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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당신은 왜 영화를 '비평'하려 하는가?

"웹은 지구상의 모든 관객들에게 각자 자신의 '사이버 지면'을 가진 블로그 영화평론가로 만들었으며,"

- 정성일, 씨네21 640 "전영객잔 : 새롭게 사유하라!"

 

현재 한국처럼 정말 많은 평론가들이 활약하는 세상도 드물 것이다. 블로그 혹은 SNS라는 지면 하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바라본 미디어를 한차례 리뷰하고 평론한다. 특히, 한국에서 현재 가장 대중적으로 잘나가는미디어인 영화야 말로 그 대상의 첫번째로 꼽히고 있다.

 

활발하고 자유로운 감상의 교류라는 것은 미디어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미디어는 관객과 접촉하면서 비로소 그 가치를 얻으며, 각자가 그 감상과 관점을 고백함으로써 미디어는 다시 활성화 된다. 이런 생각의 순환은 자연의 순환과 같이 활기를 주고, 토양을 더욱 기름지게 만든다. 미디어는 또한 관객은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살찌워 나간다.

 

하지만 이런 순환고리는 그 순환이 원활하고 서로에게 이득이 될 때 가치가 있다. 그저 순환이 되고 있는 것 처럼보이고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는 그 순환이 올바르지 못하고, 그저 토해내고 있을 뿐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각자가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 것 만으로도 담론은 활성화 되고 양()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여기고 있을 수도 있으나, 그것은 이상적인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현재의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 취미적인 비평들이 과연 올바른 순환고리를 만들어 주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현재 나의 관점에서는 그렇다. 담론은 형성되지 않고 있다. 관점은 갈팡질팡한다. 의견은 통합되고 교류되지 않는다. 누군가 사회적인 관점을 표출하면 오버하지 말라고 한다. 누군가 미학적인 관점을 표출하면 어렵다 한다. 누군가 철학적인 관점을 표출하면 뜬구름 잡지 말라고 한다. 말은 엇갈리고 서로는 말 위에 말을 얹지 못한다.

 

나는 현 상황에서 취미적인 비평을 쓰는 모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그리고 정말 전문가가 되고 싶은가?

 

내가 가장 아쉬워 하는 부분은 다름이 아니다. 전문가의 코스프레를 해야 자신이 진짜로 하고 있다고 여기는 그 풍토 자체다. 일단 알아야 할 일이 있다. 당신이 아무리 영화를 많이 봤다고 한들 당신은 전문가가 아니며, 당장 될 수도 없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쓰는 글은 어떤가? 그 안에는 연출이, 편집이, 시나리오가, 미장센이라는 단어들이 도사린다. 그리고 그런 단어들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자신이 가진 관점이 객관적이라는 듯이 말한다. 그렇지만 확실히 말하자면, 그런 단어들을 사용하던 말던 객관성은 확보 할 수 없다.

 

애당초 왜 그런 단어들을 선택했는지 다시 생각하자. 요사이 그런 글들이 가지는 풍토의 기조를 보자. 누군가는 자신이 재미 없게 본 작품을 보면 졸작이라고, 심하면 쓰레기라는 원색적인 단어까지 사용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쓰레기라는 단어의 빈도가 더 높다.) 마찬가지로 반대의 경우, 자신이 재미있게 본 어떤 작품은 명작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에는 명확한 객관적인 지표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는 자신들의 이야기에 전문적인 어떠한 근거들을 끌어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다. 어떤 장면이 굉장히 멋지게 보였다. 하지만 이런 감상이 연출(혹은 편집)이 잘됐다로 둔갑한다. 자신이 보기에 화면이 예뻤다면 미장센이 훌륭하다로 변모한다. 이야기가 재미없고 졸음이 왔다면 사실 작품을 보다가 졸음이 오는 경우는 자신의 컨디션 문제가 더 클 수 있음에도!- ‘시나리오가 엉망이다가 되어버린다. 이런 표현의 문제는 무엇일까? 아주 간단하다. 당신이 어떤 영화를 재밌게 봤거나, 어떤 장면이 멋있었다고 느낀 것은 전적으로 참이다. 그 누구도 당신이 느낀 재미나 불편함, 지루함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이 그 영화의 연출이 잘되었다. 시나리오도 훌륭하고 미장센은 효과적이다라고 적어놓은 것은 항상 참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런 부분들은 어떠한 전문적인 관점과 함께 여러가지 논의가 함께 이루어졌을 때 조금 더 명확하게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는 예술이고 예술에는 명확한 정답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이다. 하지만 간과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런 주장은 수치적으로, 수식적으로 올바른 것 만을 판단할 수 있다는 단편적인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에는 어떠한 전문적인 공식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편협한 관점이다. 설령 영화의 이런 요소들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공식화된 정확한 개념들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는 그런 일들을 장기간 공부하고 단련한 어떤 지식들이 사용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즉 최소한 단순히 많이 관람하기만 한 사람은 그런 요소들에 대해 전문적인 관점으로 판단하기는 힘들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 판단하는 것 자체를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그 감상에 대해서 교류하길 원한다. 하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는 억지로 전문적인 것처럼, 객관적인 것처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의 미장센이 훌륭하다라는 의견을 내가 본 그 장면은 아주 예뻤다라는 의견보다 더 높은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 그런가? 설령 전자가 진짜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관점에서 쓰여졌다 하더라도 후자보다 더 올바르고 훌륭한 의견이지는 않다. 후자는 전적으로 주관적이며 자신의 관점이 들어간 좋은 의견이다. 이런 의견에 자신의 관점과 가치를 담는다면, 그것은 미장센이니 편집이니 시나리오니 떠드는 것보다 더 나눌만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이고 명확하게 잘라내는 의견들은 되려 유동성이 없다.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부에서 이미 결론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되려 내가 본 것이 어땠는지, 그게 내 감정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중에서 어떤 것이 내 마음에 쏙 들었는지 같은 의견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여러분이 어떤 영화를 쓰레기다혹은 불후의 명작이다라고 낙인 찍는 것보다 훨씬.

 

당신이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전문적인 과정을 거쳐서 알아야 하는 것들은 더 그렇다. 그렇다면 겸허하게 모른다고 하라. 대신 자신이 아는 관점이 있다면 솔직하게 그 관점으로 말을 이어라. 그것이 더 매력있고 존중하는 태도가 되어 줄 것이다. 회사원은 회사원의 관점에서, 식당 사장님은 식당 사장님의 관점에서, 운동선수는 운동선수의 관점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더 뜻 깊다. 모두가 평론가일 필요는 없다. 평론가들에게 그들의 일을 돌려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이야기를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