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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삼국지 삐딱하게 보기(장판파)

  <장판파>


  백성들이 지칠대로 지쳐 발을 끄는 통에 멀리서 보면 누런 구름이 움직이는 듯 했다. 사내들은 등에 자신의 몸통만한 짐을 메고, 여자들은 등에 아이를 업고 양손에는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땅만 보며 걷는 사람들 사이로 커다란 육두마차가 지나갔다. 말발굽에 일어난 흙먼지가 사방으로 퍼지자 여기저기서 기침소리가 들렸다. 마차 뒤로는 소와 말이 끄는 수레가 줄줄이 따라갔다. 수레바퀴자국이 깊게 남을 정도로 무거운 짐 때문에 수레 위에는 사람이 타지 못했다. 누군가 짐이라도 올리려 하거나 어린아이가 올라타려고 눈치를 보면 병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와 채찍을 휘둘렀다. 성질 더러운 병사는 칼이나 창을 휘둘러 피를 보기도 했다.


  마차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형주의 관료거나 형주에 기반을 둔 상인이었다. 이들은 조조의 군대를 피해 피난을 떠났다. 조조의 군대가 들어오면 지주의 재산을 빼앗고 관료를 처형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유비는 이들의 지위와 재선을 지켜주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각자 재산을 챙겨 피난을 가도 되지만 땅과 권력은 자신의 기반을 떠나 쉽게 되찾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지주와 관리는 재산은 물론이고 가재도구와 집의 장식, 바닥의 대리석까지 챙겼다. 거기다 고용인과 노비, 자신의 땅에서 소작을 하던 이들까지 강제로 피난을 떠나게 했다. 말로는 조조의 군대가 모두 죽일 거라고 겁을 줬지만 소작인들은 지주의 사병들이 휘두르는 창칼이 무서워 강제로 피난길에 올랐다.


  전쟁으로 기반을 잃어 형주로 온 피난민도 다시 힘든 여정을 떠나야 했다. 유표는 백성에게 인자하고 형주땅은 전쟁의 불씨가 번지지 않아 안전하다는 소문에 힘들게 도망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어느 새 권력은 황숙을 자처하는 유비에게 넘어갔고, 그의 군대는 피난생활로 피폐해진 이들을 다시 밖으로 내몰았다. 이 와중에 성인 남자들은 군역을 치뤄야 한다며 데려가 지주와 관료들의 짐을 옮기게 했다. 발이 느린 여자와 아이들은 피난행렬의 맨 뒤에 쳐져 무리를 이뤘다. 유비의 군대는 이들이 도망이라도 갈까 말을 타고 주변을 지켰다.


  피난 행렬은 지독히 느렸다. 무거운 수레를 끄는 소와 말은 중간중간 쉬며 물과 건초를 먹어야 했고, 그러면 피난 행렬도 멈춰야 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쫓기듯 나오느라 물이나 음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우마가 물을 마시는 모습을 구경만 해야 했다. 행여나 물에 손이라도 댔다가는 병사들의 창칼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선두에서 기병 몇이 달려와 마차에 탄 사람들에게 무어라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갑자기 마차와 수레가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마차가 가는 길에는 장판교라는 다리가 있었다. 이 다리를 건너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마차가 사람들을 짓밟으며 다리를 건넜다. 다리 앞에 있던 이들은 황급히 몸을 피했으나 다리를 건너던 이들은 말발굽을 피할 길이 없어 서로 밀치다 물로 떨어지는 이가 속출했다. 워낙 짐이 무거워 후위에 있던 우마차들이 줄줄이 다리를 통과했다. 마차와 수레가 통과하느라 피난민들은 다리 주위에서 한참을 기다려야했다.


  마지막으로 피칠갑을 한 장수 하나가 급히 다리를 건너고 나서야 피난민들의 차례가 왔다. 그러나 유비의 장수인 장비가 병사들을 동원해 피난민을 막았다. 그가 다리를 끊으려는 모습을 보고 피난민이 아우성을 쳤으나 장비는 오히려 피난민에게 호통을 치며 창을 휘둘렀다. 거구의 장수가 말을 타고 창을 휘두르자 힘없는 피난민들은 다리를 건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다리가 끊어지고 피난민은 강과 조조군 사이에 갖히게 되었다.


  후위에 있던 이들은 대부분 여자와 어린아이라 도망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제자리에 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은 금방 전염되어 사방에서 곡소리가 들렸고, 그러는 사이 조조군은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왔다. 다리 건너에서는 아내와 자식에게 가려는 남자들이 몇 명 달려왔으나 장비의 창에 목숨을 잃었다. 목이 날아가는 모습을 본 다른 남자들은 울음을 삼키며 죽은이들의 짐까지 둘러메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끊어진 장판교 아래로 울음을 담은 강물이 어지러이 흘렀다.



  <잡설>


  삼국지는 소설은 물론이고 게임과 영화 드라마 등으로 끊임없이 재생산 되었습니다. 소설의 경우엔 한 때 청소년은 물론 대학생, 직장인에게 필독서로 불렸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조금 꺽였지만 가장 유명한 고전 중 하나지요.


  저도 중학교 시절 일주일에 한 권씩 김흥신 삼국지를 샀습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고 인물들은 계속 죽어나가니 재미가 떨어지더군요. 결국 5권의 적벽대전을 끝으로 더 이상 삼국지에 손대지 않았고, 제게 삼국지는 코에이의 게임으로만 남았지요.


  삼국지 장수들의 마초적인 언행이 싫었음에도 가장 마초적인 여포라는 인물을 좋아합니다. 삼국지 내에서 누구보다 솔직하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채우려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하지만 그리 좋은 방향으로 욕망을 채우지는 못했지요.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다 최후를 맞게 되죠.


  삼국지를 꼭 읽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유명한 장면들이 있지요. 도원결의라던가 적벽대전같은 것들이죠. 장판파의 장비도 만화의 소재로 쓰일만큼 유명한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살짝 비틀어 봤습니다. 유비를 따라나선 백성들은 사실 억지로 끌려온 것이고, 장판파의 장비는 조조가 아닌 피난민에게 창을 휘둘렀다는 설정으로요.


  황가의 숙부라는 지위는 정통이라는 말을 대신하지만, 기득권이라는 말로 바꿀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 호칭을 갖고 있는 유비가 언제나 백성에게 자비로운 군주로 그려지고, 또 이런 모습을 현대에 리더쉽으로 해석되는 게 조금 껄끄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 맘대로 장면을 고쳐봤습니다. 역사적인 고증이나 원문에 대한 해석은 전혀 없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봐주세요.


  이 외에도 공자는 사실 기득권에 빌붙으려는 노골적인 권력지향적 인물이었다던가. 진시황은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황제였으나 법치에 위기감을 느낀 지주와 관료들이 국정을 어지럽히고, 후에 유방이 자신의 정통성을 위해 진시황의 업적을 축소하며 역사를 뒤틀었다던가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 중에는 유비와 관우가 동성애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19금이 될 것 같아 자세히는 묘사하지 못하겠네요. ^^;


  다시한 번 강조하지만 재미로만 봐주세요. 위의 이야기는 저의 재미있는 상상일 뿐입니다~


아래는 이상신/국중록 작가의 츄리닝 중 장판교 에피소드 입니다.

월요일은 웃으며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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