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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단편] 오로라

눈을 떴을 때 나는, 내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저 가슴과 배 사이의 어떤 기관이 사고를 정지한 듯 먹먹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그것이 허기 일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식사가 필요할 것 같아 냉장고 근처로 갔다. 냉장고 위에는 다이어트용의 시리얼이, 안에는 우유가 있어서 그것들로 간단히 식사를 해결했다. 위장에 음식물이 조금 쌓이자 그제서야 이 느낌이 허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동시에 그가 나를 괴롭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가 어떤 경위로 날 괴롭혔는지는 명확히 떠오르지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 꼭 따지고만 싶었다. 침대 옆으로 굴러 떨어진 핸드폰을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는 다행히 통화 기록의 제일 위에 있었다. 그가 설정해둔 컬러링을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의 답답함은 늘어만 갔고, 나는 참기가 힘들어 방 안을 물고기 마냥 배회했다. 곧 그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흔해빠진여보세요조차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가 어떤 말을 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말을 시작했다.

 

“왜 날 괴롭혔어?”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 미안해.”

 

나는 다시 물어봤다.

 

“왜 날 괴롭혔냐고?”

 

... 이제 됐잖아.”

 

“저기, 왜 나를 괴롭힌거야?”

 

세 번째 물음을 던졌을 때야 나는 지금 이 대답을 들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가 세 번째 대응을 하기 전에 나는 통화를 끊어버렸다. 지금까지 귓전에서 맴돌던 목소리가 현실이 아닌 것 같아 갑자기 현기증을 느꼈다. 그리고 순간 난 목적의식을 잃어버렸다. 당장의 목적이 없어지자 난 다시금 방 안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아침임에도 켜놓은 형광등이 초당 몇 천, 몇 만번씩 점멸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반짝반짝 거리는 불빛을 눈앞에 두고 싶어져서 얼른 컴퓨터의 전원을 넣었다. 윈도우의 기동이 끝나자 항상 하듯이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여 인터넷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 머니의 양으로 미루어보아 자주했었던 모양이다. 인터넷 고스톱의 규칙 정도야 기억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게임머니의 절반정도를 순식간에 잃어버렸다. 그사이 긴 시간이 흘렀던 모양이나, 모니터에서 점멸하는 화투패를 보는 게 즐거워서 인지 시간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며 게임에 익숙해지고 나니 슬슬 이기는 싸움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빨간색과 파란색이 나란히 붙어있는 모습을 보자 문득 오로라가 보고 싶어졌다. 나는 이기는 도중인데도 그냥 뛰쳐나와, 인터넷의 검색창에 오로라를 치려고 했다. 그때 오로라의 스펠링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orora라고 쳐놓은 검색창에 커서가 깜빡깜빡 거리고 있었다. 분명 이것이 아닌 것 같아 인터넷 사전을 뒤져보고 나서야 aurora라는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검색된 수많은 오로라들이 화면에 수놓아졌다. 나는 가장 아름다운 오로라를 찾아 화면에 띄우고 몇 분정도 바라봤다. 헌데 처음에는 너무나 아름답던 그 오로라가 왠지 금방 싫증이 나버렸다. 다른 오로라를 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손을 뻗어서 모니터 위를 만져봤다. 딱딱한 표면을 타고 나의 세 손가락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나는 그제서야 이 싫증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오로라는 만질 수 있다. 비록 내가 만진 것은 모니터의 표면이지만, 그 표면을 통해 오로라를 만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그것은 물질이 아니어야 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보고 싶은 오로라는 대체 어떤 아름다움일지. 도저히 해답을 얻을 수 없자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통화기록 제일 위의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끝나고 전화를 받은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마치 다시 전화를 걸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이. 그것이 호의일 것이라 느끼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정당하게 반응을 해줘야 했다. 나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물어봤다.

 

“오로라는 예뻤어?”

 

그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한참 뜸을 들이다 말했다.

 

“나 남극에 간적 없어.”

 

나는 그의 모호한 대답이 듣기 싫어 자르듯이 말했다.

 

“남극이 아니어도 볼 수 있잖아.”

 

“그랬지.”

 

그는 또다시 뜸을 들였다. 이번엔 기다려주기로 했다. 곧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오로라는 예뻤어.”

 

“얼마나?”

 

“많이.”

 

갑자기 난 심통이 터졌다. 뭔가 곤란한 질문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로 떠오른 심술 맞은 질문을 던졌다.

 

“빨간색은 예뻤어?”

 

“무슨 소리야?”

 

“파란색 옆에 있던 빨간색은 예뻤냐고.”

 

“응. 예뻤어.”

 

그 이야기에 난 가슴의 기분 나쁜 증세를 다시 느꼈다. 머리도 약간 어질어질했다. 왠지 난 그의 이야기가 납득되질 않았다.

 

“아니야.”

 

“뭐가?”

 

“아니야. 네가 본 오로라는 내가 보고 싶은 그게 아니야.”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도 더 말을 이어 가기가 싫었다.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자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답답함은 가슴을 타고 목까지 올라왔다.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그때 즈음 그가 말을 이었다.

 

“미안하다...”

 

“아니야! 아니라고! 내가 듣고 싶은 건 그 오로라 얘기가 아니야!!”

 

나는 내가 왜 이렇게 외치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난 내 입을 막을 수 없었다. 나는 순식간에 같은 말을 몇 번씩 더 반복했다. 말이 나오면 나올수록 내 울음은 더 짙어져만 갔다. 분명히 수화기 너머의 그에게도 그것이 전해졌으리라. 그럼에도 그는 위로의 말 한마디 던지지 않았다. 그 느낌은 목을 넘어 코에까지 올라왔다. 위험했다. 나는 소리를 빽 지르고 통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서 엉엉 울어댔다. 울면서 내가 왜 울어야 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 가슴이 아프기 때문에, 숨이 막히기 때문에 울지 않는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답을 내리기도 전에 난 지금 상황의 곤란함을 깨달았다. 내 눈물이 내 몸의 수분을 모두 빼앗아 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냉장고 안에 있던 맥주캔들을 기억해낸 나는, 엉엉 거리는 서러운 울음을 내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몸의 수분이 빠지기 전에 얼른얼른 채워 넣었다. 맥주의 몽롱함이 올라올 때 마다 나는 더 심한 소리를 내면서 울었다. 빈 맥주캔을 손으로 구겨도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았다. 울고 울고 또 울고, 마시고 마시고 마셨다. 내 몸의 수분은 계속 같은 양을 유지했지만, 곧 나오는 양이 채워지는 양을 압도했다. 나는 그것이 다시금 두려워져 더 빠른 속도로 마셔댔다. 그리고 채워지는 속도가 나가는 속도보다 빨라지자 나는 울음을 조금씩 조절 할 수 있었다. 이미 배게는 눈물과 맥주로 범벅이었고, 목은 심하게 딸꾹질을 뱉어내고 있었다. 더 우는 것은 나에게 위험했다. 나는 울음을 멈추길 바랬고, 결국 타인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아까 던져놓은 핸드폰이 손 끝에 닿았다. 나는 주저 않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사과의 말부터 던졌다. 아마도 나의 딸꾹질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의 사과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바로 나의 궁금증을 피력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울지 않을까?”

 

... 글쎄....”

 

그는 대답하지 못했지만, 난 그가 해답을 분명히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저기, 내가 왜 우는 걸까?”

 

....”

 

“오로라 때문일까?”

 

그 말을 하며 나는 머릿속에 오로라를 떠올렸다. 형형색색의 그 찬란한 빛이 두뇌가 있어야 할 머릿속 공동에서 하늘하늘 거리고 있었다. , 하지만 이것은 그저 상상에 불과했다. 나는 대답하지 못하는 그에게 다른 질문을 만들어줬다.

 

“왜 네가 본 오로라는 나에게 아름답지 않을까?”

 

“내가 봤기 때문 일거야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내가 보고 싶은 오로라는 네가 봐야 하는 그 오로라인걸.”

 

“그렇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그랬어야 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럼 난 어떤 오로라를 봐야 해? 가르쳐줘.”

 

“미안해.”

 

“말 돌리지 말고, 가르쳐줘. 난 어떤걸 봐야 되는 거야?”

 

“네가 잊고 있던걸 말하면 가르쳐줄게.”

 

그 대답에 딸꾹질이 멈췄다. 난 모두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그 안에서도 잊어서는 안될 무언가를 잊어버린 게 아닐까? 전화를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손끝을 통해 머릿속으로 무언가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난 방법을 바꿨다. 가슴을 타고 올라오는 그 묘한 고통을 비어버린 머리까지 전이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이마까지 올라오지 않았다. 그것은 눈 아래에서 찰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아마 눈까지 올라왔다면 나는 나의 수분을 모두 소모해버리고 말았을 테지.

 

“내가 뭘 잊고 있을까?”

 

“나한테 질문하지마.”

 

난 사고를 정지시켰다. 내가 할 수 있는 말, 그 가장 자연스러운 말을 찾기 위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반짝거리는 빛을 보고 있었다. 오로라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다. 내 입에서 말이 한마디 나왔다.

 

.... 나는 이제 누구와 오로라를 봐야 할까?”

 

그 말을 내었을 때, 가슴의 고통이 넘실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 순간부터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기 때문이고, 그의 대답이 너무나 기대되었기 때문인 듯 싶었다. 하지만 어느 한편에서는 그의 대답을 듣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 다음의 대답이 나오는 그 사이의 시간, 그 안에 갇힌 채로 있고 싶었다. 아니 그 앞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 앞의 앞으로, 그리고 앞의 앞의 앞으로...

 

... 좋은 사람이 생길거야.”

 

그제서야 너울거리는 고통이 눈까지 올라왔다. 이때의 나는 소리도 내지 못한 채로 울어버리고 말았다. 눈을 감아도, 눈을 가려도 멈출 수 없었다. 수화기로 눈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을 텐데, 그는 대답을 들은 듯 전화를 끊어버렸다. 신호음을 더 들어야 할지, 그만 들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엄지 손가락이 전화기의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다. 망설이고 있었다. 신호음을 더 듣는다고 무슨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라도 듣고 있어야 고통을 상쇄시킬 수 있는 듯 싶었다. 아니 그것 또한 나 스스로 걸어둔 최면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 결정은 내가 나의 이름을 찾아야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녁이 지나 밤이 되어도 나는 그 신호음을 끊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끊기보다는 차라리 경고음을 듣 싶을 테니까... 


창밖에 오로라가 뜨길 기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