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지각 포스팅입니다 -_-;
며칠 전 이 영화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를 봤어요('영어 제목을 그대로 한글로 옮길 거면 맨 앞의 The도 붙이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입에 잘 붙는 제목입니다). 시놉시스도 모르고 심지어 감독(데렉 시앤프랜스. [블루 발렌타인]이 전작이더군요)도 모른 채 봤네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무척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스토리는 단순한 편입니다. 앞부분만 거칠게 요약하자면 오토바이 곡예를 하며 떠도는 남자 루크가 1년 전 하룻밤을 보냈던 여인 로미나와 재회하는데 자신의 아이를 낳았음을 알게 됩니다. 고민 끝에 다음 목적지로 떠나지 않고 로미나와 아들 제이슨 곁에 남기로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을 돌봐주는 남자가 이미 있지요. 루크는 우연히 자동차 정비소에 취직하게 되지만 여자와 아이(그리고 여자의 어머니까지)를 부양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입입니다. 돈이 있어야 그들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무모한 짓을 벌이게 돼요.
*아래에 스포일러로 여겨질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영화가 끝난 뒤 돌아 보면 그리 특이하지 않은데 막상 화면에서는 묘하게 엇박자를 타는 느낌이었습니다. 포스터를 보면 아시겠지만 영화의 중심 인물은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루크와 브래들리 쿠퍼가 맡은 에이버리인데요, 이 둘은 당연히 극중에서 만나게 되지요. 그런데 그 시점이 '그래, 이쯤에서 만나겠지' 할 때를 살짝 비켜나서입니다. 에이버리가 동료 경찰 델루카에게 위협을 받으며 외진 숲속으로 따라가는 장면도 '뭔가 일이 터지겠군ㅎㅎ' 하는 예상과 달리 에이버리의 도주로 끝맺구요. 이런 연출이 빚어내는 리듬감이 참 좋았습니다.
영화를 꿰뚫는 키워드는 '아버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루크는 아버지의 부재를 겪었기에 제이슨이 그 전철을 밟지 않기를 원하죠. 제이슨에게 (계부가 아닌 친)아버지라는 존재를 안겨 주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합니다. 로미나와 제이슨을 돌봐주는 남자 코피는 영화 속 남자들 중 가장 '아버지다운' 사람인데, 어쨌거나 그는 제이슨의 '친부'는 아니예요. 코피는 흑인이라 친부라고 속일 수도 없었겠죠. 에이버리는 도주하는 루크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그를 죽게 만듭니다. 에이버리에게는 제이슨과 같은 나이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때문에 죄책감을 더 크게 느껴서인지 아니면 일과 출세에 대한 야망이 커서인지 자신의 아이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어 주지 못합니다.
이런 아이러니들이 앞서 얘기했던 '리듬감' 위에서 그려져서 영화가 전체적으로 '어긋남'을 잘 보여준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장면과 장면 사이에 여백을 많이 둬서 관객이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연출도 좋았구요. 여기에 라이언 고슬링, 브래들리 쿠퍼, 에바 멘데스의 호연, 특히 아이들 역을 맡은 두 배우(데인 드한, 에머리 코헨)의 인상적인 연기가 더해져 불안하고 쓸쓸한 여운이 길게 남았습니다(레이 리오타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데 적은 분량에 비해 임팩트가 꽤 강했어요. 젊었을 땐 연기가 좀 별로였던 것 같은데 말이죠ㅎㅎ)
올해는 마음에 드는 블록버스터는 거의 못 본 데 비해 중간중간 멋진 작품들을 많이 만났어요.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도 그 중 한 편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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