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언 3>는 에일리언 시리즈 중에서 유난히 평가가 박합니다. 물론 그럴 만도 합니다. 사실 에일리언 시리즈는 항상 전작의 기대를 배신하는 패턴이었죠. <에일리언>은 폐쇄공간의 분열적 호러였는데도 <에일리언 2>는 에일리언들과 한바탕 벌이는 액션이었잖아요. 그런데도 <에일리언 3>는 다시 폐쇄적인 공포극으로 돌아왔으니 <에일리언 2>에 호의를 보낸 사람들의 기대가 좀 박살나긴 했죠.
물론 <에일리언 3>는 냉정하게 봐도 깨끗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닙니다. 요 사이에는 재평가가 이루어져서 예전에 비해서는 호의적인 시선이 많아지긴 했어요. 하지만 이 이유 중 절반이상은 감독 데이빗 핀처의 의도를 많이 반영한 새 편집버젼인 ‘스페셜 에디션(이하 SE)’ 탓이긴 해요. 감독이 초기에 가지고 있던 의도를 더 살려놓고 설명을 보강하니 그렇게까지 끔찍한 영화는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저는 어찌되던 평가는 극장에서 상영된 상영판 편집본으로 국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가 어찌되던 대중과 가장 먼저, 타이틀을 달고 접촉하는 것은 상영판이니까요. 그러니 일단은 극장에 상영된 <에일리언 3>는 사실상 모자른 작품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 자신은 대체적으로 박한 평가들에 비해서는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결정적으로 모자른 것이 많아요.
이건 당연합니다. 왜냐면 극장에서 상영된 버전은 감독인 데이빗 핀처의 의도가 묵살된, 멋대로 편집된 버전이거든요. 아 물론 꼭 감독들이 편집을 자신의 의도대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최소한 헐리웃에서는 그래요.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이런 상황 때문에 큰 피해를 받은 이유는 원안 자체가 굉장히 미세하게 구성된 드라마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미세한 작품에서 핵심적인 요소들이 파내듯이 적출되어 버려졌으니, 극 자체가 딛고 있을 기반자체가 무너진거죠.
인터뷰와 SE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데이빗 핀쳐가 애당초 구상한 <에일리언 3>는 꽤 복잡한 물건이었을 듯 합니다. 상영판만 본 사람들은 영화의 배경이 단순히 감옥행성이었다고 기억할테지만, 사실은 어느 정도 계산하에 만들어진 배경이예요. 머리를 깎고 똑같은 옷을 입은 남성들이 가득한 공간이라는 설정으로 ‘교도소’와 ‘수도원’을 동일하게 처리한거죠. SE를 보면 목사 같은 인물인 ‘딜런’과 그의 예배를 더 자세히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작품의 원안이 종교적인 색체가 강력한 작품일 것이라고 추정이 가능해요. SE를 통해서 본 이 영화는 신앙적 신의와 신화적 불경함의 충돌이라는 테마로써 읽을 수 있는 여지들이 많아요. 굉장히 많은 상징들이 존재하고 있고, 인물들의 과거, 벌어지는 사건, 샷의 형태들이 꽤 정밀하게 그런 느낌을 주고 있죠. 간단히 처음 추락한 우주선을 건져내는 해변에는 (인양용으로 보이는) 크레인 건조물들이 잔뜩 서 있는데, 이게 마치 십자가들이 늘어선 언덕처럼도 보입니다.
이런 구성은 물론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솔직히 <에일리언>과 <에일리언 2>가 내적으로도 탄탄한 영화이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근본적으로는 SF 배경의 오락영화였잖아요. 하지만 핀처의 초기 구상은 아무리 봐도 오락영화로 분류하기에는 모호한 지점이 있습니다. 괴물이 나오는 오락영화에서 다루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테마니까요. 아무래도 스튜디오의 지나친 간섭, 결국 테마를 긁어버린 편집은 다 여기서부터 발생한 결과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그런 간섭들이 <에일리언 3>가 현재까지 정상적으로 취급되지 않도록 만들어버린 것이죠. 2013년 초에 발매된 게임인 <에일리언 : 콜로니얼 마린즈>는 20세기 폭스에서 정식으로 후원받아 <에일리언 2>의 정식 후속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의 내용은 전면적으로 <에일리언 3>가 성립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이건 꽤 우스운 지경이죠. 자신들의 간섭으로 영화가 제대로 설 수 없도록 마비 시키고, 이제와서는 그 정통성을 부정해서 삭제하겠다는 의도로도 보이잖아요?
여튼 오락영화로써의 시리즈를 지키고 싶어하는 폭스와 유명 시리즈 내에서 자신의 색체를 살리고 싶어한 데이빗 핀처의 입장은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그리고 어느쪽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긴 모호하죠. 그래도 저는 핀처의 입장에 손을 더 들어주고 싶긴합니다. 이유는 하나 뿐이예요. 그래도 핀처의 입장이 어느정도 살아있는 SE를 보면 이 영화는 충분히 ‘어떤 방향으로’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영화였거든요. 어디로도 소속시키기 힘든 상영판보다야 더 낫다 이겁니다.
사실 상영판도 두 부분에서만 칼질을 안했었다면 충분히 핀처의 본래 의도도 살렸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너무 단순한 이유로 이 부분을 수정해서 최소한의 의도조차 날려먹었어요. 저는 이런 칼질이 작가에게는 그야말로 빅엿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두가지 요소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중요했을지 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가증스럽게도 Dog Alien이라고 적힌 핫토이 에일리언 3
- 괴물의 숙주 생물
그냥 크리쳐 영화로써 보면 이건 별 상관없는 문제긴 합니다. 설명하자면 상영판에서는 개가 숙주가 되고, SE에서는 황소가 숙주가 됩니다. 그래서 나온 괴물의 모양은 큰 차이가 없고요. 그렇지만 장르를 뛰어넘어서 본다면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상영판에서는 꽤 잘려나갔지만, 그래도 후반의 용광로 괴물몰이 장면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존자들이 모두 합심해서 어지러운 지하에서 괴물을 용광로까지 몰아가는 장면이죠. 본 작품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지러운 지하 통로’라는 배경입니다. SE에서는 이 부분이 더 보강되어서 꽤 길고 어지럽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괴물의 시점으로 찍힌 시점샷도 굉장히 많고요. 그렇게 깔끔하게 연출된 장면은 아닙니다만, 저는 이 부분이 의도적으로 좀 복잡하고 정신없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미궁의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겠죠.
이쯤되면 눈치 빠른 분들은 감이 올겁니다. 핀처가 만들고 싶었던 이미지는 ‘황소’와 ‘미궁’입니다. 즉 <에일리언 3>의 괴물은 단순한 우주괴물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의 소머리 괴물인 미노타우르스의 상징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괴물이 미노타우르스가 됨으로써 어떤 것들이 변하냐고요? 굉장히 많은 것들이 바뀝니다. 일단 영화 전체가 어떤 신화적 긴장감으로 만연해집니다.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담고 있는 중세 종교적인 색체와 고대 신화의 괴물이 양립하게 되는거죠. 이로써 만들어지는 긴장은 그냥 괴물영화의 긴장이 아니라 독특한 긴장으로 변화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피오리나 161에도 거대한 미궁이라는 이미지가 생깁니다. 그리고 신화에서의 미노타우르스의 발생 원리, 즉 신앙적 원죄가 이 장소에 덧씌워지죠. 신화에서 미노타우르스는 해신 포세이돈에게 지내기로 한 제사를 치르지 않은 대가로 생겨난 괴물입니다. 바로 불경함의 상징이죠.
괴물과 주인공 리플리와의 연관관계도 확연히 달라지게 됩니다. 본 작품에서 괴물은 리플리가 퀸의 유생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에 공격하지 않아요. 이 관계는 괴물과 리플리의 관계를 일종의 혈연관계처럼 느끼게 하죠. 그리고 리플리는 모두가 괴물을 퇴치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미노타우르스는 자신의 동생(일 수 있는) 아리아드네의 인도에 의해서 사망하게 되는 것과 빗대어 볼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런 상징적 해석들은 더 가다듬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은 제가 급하게 떠오른 것들만으로 정리한 것들이죠. 이런 연관관계들을 더욱 심도있게 보면 기존에 보지 않던 어떠한 의미들을 더 발견할 수 있게됩니다. 중요한건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가 아니예요. 그저 괴물의 숙주가 개에서 황소가 된 것 만으로도 이 영화를 관람하는 폭이 넓어진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 괴물이 개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이 모든 이미지는 무너져요. 폭스가 왜 개로 바꿨는지는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결과물인 괴물이 굉장히 날렵하고 공격적으로 생겼거든요. 마치 사냥개 같은 인상이죠. 게다가 SE에서 소의 배를 뚫고 나오는 괴물은 이전 시리즈의 체스트 버스터와는 썩 달라요. 어느 정도 성장한 상태에서 훌쩍 뛰어나오 거든요. 게다가 소의 배를 뚫고 나오는 장면은 굉장히 불쾌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전작과의 연계성을 위해서, 그리고 장면의 순화를 위해서 개로 바꾼 모양입니다. 철저하게 상업적인 선택이죠. 하지만 그게 가져다 준 폐해를 보세요. 이래서야 영화가 완전히 거세된것이나 다름 없잖아요.
- 리플리의 죽음
이것도 괴물의 숙주와 거의 비슷합니다. 상영판에서는 용광로로 추락하는 리플리의 배를 뚫고 퀸의 체스트 버스터가 나오죠. 리플리가 이 괴물을 양손으로 감싸면서 추락합니다. SE에서는 그런 것 없어요. 그냥 용광로를 향해 추락합니다. 이때 리플리는 양팔을 벌려서 십자형으로 추락하죠.
애당초 핀처가 가지고 있던 테마와 그 사이에 제가 늘어놓은 이야기들로 종합해보면 리플리가 ‘왜’ 십자형으로 떨어지는지 쉽게 유추가 되죠. 굳이 더 설명을 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깔끔하게 정리하자면 구세주의 죽음이예요.
생각해보면 이 부분은 상영판이 굉장히 이상해요. 마지막에 비샵의 원형이 된 연구자가 나타나서 ‘연구를 위해’ 리플리를 잡아가려고 하죠. 하지만 리플리는 그것을 거부하고 관군(!)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십자형으로 떨어져 죽는겁니다. 하지만 상영판은 어차피 곧 있으면 퀸의 유생이 리플리를 뚫고 나올 예정이었잖아요. 리플리는 뛰던 말던 몇분후에 가슴이 뚫려 죽을 예정이었던 거죠. 애당초 연구원도 리플리도 미래가 없었던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상영판의 이 설정은 논리적으로도 영 재미가 없거니와, 리플리의 구세주적 행위에도 맞지 않은 기형적인 장면입니다.
게다가 낙하하면서 퀸의 유생을 양손으로 감싸잖아요. 이게 영 이상해요. 도망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는 거라고 하기에도 이상하죠. 어차피 공중이고 곧 낙하해서 죽을거 잖아요. 애당초 이 유생은 살아남을 가망이 없어요. 리플리가 손으로 덮는 모양새도 막으려고 하기 보다는 뭔가 애정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죠. 이 부분은 아예 전체적으로 어딘가 매무새가 안 좋습니다.
다만 SE는 리플리의 추락이 굉장히 빠릅니다. 그냥 슉- 하고 떨어져 버리죠. 아무래도 이 부분은 제대로 된 촬영분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좀 듭니다. 그래서 있는 소스를 특수효과로 마무리 한 것이지 않나 싶은거죠. 아마 정상적이라면 리플리의 죽음은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 보여줄테니까요.
본문에서 자주 SE를 언급하긴 했지만, 솔직히 SE도 그렇게 확 완성도가 느껴지진 않아요. 다만 ‘그냥’ 크리처 영화라고 말하기는 힘든 에너지, 그리고 종교적 상징들이 훨씬 더 잘 나타나고 해석할 여지도 다양해지죠. 이 SE도 말하자면 완벽한 버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에는 촬영분을 가지고 핀처의 의도에 따라 재 편집한것에 지나지 않거든요. 촬영 도중에 받게된 태클들 까지는 복구가 안되는 버전인거죠.
그래도 이정도 수복으로도 작품의 인상이 확 달라집니다. 게다가 핀처가 가진 비주얼적인 능력이 십분 발휘되어 있으니 시각적으로는 (괴물이 나오는 저질 CG는 빼고) 충분히 만족스럽고죠. CG만 제외하자면 20년전 영화라도 여겨지지 않을 만큼 세련된 부분이 많습니다. 이게 상영판에는 눈에 잘 안들어오는 이유는 영화가 어중간하기 때문이예요.
저는 그래서 이런 이유로 ‘완벽한’ <에일리언 3>가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영영 못보겠죠. 핀처 도 <에일리언 3>는 자신에게 있어서 지우고 싶은 역사처럼 다루고요. 좋아요. 영화도 사업이니 돈을 버는 것이 꽤 중요하겠죠. 그래도 자신들이 돈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더 잘 만들 수 있다고 여기지는 말았으면 해요. 그래도 지금은 좀 더 나아졌을까요? 별로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헐리웃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어보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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