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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717] 삐에로 초조하다. 다음 공연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에 나는 항상 이렇다. 나는 삐에로다. 굵직굵직한 쇼들 사이 사이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관심을 모으러 다닌다. 다음에 이어질 커다란 쇼의 준비를 뒤에서 하는 동안 나는 사람들을 웃기는 일을 한다. 앞선 쇼가 끝나간다. 쇼에 연신 감탄하는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온다. 마치 바다의 파도소리 같다. 다 같이 "우와~"하고 감탄을 하고 다 같이 고요해진다. 그렇게 수 차례 반복하면 그 커다란 공연은 끝이 난다. 내 공연은 그렇게 감탄하던 사람들을 불규칙하게 웃게 한다. 한마음 한 뜻인 것 같았던 사람들이 제각각 웃고 제각각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다. 내 다음 차례에 큰 쇼를 준비하는 사람도 나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이 커다란 쇼가 준비되는 동안 지루.. 더보기
[717] 헤어지다 눈을 떴다. 어느새 밝은 햇살이 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눈을 뜨고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그녀가 침대 옆에 한참 동안 걸터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새하얀 등에 아침 햇살 때문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녀의 뒷모습은 고민에 빠진 사람처럼 매우 고요했다. 나는 슬며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 그녀와 만난 지 이년이 넘었지만 그렇게 차가운 손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가만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지금 깬 거야? 이제 일어나서 출근 준비해야지."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하다. "혹시 몸이 안 좋은 거야? 손이 굉장히 찬데?","그래? 별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대답을 하고서 그녀는 자신의 손을 비볐다. "차가워 진 건가?" 무심하게 이 한마디를 뱉고서는 주섬주섬.. 더보기
[단편] 오로라 눈을 떴을 때 나는, 내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저 가슴과 배 사이의 어떤 기관이 사고를 정지한 듯 먹먹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그것이 허기 일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식사가 필요할 것 같아 냉장고 근처로 갔다. 냉장고 위에는 다이어트용의 시리얼이, 안에는 우유가 있어서 그것들로 간단히 식사를 해결했다. 위장에 음식물이 조금 쌓이자 그제서야 이 느낌이 허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동시에 그가 나를 괴롭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가 어떤 경위로 날 괴롭혔는지는 명확히 떠오르지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 꼭 따지고만 싶었다. 침대 옆으로 굴러 떨어진 핸드폰을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는 다행히 통화 기록의 제일 위에 있었다. 그가 설정해둔 컬러링을 들으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