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정도 설정에 유예가 있는 작품에서 일련의 공통점을 가진 일군이 등장 할 경우, 확립된 단체요소를 도입하면 꽤 쉬워진다. 이를테면 황도 12별자리, 12지, 10간, 4대원소, 오행, 도가 4방신, 불교 4천왕, 올림푸스 12주신, 체스/장기의 말, 타롯카드의 메이져 아르카나, 포커의 4마크 혹은 문자 카드, 무지개 일곱색 등등...
이것들은 이미 사람들에 의해서 어느정도 이미지가 각인 되어있기 때문에 그 인식을 직관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동일하면 설명할것이 줄어들고, 반대라면 그 나름대로 신선함을 줄 수 있다는 점. 고스란히 자신의 머리만으로 모든것을 만들기 힘든만큼 캐릭터의 설명의 압박을 덜고 효과를 배분받을 수 있다는 점이 효과적이다.
문제는 그런 이유로 수많은 (특히 일본의) 창작자들이 이미 우리고 우릴대로 우려먹어서 대놓고 '우리는 뭐다!'하는게 꽤 고민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청룡백호주작현무를 들먹거리면 '또냐?' 싶기도 하니까. 솔직히 신선한 맛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꾸준히 사용한다는 것은 역시 외부의 설명으로 캐릭터가 어느정도 잡히고, 일군의 특징까지 확립해준다는 매력을 놓치기 싫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렇기에 하나로 모아서 쭉 늘어놓으면 어떤 종류의 뽐새도 나고 말이지.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캐릭터의 개성따위를 늘리기 힘든 경우에 이런 방법만큼 든든한 아군은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설정의 도입이 만능이 아님을 밝혀낸 위인이 있다. 와츠키 노부히로는 <바람의 검심> 말미에 사신의 설정을 빌려온 일군인 '스싱(四星)'을 등장시키는데 정말 형편없다. 매력이니 개성이니 하는 요소들은 전부 거세되어 있으며, 아예 디자인까지 적당히 그려서 이마의 문자만 갈아치운 정도니까. 이것이야말로 쉽게 그려놓고 차용된 이미지를 통해 효과를 보고싶어 하는 고민없는 처리의 전형이다. 일본의 수많은 미디어의 수많은 사신 모티브의 캐릭터들이 존재하지만 그중 최악을 꼽으라면 난 단연코 이놈들을 꼽을거다.
와츠키 노부히로가 <바람의 검심> 이후로 점점 빛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건 대략 이쯤에서 짐작이 가능하다고 본다. 액션 연출도 형편없고 이야기도 클리셰 덩어리인 이 작가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은 캐릭터 디자인의 어레인지(사실 창작능력도 별로 없다.) 정도 였다. 근데 그나마도 이 '스싱'으로 한계에 봉착했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말았다.
(와츠키 노부히로 팬들이 계시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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