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 쪽 굴다리 앞에 있는 예술작품, 공공예술품이라고 불러야겠지?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떨어질까봐 걱정스럽다.)
연남동은 연희동의 남쪽에 있는 동네라 그렇게 이름을 붙였단다. 내가 기억하는 연남동은 기사식당이 많다는 것 정도이다. 2000년도 초반에 비교적 저렴하면서 푸짐한 순대국밥을 먹기 위해 몇 번 들렀던 기억이 있었던 지라 연남동은 나에게 기사식당 순대국밥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작년에 동교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나의 신분은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바뀌어 있었고 과제와 시험을 준비하느라 정신없던 나의 저녁시간은 어느새 무료함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대책으로 마련한 것이 책을 읽는 것이었다. 퇴근하면서 책을 1-2권씩 가지고 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몇 개월뿐이었다. 뭔가 균형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낮 시간은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서 소변 볼 때와 점심 식사 시간 외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데 저녁식사를 마치고 책을 읽으려니 스트레스 전혀 해소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집 근처 서점에 나가서 책을 훑어 보면서 또 그렇게 며칠을 보냈으나 역시 지겨워졌다. '그래 뭔가 방법이 있을꺼야 뭐가 나에게 활력을 줄까?'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든 것이 집 주위를 걸어보자였다.
홍대 주변은 개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이나 카페가 정말 많다. 다양한 개성을 뽐내고 있어서 서울 다른 지역이나 경기도에 사는 사람들도 많이 찾곤 한다. 그런 곳을 언저리에 두고 방안에만 있었다니...... 젠장~! 나는 지난 몇 개월을 보상 받고 싶어서 집주위를 열심히 걸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른 연남동 연희동을 잇는 굴다리에서 발견한 위의 그림. '아니! 연남동에도 올레길이 있어?' 하고 인터넷을 뒤져서 마침내 연남동 올레길을 루트를 알아내었다.
연남동 올레길 코스, 출처 : http://m.cafe.naver.com/zoomanett/414
연남동의 루트를 보고 관련 글을 읽었지만 올레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림에 적힌 글자가 좀 너무 작아서 잘 안 보이기도 하지만 뭔가 치밀한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출발하기 전에 지도와 맞춰보고 1-2시간 노력한 끝에 마침내 루트를 지도에서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일단 1코스만 제대로 정복해 보자 싶었다.
홈대입구역에서 연남동 골목길을 들어가기 전 구간에서 사실 볼꺼리는 없다. 예전 경인선 자리가 이제는 공원정비 작업 때문에 공터로 남아 있는 것이 인상적일 뿐이다. 연남동 골목길에 들어가는 곳의 설명이 좀 부족해 보인다. 글에 적힌 가게가 나오지 않았는데 대충 마포정육점 근처일 것 같아서 그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을 들어가면 다음과 같은 골목길이 나온다.
(연남동 골목길의 정취)
사람도 잘 다니지 않는다. 홍대 변화가를 걷다가 갑자기 이런 길로 들어오면 과거로 돌아온 듯 한 느낌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낙후된 동네 같으니라고' 하며 들어오길 꺼렸을 텐데....이제는 이런 곳을 거의 없어지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정겹다는 느낌이다. 어릴 때 골목길에서 술래잡이를 하던 생각이 나서인지 이 동네에 대한 첫 인상은 80년대였다. 한옥을 찾아 나섰다. 한옥을 구경하라길래 한옥이 많은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내가 발견한 것은 2-3채에 불과하였다.
(연남동 골목길에서 만날 수 있는 한옥)
작은 골목길 중에서도 더 협소한 골목길이 나 있다. 한옥을 어두운 밤이라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외관만 간단히 보고 지나쳤다. 다음은 동진시장을 찾아 나섰다. 골목길에서 보기엔 동진시장은 이심 까페 맞은 편 작은 골목에 있었다. 미쳐 예상도 하지 못한 곳에 시장이 있을 줄이야. 이심 까페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는데 그 옆이 동진시장이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래 사진은 시장에서 이심까페를 바라보고 찍은 사진이었다. 가게 앞에 앉아 계신 분은 진중해 보이는 이심 사장님이다. 그가 내려주는 커피는 여태껏 먹은 것 중 최고다. 혹시 기회되면 커피 꼭 먹어보길.....
(동진시장안에서 이심을 향해)
동진시장은 너무 낡고 초라해 보였다. 더 이상 시장 구실이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아 있을까? 연남동 올레길 중 쇠잔해져 가는 것의 아쉬움이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경의선을 찾아가는 길이다. 동진시장을 빠져 나오면 길을 건너서 직진하다가 가정집에서 페인트 판매하는 곳(벽을 페인트로 예쁘게 칠한 집이라서 좀 특색있다), 다음 골목길로 우회전해서 들어가서 직전하면 경의선을 만난다. 경의선을 만나면 좌회전해서 철길을 따라서 나란히 걸으면 된다. 열차가 지나가면 제법 큰 소음이 들린다. 진동도 느껴진다. 바람도 느껴진다. 예전 창천동에 살 때 경의선 바로 옆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생각이 났다. 열차가 지나가면 소음으로 좀 힘들었었다. 특히 여름이 괴로웠는데 더워서 문을 열어 놓고 자면 새벽에 지나가는 디젤 화물차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이 깰 지경이었다. 3년을 살았는데 적응을 하지 못했다.(나는 귀가 예민한 편이라서 소음에 적응력이 매우 낮다.) 현재도 지하철 선로 옆에 사는데 여름에 문을 열어 놓으면 지하철 소리가 간간히 들리긴 한다. 그러나 지하철 소음은 작아서 마치 멀리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 정도로 들리곤 한다. 그 아득한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릴 때 기차를 타고 외가에 가는 상상을 하곤 한다. 물론 소리가 조금 다르긴 하다. 디젤 엔진과 지하철은 다른 동력으로 움직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나의 과거를 회상하면 감성적 상상을 하기엔 충분하다.
(경의선을 따라 걷는 연남동 올레길)
경의선을 따라가다보면 한동안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걷다보면 어느새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좌회전을 하게 된다. 왼쪽에는 작은 텃밭을 가진 아담한 집들이 나오고 우측으로는 방음벽이 여전한 경의선 공사현장이 나온다. 이제 특별한 정취가 없는 일반적인 서울의 골목길을 지나게 되고 좌회전, 우회전 하다보면 어느새 연남동 주민센터앞을 지나게 된다. 주변에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고 인상적인 것은 자전거 타이어 공기주입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어릴 적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 하던 때가 생각났다. 타이어 공기 주입기는 수동식으로 한쪽 발로 고정하고 두 손으로 열심히 펌핑을 해서 바람을 넣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가 보다. 전기적 동력에 의해서 압축기가 작동하는 것 같았다. 주민센터 앞에 있는 근처 주민들에게 자전거의 타이어가 바람이 부족할 때마다 넣기 좋아보였다. 골목길이라고는 하지만 연남동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엔 좀 위험해 보인다. 성산동과 같은 자전거 전용 도로가 없기 때문이다.
(연남동 주민센터 앞의 전기식 자전기 타이어 공기주입기)
마지막 골목길을 동교로 47길인데 그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중국집들과 주점들도 보이는 큰 길이 나온다. 길을 건너서 구가원 앞에 다다르면 연남동 1코스가 끝이 난다. 전체적인 코스를 보면 다음과 같다. 파란 타원에 포함된 코스가 연남동 올레길 1코스이다.
지도는 좀 헤매였던 것도 있어서 지저분해 보일 것이다. 초행길이다보니 지저분해도 기념으로 남겨놓았다. 끝이 났는데 뭔가 좀 허전한 기분이었다. 기대를 잔뜩한 탓인지 몇 가지 특징적인 것만 제외하면 '별 거 없네' 였다. 뭔가 빠졌다. 뭘까? 식도락이 빠진 것 같다. 뭔가 먹어야 하는데 먹는 것에 별 관심없는 나로써는 전혀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연남동은 근처 홍대보다 약간 싼 곳이 많다. 산책시간이 늦은 저녁이어서도 있지만 나로써는 먹는 것에 별 흥미가 없다보니 연남동 올레길의 정취를 반만 느낀 것 같았다. 뭔가 허전하다. 다음에는 주말 낮에 가서 좀 먹어봐야겠다. 정취를 느끼기 위해서 만두도 짬뽕도 먹어야겠고 케익도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왜 땡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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