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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누군가가 궁금해질때,

 

몇달 전부터 거의 매일 아침마다 마주치는 청년이 한명 있다.

 

언젠가부터 항상 그 시간에 있는 안구정화 청년.

 

 

처음 봤을땐 어린왕자가 떠올랐다.

 

그리 크지 않은 키, 갈색의 펌한 머리와 뽀얀피부, 깔끔한 옷차림.

 

 

 

눈여겨 보기 시작한건,

 

내 쿠크가 깨졌을 무렵인 12월 초 즈음..

 

 

아무나 소화 못할 메뚜기 패딩같은걸 입고 왔는데 그게 왜 그리 귀여워 보이던지 ㅋㅋ

 

어쨌든 그 메뚜기 패딩의 효과로 터미널에 진입하자마자 앉아있는 그 아이를 단숨에 파악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매일 아침 마주친다고 표현하기가 애매한게,

 

서로의 옆모습과 뒷모습만 보기 때문 ㅋㅋ

 

일찍 와서 대기실에서 앉아 있는 그 애 앞으로 내가 버스를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하에 종종 걸음으로 걸어가는게 흔한 모습이다.

 

야상 + 어그 + 배낭 3종세트에 긴 머리는 미처 다 말리지 못한 산발한 머리로 ㅋㅋ

 

12월 셋째주가 지나고, 어린왕자는 이제 방학이라 못보겠구나 싶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에 정면으로 마주침 ㄷㄷㄷ

 

다행히 그 날은 3종세트를 집어던지고 화장도 하고 깔끔하게 꾸미고 데이트 복장(?)으로 갔으니 망정이지 ㄷㄷ

 

이어폰끼고 음악들으면서 바닥쳐다보면서 걷다가 뭔가 시커먼 물체가 다가오길래 고개를 빳빳이 들었는데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얼굴이 백옥같이 하얀, 그런데 왠지 낯익은 남자가 위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상태로 5초간 멈춰 있었음.

 

낯선 상대와 마주보고 있는 5초가 얼마나 긴 시간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거다.

 

내가 그 아이를 올려다보면서 생각한건 '낯이 익은데? 얘 피부 진짜 하얗구나'

 

딱 두가지였다.

 

버스 놓치게 생겨서 정신차리고 뛴게 자랑 ㅋㅋ

 

그 낯익은 얼굴이 주인공이 그 안구정화 청년이었고,

 

나는 그 둘이 쌍둥이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조심스레 했었다.

 

음.. 내가 아까 마주한건 그러니까 그 머리 산발한 갈색머리가 어린왕자와 동일인물이 아닐꺼야 - 라는

 

아.. 그 잘생긴 얼굴이 그렇게 된다니?  그리고 어린왕자보다 키가 큰데?

 

 

크리스마스를 넘기고 방학인줄만 알았던 그 청년을 다시 보게 됐을때,

 

또 어린왕자 모습으로 있는걸 봤을때,

 

진짜 쌍둥이인가 혼자 심각하게 생각했다. (순수한거냐 바보인거냐 ㅉㅉ)

 

 

 

그리고 2주 정도 지나서 그 생각은 완벽하게 깨졌다.

 

나보다 10분 늦게 버스를 타면서 나보다 10분은 일찍 도착해서 대기실에 앉아 있는 그 청년이,

 

내가 지각해서 10분째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때 허겁지겁 뛰어오는걸 봤기 때문에 ㅋㅋ

 

얼굴 조막만한 어린왕자는 어디가고 ㅋㅋ

 

머리 산발한 호빵맨이 뛰어옴 ㅠㅠ

 

와.. 꾸미기 전과 후가 다른건 여자만 그런줄 알았더니..

 

남자도 꾸미기빨(?)이 장난 아니라는걸 깨달음 ㄷㄷㄷ

 

 

 

지금까지 알게 된 몇가지 사실을 추리해보면,

 

매일 같은 시간에 버스를 타는걸 보니, 대학생은 아님.

 

나보다 10분 늦게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서 나보다 일찍 와 있는걸 보니 성실함.

 

게다가 꾸미고 와 있는걸 보니 일찍 일어남.

 

꾸민것과 안꾸민것의 차이가 엄청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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