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그냥 난 연애 안하고 살란다.”
“아니. 그런 소리 좀 하지 말고 노력이라도 해보라고! 시도도 안 해보고 포기 하는 게 말이 되냐?” 내 이 한 마디에 친구의 잔소리는 또 한 번 장황하게 이어진다. 사실 친구들의 말대로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니다. 문제는 이 녀석이나 저 녀석이나 날 만나서 한다는 소리가 매번 똑같다는 것이고, 내가 바꾸고 노력해도 주변에서 그다지 긍정적인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친구 녀석들이 날 걱정해주는 마음. 그래 그 정도는 안다. 그것이 다소 거칠게 표현되는 것도 이해는 한다. 남자녀석들의 세계란 그런 것이니까. 그래도 그렇지 거기에다가 했던 이야기 하고 또 하고… 정말 저 녀석들은 지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래. 나 모태솔로로 연애 한 번 못해본 남자다. 남들이 종종 말하는 썸이라는 것도 타본적도 없다. 엄밀히 말해 나 혼자 썸을 타기는 했다. 문제는 나는 썸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나 상대들은 그것을 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그 흔하다는 썸조차 타보지 못한 녀석이 나란 녀석이다.
나 혼자 헛물켜고 술 한잔 들이키자고 불러낼 때마다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는 항상 똑같다. 일단 외모를 꾸미라는 것이다. 친구들 말에 의하면 일단 깔끔한 정도면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서 깔끔하게 입어도 친구들은 그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버린다. 아니 도대체가 나 보고 어쩌라는 것인가? 여자들이 좋아하는 깔끔한 외모의 기준이 무엇이냔 말이다.
이렇게 물어 보는 단계에 오면 친구들의 말은 모두 자신의 집을 찾아가듯 흩어지게 된다. 이 녀석 말을 듣고 나면 저 녀석이 이거라고 이야기하고 저 녀석이 이거라고 하면 이 녀석이 저 거라고 하고. 내 참…. 그런 식으로 친구녀석과 술 한 잔을 하면서 오늘도 그 지겨운 잔소리로 이어진 것이다. 아! 지겹다.
친구와 술자리가 그렇게 끝나고 술도 깰 겸 해서 집까지 가는 30여분 정도의 거리를 걸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취직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다들 뿔뿔이 흩어진다는데, 고등학교 동창녀석들이 10여년 넘게 아직 같은 동네에 그렇게 오래 사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하다.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술김에 괜시리 아무도 없는 길거리에서 소리를 질러봤다. 젠장. 그래도 답답함은 가시지 않는다.
나는 왜 연애를 못하는 것일까? 이러다가 노총각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일까? 내 꼴을 보면서 친구들이 우스갯소리로 우크라이나에 가서 샤라포바 닮은 여자라도 데려오라고 한다. 한국어가 되는 한국 여자들도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해 죽겠는데, 말도 소통이 안 되는 외국여자라니. 그건 더 안될 말이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생각하긴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왠지 모르게 그 우스갯소리가 솔깃해진다.
괜히 한국 여자들을 탓해본다. 왜 나같이 좋은 사람을 몰라보는 것인지 말이다. 항상 여기저기서 듣게 되는 여자들의 이별 이야기의 상당수는 남자가 바람둥이였다는 소리다. 한국의 여자들은 바람둥이들이 다 만나고 다니는 건가? 그래서 나는 연애할 여자 조차 없는 것인가? 괜히 다른 사람 탓도 해본다. 아우! 짜증난다.
하늘에는 달도 없다. 해 지기 전에 하늘을 봤을 때 비올 듯이 흐리더니만, 결국 그 구름들이 달을 가렸나 보다. 이놈의 하늘도 나를 안도와 준다. 모처럼 하늘을 바라보면서 운치 있는 귀가 길을 느껴보려고 했더니만, 어째서 날 도와주지 않는 것일까? 혼자서 영화처럼 살아보려 해도 세상이 도와주지 않는다.
못됐다. 하늘도 한국 여자들도, 내 친구들도 다 못됐다.
투덜투덜 거리면서 집까지 걸어왔다. 12시가 다되었다. 집에서 나설 때가 7시 17분인가 그랬는데, 벌써 자정을 넘긴 것이다.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쇠로 열었다. 부모님이 그 때까지 연애 한번 못해본 못난 아들을 기다리셨나 보다.
“다녀왔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래. 빨리 씻고 자라. 내일 출근해야지.”
“네.”
괜히 눈치 보면서 내방으로 들어간다. 종종 부모님과 TV를 보다가 연예인들의 연애 소식이 나올 때면, 나도 모르게 숨고 싶어진다. 그 때마다 ‘너는 언제나 연애 할 거니?’라는 질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니 요즘은 그 질문이 “결혼 빨리 해야지 벌써 많이 늦었잖아”로 바뀌었다. 나이 때문에 연애라는 것도 건너 뛰고 결혼 이야기를 먼저 하신다. 연애도 못해본 놈이 결혼은 무슨 수로 할 수 있겠는가. 오늘 따라 그런 잔소리 없이 방에서 쉴 수 있게 보내주신 부모님께 괜히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가 밖에서 이미 그런 말을 많이 듣고 왔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것일까?
양치질을 하고, 세수도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갑작스럽게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나란 놈은 왜 사는 것일까?’ 괜한 문장 하나가 머리 속을 스쳐갔다. 서럽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나쁜 짓 한 번도 안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러는 것인지. 소리 없는 울음이 자꾸만 흘러내린다.
“나 착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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