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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3. 쿠션, 소설책, 담요 ( 너와 나 )

게임에 웹서핑 하면서 왠종일 만지작 거렸더니 이제 작작 만지라며 투정부리 듯 열을 낸다. 

폰 주제에 주인님의 손길을 싫어하다니...

배터리 갈아끼울 겸 허리가 아파 잠시 일어났다.

그래, 내가 봐도 너무 폰만 잡고 사는 것 같긴하다.

아무 이유없이 그저 손가는 대로 만지작 거리다 보면 계속 달고 있게 되더라.

이걸 습관이라고 해야 할지, 버릇이라고 해야 할지.

이 참에 너도 열 좀 식히라고 내버려두고 책장앞에 섰다.

간만에 소설책이나 읽어볼까? 요즘 좀 안 보긴 했지...뭘 볼까 손끝으로 슥 훑다가 멈췄다.

아... 이걸 여태 안봤었네...

내 손을 멈추게 한 책을 꺼내들곤 자리를 잡는다.

쿠션을 등에 대고 무릎을 세워 담요를 덮고 그 위에 책을 놓는다.

읽어야지 해놓고 막상 시간이 없다, 읽을 기분이 아니라는 둥의 핑계를 대며 꽂아만 두고 있던.

그러다 너를 잊으면서 같이 잊고 있던.

 ' 표지만 봐도 이렇게 널 떠올리게 되다니... 역시 잊고 살던 게 맞았었다 ' 하는 생각에 피식.

표지 한 장 넘긴 후 오랜만에 보게 된 너의 글씨에 마저 한 장 더 넘기지 못하고 다시 멈췄다.

좀체 글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네 글씨 보기 힘들었는데 이걸 여기서 보네... 

네 글씨를 따라 한 자 한 자 눈이 흘러가고 내 시간도 예전의 너에게로 되돌아 간다.

 

2013년 정확히 1월 3일. 

우리 만나기 전부터 내렸던 눈 덕에 거리는 온통 하얀 물감 쏟아져 있었지만 도로 사정만큼은 

하얗지 못하고 막히던 차들로 까맣게 속 태웠었던 날.  

오랜만에 만나는 너였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널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

나무 위로 살포시 쌓였던 눈들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다시 곱게 흩날리던 거리.

조금 늦는다던 너를 네 덕분에 가기 시작한 카페에서 네 덕분에 마시기 시작한 커피를 시키고

네가 좋아하던 노래를 들으며 기다렸었지.

늦게 온 네가 이런저런 얘기를 할 때도 난 솔직히 네 얼굴 보느라, 오늘 뭐할까.

오늘을 함께 할 생각에 기분좋은 흥분이 가득했어.

여전히 넌 나와 무엇을 할까 보단 너의 얘기로 시작하고 끝이 났지만 그마저도 너무 좋았었어.

배고프단 말에 식당을 찾고, 추운 날씨에도 그저 오랜만에 봤구나. 좋다. 그것 뿐.

밥을 먹는 동안 다시 시작된 너의 이야기. 간간히 섞인 나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 이야기.

있잖아...사실 나 체할 뻔 했었다? 밥먹을 땐 진짜 개도 안건든다고들 하잖아?

그런데 말 한마디 한마디 나에게 훈계를 했었거든. 본인은 몰랐을걸? 그래, 몰랐을 거야.

그 때 네가 했던 말 기억하니? 넌 내게 미래를 내다봐야지. 왜 과거만 보냐고 뒤쳐진다 했었어.

난 말했지, 당장 앞을 볼 용기가 없는 아이에게 왜 못하냐 혼내지 말고 용기가 생기도록

도와주는게 맞지않냐고. 난 그렇게 과거를 보며 위안을 받는다고.

어떤 영화인지는 기억 안나는 데 엄정화 대사중에 이런 말이 있어.

' 난 혼내줄 선생님을 바라는 게 아니고 위로해줄 친구를 찾는거야 '

혼나고 싶지 않다고 위로를 원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차마 못했어.

돌아올 대답을 알고있었으니까. 구태여 일을 더 크게 하지말자 싶었지.

그 뒤 내 취향이 전혀 아닌 영화를 말도 없이 미리 예매하고 보러가자 하던 너였고

밥 먹을 때부터 좋지 않던 상태의 나를 보곤 취향 아니었다고 그렇게 얼굴 구기냐 했던 너니까.

그게 아니라고 설명해도 역시나 굳어진 얼굴로 그냥 집에 가자 했던 너.

그리고 다시 내리기 시작한 눈.

버스정류장까지 우린 말없이 걷기만 했었지. 머리위로 쌓이는 눈을 맞으며 그저 걷기만 했지.

그러다 내가 타고 갈 버스가 보일 때에서야 넌 책을 한 권 건네고 들어가라며 돌아섰지.

버스에 올라탄 후 창밖을 봤을땐 이미 넌 눈에 가려 보이지 않고 아까의 눈이 얼굴에 녹았는지

그제서야 녹아 흐르더라. 

분명 난 이러려고 한게 아닌데, 이러려고 널 보러 간게 아니었는데 돌아오는 버스안이 어찌나

외롭고 서글펐는지...

그때서야 깨달았어. 과거에 사는 나와 미래를 사는 너. 우린 갈 길이 다르구나.

내 손에 있던 너의 마지막이 된 선물. 그리고 마지막이었던 우리 이야기.

각자의 시간을 가게 된,  더이상은 우리라고 부르지 못하는 너와 나.

서로 다른 시간을 바라보던 그 날들도 이제는 추억으로 부르며 살아가는 너와 나.

넌 항상 미래를 보며 살아왔겠지만 혹시라도 한번이라도 과거를 볼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나를 알아봐줄런지.

 

일년이 더 지난 지금, 네 글씨를 따라 그때의 흩날리던 눈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다시 왔다.

별다른 내용도 없이 단지 제목만을 다시 적었던 짤막한 네 글이 눈을 내리게 한다.

과거를 사는 난, 그 날이 과거가 된 지금에서야 너에게 말할 수 있을 것같다.

바람이 불었다. 당신이 좋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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