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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2. 휴대폰, 컴퓨터, 맥주

늘상 똑같은 회사생활

김부장 새끼, 지가 나이만 많으면 다냐. 왜 지가 하면 될걸 나한테 미뤄놓고 지랄이냐고..

차마 입밖으로 시원하게 쏟아내지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처리하겠습니다만 연발한 뒤

자리 돌아오면 김부장 새끼 눈깔이 뒤통수에 싸늘하게 꽂힌다.

성질같으면 진짜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자 하고 싶은데 먹고 살기 급급한 처지니

역시나 오늘도 참아낸다.

매주마다 이번엔 진짜 회사때려친다 하면서 로또 한장씩 사는게 그나마의 위안이랄까.

칼퇴근에 눈치보다 할 것도 없는 책상에서 일하는 척하다 한시간 늦게 나왔다.

이렇게 기분 뭐같을 때 한잔 같이 할 친구를 찾고자 해도

몇안되는 전화부 목록을 내리다보면 어느새 통화버튼 한번 누르지도 못하고

스크롤바는 끝에 닿아 더 내려가지도 않는다.

내가 먼저 찾지 않으면 날 찾지 않는 삭막한 인간관계.

사회물이 들수록 휴대폰은 손바닥안에 쉽게 잡히는데 사람은 손에 잡히지 않다는게

서글퍼지려다가도 그래, 술은 무슨 술이냐 집이나 가자 싶다.

콩나물 같다는 표현은 진부하지만 그것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말이 없는 퇴근길 지하철

숨막히는 공간, 나와 같은 이들로 가득찬 쇳덩이.

레일위에 놓여진 택배상자처럼 그저 목적지를 가기위해 몸을 싣고 멍하니 옮겨주는 대로 간다.

지친 하루에 지친 마음, 늘어진 어깨를 달고 도착한 집. 

내가 그나마 마음편히 쉴 수 있는 유일한 곳.

그러나 문을 열면 하루동안 머금고 있던 냉기를 내게 뿜어내는 도도한 자취방.

신발을 벗음과 동시에 방안 곳곳에 옷을 벗어 내던진다.

정리는 나중에 하는 것. 일단 당장은 그냥 좀 쉬고싶다.

하아...

이제야 집에 도착했구나, 오늘도 하루는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에 길게 숨을 한번 뱉어내고

벗어던졌던 옷들을 다시 주섬주섬 챙겨 옷장에 걸어넣는다.

샤워하고 나니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싶은 개운함이 가득찬다.

흡사 무너져 내린 듯한 어깨도 집에만 오면 대륙봉 융기하듯 솟아난다.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 꺼내 쭉 들이키고 나니 김부장때문에 막혔던 속도 뻥 뚫어지는 듯

그러다 슬슬 밥 먹어야겠단 생각에 밥솥을 열어보곤 역시나, 하면서 라면물을 올린다.

맥주 한캔에 라면 한 그릇.

먹고 살려고 일하지 뭐, 별거 있나란 마음으로 그저 입으로 넣다보니 괜히 울컥해져

젓가락질이 멈춘다.

늘상 똑같은 생활패턴, 하루일과기에 적응될 만도 한데 왜 괜히 또 이러는지.

익숙은 한데 적응하고 싶지않다는 반항일까.

새삼스럽게 울컥한 마음에 먹다만 라면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고 맥주나 마저 비운다.

혼자 있다는 적막이 싫어 티비를 켜고 괜히 볼륨을 더 높인다.

나는 오늘 하루 한번도 웃지 못했지만 굳이 예능프로를 틀어 남의 웃음소리로 방안을 채우고

멍하니 들여다 본다.

넌 뭐가 그리 재밌어서 웃냐...

눈으로 보고는 있지만 귀는 닫혀있는 내 모습에 또 울컥한다.

채널 좀 돌리다가도 에이.. 하고는 그냥 꺼버리고나니 빈 화면, 까만 브라운관에 내가 비친다.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에.

어릴적 불렀던 동요가 문득 생각나 피식한번 하고 자조섞인 목소리로 한마디한다.

내가 티비나오는건 사건사고에 투신했다고 뉴스에 뜨겠지.하하.

티비를 끄고나니 뭐 딱히 할 건 없다.

게임도 안하니 인터넷 뉴스나 좀 둘러보고 영화 볼 거 뭐있나 좀 보고 하는것 뿐.

막상 보고 자야지 하고 볼만한 영화 다운이나 받아놓고 볼라치면 어느 덧 12시가 넘는다.

익숙하다. 이런 하루.

아침 일찍 출근해서 못먹은 아침밥 대신 상사에게 욕이나 배불리 먹고 일에 시달리다 늦은저녁 퇴근, 집에 도착하고 나서 밥 좀 챙겨먹고 티비나 컴퓨터 좀 하다 시계보면 또 내일 출근할 생각에 잠에 들어야 되는 시간이 된다.

나만 그러겠냐 싶지만...역시나 익숙하니 더 진저리날 정도로 싫은 그런 생활.

오늘도 여전히 보람은 커녕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잠자리에 든다.

안오는 잠 어떻게는 붙잡으려 애쓰다 겨우 잠이 드는 서른두살 직장인.

나의 하루는 이렇게 끝이 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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