어진 집단이며, 외부인이자 방해자인 주인공이 그들(혹은 의식에 의해 변이된 인간)에게서 도망치게 되는 것이 특징이 된다. 즉 이정도만 정리해 놓아도 굉장히 장르적인 요소로써 정리할 수 있다. 


이 특징들을 계승해서 만들어진 작품들을 꼽아보자. 스티븐 킹의 단편인 <옥수수 밭의 아이들>이나 클라이브 바커의 단편인 <언덕에, 두 도시> 정도를 볼 수 있다. 물론 둘다 상기의 요소들이 다 들어가진 않으며, 주인공이 되는 두 인물의 관계에 할애하는 부분이 더 많다. 다만 핵심요소인 폐쇄 집단과 그들의 독특한 풍습이라는 컨셉은 유지되며 그것이 가져다주는 감당하기 힘든 공포들이 주체적인 공포질감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런 장르적으로 명확한 구조는 훨씬 더 대중적인 서브컬쳐에서 영향을 주기 마련. 영향을 받은 게임으로는 <사일런트 힐>과 <사이렌>을 들 수 있다. <사일런트 힐> 시리즈의 경우 모든 시리즈가 영향권에 있다고 볼 수 없으나, 고대 토착 종교의 이야기가 부각되는 1편과 3편이 크게 영향권 안에 있다고 볼 수 있고 <사이렌>의 경우 전편이 모두 <인스머스의 그림자> 영향권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또한 러브크래프트의 원작을 기준으로 만든 작품들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코드를 가진 작품들은 다 <인스머스의 그림자>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도 이 <인스머스의 그림자>가 가진 파워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튜어트 고든의 영화 <데이곤>과 게임 <콜 오브 크툴루 : 코너스 오브 디 어스>가 <인스머스의 그림자>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데이곤>은 아예 제목을 다른 단편에서 따왔으면서도 말이다.




여튼 이렇게 글을 장황하게 벌려놓은 것에는 한가지 목적이 있다. 위에서 말했다 시피 '코스믹 호러'라는 장르를 대중적인 방향으로 벌려놓으려면 <인스머스의 그림자>의 구조와 요소를 따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 특성들을 한국이라는 토지에 로컬라이징 하려면 어떤 방향성을 모색해야 하느냐.. 이다.


사실 정리된 요소중 가장 중요한것을 꼽자면 바로 폐쇄 집단과 (어두운 진실이 숨어있는) 토착문화의 존재가 된다. 이 두가지는 이른바 필수 요소로써 이것을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서 이 장르가 가지는 에너지가 다양화 된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로컬라이징의 이전에 어레인지부터 생각하는건 너무 빠른 관점이니, 단순하게 <인스머스의 그림자> 자체를 번안소설로 재구성 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보자.


위에서 제시한 작품들에 있어서 한가지 특징이라 할만한 것들은 무엇이냐면, 폐쇄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 정당하게 여겨지는 배경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배경인 작품들은 대개 서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 외에는 일본과 인도가 배경이 된다. 이 곳들은 모두 폐쇄적이고 독립적인 사회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 납득이 가는 배경이다. 한마디로 그런 문화가 있는 곳들이다.


결국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잡으려면 이 부분에서 크게 난항이 온다. 물론 한국에서 수도권을 넘어 작은 지역사회에 가면 생각보다 비공개적인 환경이 나오기는 한다. 그런 소사회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도 꽤 뉴스에 나오고, 그런것들을 꼬집는 작품들이 없지도 않으니까. 한마디로 배경적인 요소에 있어서는 크게 무리가 되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의 소사회에서 과연 폐쇄적인 문화가 존재하고 있는 것을 납득시킬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된다. 지역 자체가 갖는 폐쇄성은 설득시킬 수 있으나, 지역문화가 갖는 폐쇄성을 납득시킬 수 있는 걸까? 대한민국의 커뮤니티가 갖는 범위와 링크성으로 보건데 이게 쉽지만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생각보다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기도 힘들고,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이 알려지는 경위가 상당히 쉽고 간단하다고 느껴진다. 한국의 문화는 어디까지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중시하는 공동체 중시의 문화니까. 왠지 모르게 다수가 갖고있는 완벽한 비밀의 존재가 확 와닿지는 않는 것이다. (물론 이 생각은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2012년 전주국제영화제에 내려가서 하길종 감독의 <한네의 승천>을 봤다. 천재 하길종 감독의 영화를 <인스머스의 그림자>랑 연계시켜서 말하는것이 꽤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이 영화에서는 그래도 꽤 독보적인 설정이 발견된다. 마을 전체의 복을 기리기 위한 제사인 산제와 산제의 기간동안 마을이 폐쇄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을 단순히 작품의 설정으로 인지하기 보다는, 이 작품을 통해서 한국의 토착 문화 내에 생각보다는 폐쇄적인 에너지를 가진 존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인지하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대략 개화 후 인것은 확실하다. 배경을 지금으로 두기 보다는 좀 더 앞쪽으로 당긴다면 <인스머스의 그림자>가 가지고 있는 설정의 정수를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다만 일제강점기나 독립운동기를 배경으로 한다면 다른 주요한 코스믹 호러 작품들과 같은 배경과 동등한 시대가 되어버린다. 세계대전 당시의 불온한 에너지가 호러라는 코드를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로 시기를 앞당기면 한반도라는 배경을 특화시키려는 의도가 희석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왜냐면 그때는 전세계가 그런 느낌의 시대였으니까.


이 장르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위에 얹기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은 확실하다. 그래도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자면, 어디에서 더 힘을 써야 하는지가 파악이 된다는 점은 다행인 것. 뭐 굳이 이 장르를 한국위에 얹을 필요가 있냐고 물어본다면 뭐 할말이 없다. 그냥 개인의 욕심일 뿐이니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것을 실현할 때에 윤태호의 <이끼>를 참조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안에 있는 사회적인 관점을 지우고 사교와 컬티스트라는 오컬트적 요소를 채우는 것이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일까... 


뭐 정리하자면 그 부분이 고민인거다.


(블로그에 아주 옛날에 썼던 글을 재탕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