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는 보고나면 누군가와 떠들고 싶어 입이 가려워지는 영화입니다. 수 많은 상징성이 적재적소에 들어가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반전과 상징성 때문에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함부로 내용을 이야기하기 힘들기도 하죠. 저는 주변사람들이 다 영화를 봐서 실컷 떠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의, 이 글은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많은 상징과 반전을 가지고 있으므로 영화를 먼저 보길 권합니다.
판타스틱 포와 어벤져스에 출연한 크리스 에반스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연기력 자체는 크게 모자라지도 뛰어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더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모자라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명품 조연들이 많다보니 크게 뛰어나 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영화 최고의 연기력은 틸다 스윈튼인 것 같습니다. 꼬리칸 사람들에게 하는 연설부터 사로잡히고 나서 협력할 때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중간에 죽어버린 게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그녀가 연설 중 하는 손짓은 엔진칸 장면과 연결되죠.
특유의 표정으로 기억하는 배우, 이완 브렘너. 최근에는 그 표정이 조금 질리기 시작했는데요. 그래도 괜찮은 배우죠. 개인적으로는 블랙 호크 다운의 귀머거리 역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영화 점퍼에서 그리핀으로 출연했던 제이미 벨, 정보를 찾다보니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로 데뷔했다고 하네요. 점퍼에서는 주인공보다 인기가 많았죠. 주인공 커티스를 형처럼 믿고 따르는 에드가 역입니다. 에드가가 붙잡혀 커티스를 부르는데 커티스는 에드가를 구하지 않고 총리인 메이슨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에드가는 죽고 말죠. 이 장면에서 일반적인 헐리웃 영화는 총리를 보내주고 에드가를 구했을 겁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뻔한 장면을 피한 것 외에도 친구보다 적의 간부를 잡아야 하는 싸움의 절박함을 잘 보여준 것 같아 좋았습니다.
존 허트가 연기한 길리엄은 극 중 팔다리가 하나씩 없는 인물로 나옵니다. 초반에 팔이 잘리는 앤드류 때문에 그의 팔다리는 반란을 지휘하다 벌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마 저처럼 속은 사람이 많을 텐데요. 앞서 있었던 반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거나 엔진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들 때문입니다. 특히, 윌포드가 엔진에 미친 사람이라고 단정하고 그와 만나면 대화하지 말고 바로 죽이라는 말을 통해서는 열차를 타기 전부터 그를 알고 있다가 배신을 당했다는 예상을 제멋대로 했습니다. 사실 다른 비밀이 있었지만요.
송강호가 출연한다고 했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이 영어 대사였습니다. 하나는 어설픈 영어대사 때문에 연기력이 빛바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또 하나는 발성을 깊게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사를 하는 송강호의 스타일 때문에 외국 배우들 사이에서 대사가 잘 들리지 않을 것 같다는 걱정이었습니다.
처음 걱정은 한국어 대사를 했으니 해결 됐지만 두 번째는 결국 예상한대로 였다는 아쉬움이 있네요. 전 사실 한국영화의 대사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외국 영화에 비해 연기가 더 자연스러워지는 장점은 있지만 자막이 없는데 대사가 분명히 들리지 않을 때는 좀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발성에 신경쓰는 외국 배우들과 같이 연기하면 더 목소리가 안들리겠다는 걱정이 있었는데 실제 그런 장면이 조금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좋다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영화가 가진 장단이라고 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영화에서 대사가 너무 안들리는 장면은 새로운 녹음기술을 적용하든, 나중에 대사만 음량을 높이든 신경을 더 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번역기 개그는 재미도 있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남궁민수의 한국어를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반면 고아성은 더빙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영어를 잘해서 놀랐습니다.
연기도 좋았고 영어대사도 잘하고 앞으로가 기대되는 고아성. 하지만 그녀와 불사신같은 총리의 경호원과의 관계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그녀의 투시력은 바닥에 갖힌 아이를 찾는데서 중요한 영화적 도구고, 악당이 쫓는 이유는 요나가 형제를 죽였기 때문으로 해석하는 게 많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렇고 관객들도 요나와 악당이 자꾸만 눈을 맞추고 서로를 죽이려하는 모습이 뭔가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중요한 장면이 편집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윌포드 역의 에드 해리스. 영화 트루먼쇼에서 트루먼을 아들처럼 생각하는 PD크리스토프로 나옵니다. 거기서도 조용히 트루먼을 설득하는 장면이 있는데 설국열차에서도 커티스를 설득하는 장면이 너무나 비슷했습니다. 트루먼 쇼에서도 잘 어울리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커티스를 설득 할 때, "혼자 있어본 적이 언제냐."고 묻는 장면이 가장 좋습니다. 사람은 혼자있을 땐 외롭지만 또 가끔은 혼자있고 싶은데 꼬리칸에서는 그런 개인의 공간이 없지요. 엔진 한 가운데서 혼자 우는 장면은 정말 공감갔습니다.
어둡고 비좁은 꼬리칸의 생활, 윌포드는 사람이 죽고 나면 조금 더 넓은 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죠. 그리고 생태계를 굉장히 강조합니다. 하지만 생태계를 위해 희생하는 게 꼬리칸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상황 자체가 권력의 횡포고 불공정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초반 꼬리칸만 보다가 나무가 있는 칸으로 오자 눈이 시원해 지더군요. 이런 장면을 십년 넘게 못 본 꼬리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알록달록한 교실칸이나, 파란 수족관도 특유의 색감을 보여주며 그 색깔 만으로도 차별을 느끼게 합니다. 꼬리칸에 와서 연설하는 메이슨이나 아이를 데려가는 여자도 원색을 옷을 자랑하듯 입고 있습니다. 색깔이 생존에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겐 즐거움을 주는 것입니다. 이런 색깔까지 독점하는 모습은 문화와 예술, 지식과 학문을 독점해 사람들을 지배하는 오래된 권력구조를 보는 듯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상징은 총리 메이슨부터 시작된 손짓과 엔진, 자신의 자리와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기계안에 집어넣고 기계처럼 움직이게 하는 것. 흔히 말하는 사회의 톱니바퀴를 직접적으로 사람을 기계에 집어 넣음으로서 보여주는 이 장면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남궁민수와 대비되며 중요한 것은 사회의 유지가 아니라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으로 사회를 빠져나가거나 부수는 것도 괜찮다는 거죠. 과격한 혁명주의를 상상한다고 비판하는 분도 있겠지만 혁명의 과격함 정도는 억압과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희생을 강요하기 보다 함께 행복할 방법을 생각했다면 애초에 혁명도 없었겠죠.
저는 영화의 결말이 100% 해피엔딩이라 생각합니다. 커티스는 팔을 희생하며 아이를 살렸고 요나는 남궁민수의 바람대로 바깥세상에서 살게 됐으며 북극곰은 힘들더라고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을 보여주죠.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생각이 나지 않네요.
상징이 많은 영화고, 영화의 상징은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과 그런 차이를 찾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방법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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