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알라딘은 '인문학스터디'라는 이름으로 강좌를 꾸준히 연다. 주로 최근에 책을 낸 저자가 강사로 나선다. 홍보를 염두에 둔 행사인 건 분명하지만 그리 노골적이지 않기도 하고 텍스트가 아닌 저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점이 매력이라 시간 되는 대로 참석하곤 한다.
지난 주와 이번 주 목요일에는 철학자 김영민 님의 강좌가 있었다. '김영민의 공부론'이라는 제목이었는데 두 시간의 강의와 두 시간의 질의 응답으로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웠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분의 말투가 전혀 대중친화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려운 용어들을 잔뜩 섞어 말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듣는 사람이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을 갖추고 있고 말과 말 사이의 여백을 알아서 채우기를 요구하는 느낌이었다.
처음엔 이게 대체 뭔 소리야, 싶기도 하고 아무리 철학자라지만 너무 불친절한 거 아닌가 싶어 짜증이 좀 났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긴 아까워서 필기고 이해고 다 포기하고 그냥 '소리'를 듣기만 하기로 했다. 목적이 없어지니 마음이 편해졌다. 졸음도 사라졌다. 그런 식으로 귀를 열었더니 때때로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말들이 있었다. 평소에 쓰지 않았던 머리 이곳 저곳을 자극하는 느낌이었달까. '이해'하기도 어렵고 기억하기는 더 어려운 개념이며 말들이어서 글로 옮길 수는 없지만 머리가 잠에서 깨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간신히 머리에 남긴 한 가지는 대충 이런 거다.
"공부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알기, 하기, 만들기, 되기.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공부는 알기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공부의 진정한 지향은 되기에 있다. 여기에서 '되기'는 특정 직업이나 가치를 가진 존재가 된다기 보다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공부를 계속 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지점에 이르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아차' 싶었다. 학교 다닐 때에야 내신이니 입시 때문에 그랬다 쳐도 사회에 나온 뒤로는 나름 꾸준히 관심 분야에 대한 책을 읽으며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어도) 멈추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봤자 '알기'에 불과한 것이었다.
사실 '하기', '만들기', '되기'의 공부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서 '알기'가 아닌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알기'를 넘어서는 공부의 영역 또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의 지향점을 찾는 것도 필요하겠다. 어디로 갈 것인지, 그래서 어쩌겠다는 건지 고민 좀 해봐야겠다. 하루 이틀만에 답이 나오진 않겠지만 계속, 때때로 떠올리고 궁리하다 보면 어느 날엔가 반짝 떠오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