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던 녀석(이하 A라 칭하겠습니다)이 지난 금요일에 결혼했습니다. 일반 예식장이 아닌 레스토랑을 빌려, 가족과 가까운 친구 중심으로 적은 수의 손님만 초대했더군요. 주례도 없이 사회자의 진행으로만 식을 마치는 점도 신선하고 좋았어요. 음식이 조금만 더 맛있었으면 아주 만족스러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요 ㅎㅎ
이날 함께 간 친구(B라고 부를게요)도 같은 반 단짝이었어요. A가 결혼하니까 당연히 가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우리들 참 질긴 인연이다 싶더군요. A가 겨울방학 직후에 갑자기 전학을 가면서 연락이 끊겼어요. 아이러브스쿨 열풍 덕분에 잠깐 연락이 닿았다가 한동안 또 소식을 못 들었죠. 어느날 갑자기 연락이 와서 만났다가 다시 끊겼다가 하는 일이 내내 반복됐기 때문에 실제로 A랑 보낸 시간은 초등학교 4학년 때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런데도 왜 이렇게 '친하다'는 느낌이 드는지 좀 의아했어요. (아쉽게도 중학교 때 친구는 남아 있지 않고) 고등학교나 대학교 동기들한테는 이런 느낌이 없단 말이죠. 같이 보낸 시간도 훨씬 길고 그 관계도 최근의 것인데 굳이 비교하자면 A만큼 편하지가 않아요. 사람의 마음이 참 이상하구나, 하고는 말았는데 이번에 B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실마리를 찾았어요.
초등학교 4학년, 그 1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즐겁다'고 느꼈던 시간이었더라구요. '친구'라는 존재를 인지한 것도 그때였구요. 담임 선생님이 환경 미화(ㅋㅋ)에 관심이 크셨는데 많은 부분을 아이들이 직접 하게 하셨어요. 선생님은 적당히 가이드만 주고 실제로 꾸미고 만들고 하는 건 미술 쪽으로 소질이 좀 있는 아이들이 모여서 했는데 그러다 보니 허구헌날 방과 후에 남아서 그림 그리고 색종이며 도화지 오려 붙이는 게 일(?)이었어요. 정말 순수하게 놀면서 즐거움을 누렸던, 걱정이니 시기니 질투니 하는 것도 아직은 잘 몰랐던 한 해였다는 걸, B와 이야기하다 보니 알겠더라구요.
학교든 회사든 다음 날 가는 게 기다려지고 그곳에서의 나날들이 재미 있던 때가 그 이후로 아주 없진 않았지만 무겁고 어두운 감정들 역시 늘 함께였죠. 물론 사람의 기억이란 게 그리 정확한 것도 아니고 이런저런 합리화를 거쳐 '초등학교 4학년은 최고의 해'라고 기억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A와 B처럼 그 시기를 함께 지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오래도록 관계가 쉽사리 끊어지지 않고 편안하고 친근한 친구들이 있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순수하게 즐거운 시간이 다시 올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어렵겠죠. 나이를 먹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철 들었다, 세상 물정을 좀 알게 됐다 싶지만 그만큼 계산도 빨라지고 때도 많이 묻었으니까요. 그래서 조금은 쓸쓸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만큼이나 지금도 소중한 시간인데 이 시간을 나는 누구와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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