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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1. 우산,전화,다이어리

아직 해질때는 아닌데 하늘빛이 심상찮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햇살 가득하던 거리가 어둑해진다.

 

' 비온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비가 오려나? 우산도 없는데 비오면 안되는데...

  곧 그치겠지? 아씨, 비오면 돌아다니기도 귀찮은데 흠... '

 

창밖으로 그늘이 져가는 거리에 슬쩍 눈길 한 번 준 뒤 쓰고있던 다이어리로 다시 눈을 돌린다.

새해가 되고 이주나 지나서야 겨우 여유가 생겨 간만에 한적한 토요일 오후를 즐기던 참이었다.

올해는 부디 행복으로 가득찬 일년이 되길 바라며 새 것 특유의 냄새가 나는 신년 다이어리

빈칸위로 약간의 설렘섞인 다짐들과 희망적인 문구들을 적어내려간다.

 

' 음, 올해는 꼭 오빠랑 바다 보러 가야지. 살 좀 빼려면 고생 좀 하겠구나. 으휴. '

 

빨간색 볼펜으로 ' 다이어트 ' 적고는 중요한 티를 팍팍 내는 별표 세개.

' 여름 목표: 오빠와 바다 여행가기 ' 에다가는 밑줄 쫙 힘차게 그려넣고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 미소가 번진다.

 

everything's alright ♪

 

한사람만을 위한 익숙한 벨소리가 흐르고 좋아하는 노래라고 감상하다말고 흠칫,

얼른 전화를 받는다.

 

" 여보세요? 아, 오빠. 벨소리 듣다가 전화 늦게 받았어. 미안 헤헤, 일은 언제 끝나?

아, 오늘 야근이야? 요즘 야근하는 날이 많네, 우리 오빠 힘들어서 어떡하니, 흠...

그럼 좀있다가 저녁이라도 사서 잠깐 들릴까?...

그래? 아니 도대체가 일이 얼마나 많으면 저녁먹을 시간도 없는거야...

에효, 우리 오빠 고생하네. 다음번에 볼때는 내가 오빠 힘내라고 보양식 괜찮은걸로 쏠게...

그래도 일 많다고 끼니 굶지말고 뭐라도 챙겨먹어가면서 해...알았지?...

나? 어, 지금 커피마시면서 뭐 좀 하고있었어...

오빠 퇴근하면 같이 저녁먹으려고 근처에 있었는데 어어, 괜찮아. 다음에 보면 되지...

난 하던거 마저 끝내고 집에 갈거야...

응, 오빠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응...이따가 다시 전화해..사랑해...어...응. "

 

아쉬운 듯 전화를 끊고 짧게 한숨 한 번 내뱉고는 잔을 들어 목을 축인다.

단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던가?

바닐라라떼의 은은한 단맛에 살짝 남아있던 아쉬움이 가려졌는지 입술을 할짝이곤

괜히 씨익 한번 웃어본다.

 

' 흠, 오늘은 내가 연락안하고 온거니까 뭐, 아쉽긴한데 야근이라는데 어쩌겠어.

이거나 마저 쓰고 집에 얼른 가야겠다. 그사이 또 더 어두워졌네. 진짜 비오려는건가?...어? '

 

날씨를 확인하려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보던 심드렁한 눈이 일순 찌뿌려진다.

뭔가 이미 본 것을 더 자세히 보려는 것 마냥 한 곳을 집중해보는 듯 하더니

작아졌던 눈이 커지고 눈썹이 살짝 일그러진다.

무심코 전화기로 향하던 손을 멈추고 다시 한번 창밖 어딘가를 보며 그렇게 몇번을

전화기와 창밖을 번갈아 보기 시작하더니 무언가 큰 결심을 한 것 처럼 입술을 깨물곤

테이블 위 다이어리와 잡다한 물건들을 가방에 쓸어담는다.

비 올 듯한 날씨에 우산없음을 걱정하더니 지금은 안중에도 없는 듯 금새 나갈 채비를 마쳤다.

좀전까지 입술을 적셔줬던 바닐라라떼의 달달함은 어디가고 사냥감을 포착한 사냥꾼의 눈빛을

머금고는 나즈막히 한마디 내뱉으며 카페를 나선다.

 

" 이새끼는 주말에 모텔가서 일을 하나... "

 

오늘은 확실히 비가 오려나보다. 것도 예고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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