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 어드벤쳐
발매년 : 2012년
기종 : 플레이 스테이션 3, PC
제작사 : 마이너리티 (Minority)
어느새 인디 게임들의 미덕 같은 것이 생긴 것 같다. 그것은 일종의 스토리텔링의 모호함과 상징성이다. 물론 전세계에서 발매되고 있는 수많은 인디 게임이 그럴리는 없고. 역으로 접근하자면 게이머들에게 인기있고 자주 회자되는 게임들이 주로 가지는 스토리텔링 방법론이라고 보는게 옳다. 이런 게임들이 자주 회자되는 이유는 있을 것이다. 이런 모호함은 유저들로 하여금 어떠한 담론을 형성하게 한다. 모호한 결말이나 작중의 상징들에 대한 질문들,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한 토론들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논의들이 발전하다 보면 인간이나 사회, 문화등의 거대 담론들과 연계되기도 한다.
이런 게임들은 생각해보면 게임 자체보다 그 뒤에 형성되는 담론들, 그리고 그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재미있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게임으로써는 조금 부실한 경우도 볼 수 있다. 벨기에의 Tale of Tales사에서 만든 <더 패스>의 경우가 그렇다. 이 게임은 동화 <빨간 모자>를 각색하여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독특한 분위기와 내용을 추측해야 하는 다양한 상징들로 가득하다. 숲을 뛰어다니는 소녀들은 의도적으로 전방을 보기 힘들게 만들며, 달리는 궤도가 의도적으로 살짝 틀어지게 만들어 놓은 등 컨셉을 위해 소모한 부분도 많다. 그럼에도 이 게임은 결국 소녀들의 과거를 상징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는 것이 게임의 전부를 소모한다. 이것을 즐길 수 있는 플레이어는 상관이 없으나, 어떠한 플레이어들은 이 안에서 큰 동기를 얻지 못한다. 게임의 외적인 메시지에 주목하다 보니 게임 플레이 자체는 부실해진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게임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게임을 제작한 목적성과 그 디자인에 있어서는 칭찬받을 부분이 있다. 어디까지나 접근성의 문제다.)
Tale of Tales사에서 만든 <The Path>
이러다 보니 게임내에 상징들을 포함시키는 데에는 주의해야 할 일들이 있다. 주객전도를 의심해야 한다. 게임 내에서 메지시를 담는 것을 너무 의식하다 보면, 게임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게임 플레이’라는 요소를 갉아버릴 수가 있다. 어찌되던 매체는 그것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매체 자체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파포 & 요>는 그런 면에 있어서는 꽤 모범적인 게임이다. 이 게임 역시 마찬가지로 실제 표현하는 요소들이 게임 내에서는 상징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게임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액션 어드벤쳐’라는 장르에는 충분히 부합한다. <파포 & 요>의 레벨 디자인은 깔끔하며, 퍼즐들은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 적당한 두뇌 회전을 요구한다. 때때로 플레이어의 컨트롤을 필요로 하는 퍼즐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조금만 패턴을 익히면 어렵지 않다. 게다가 캐릭터의 사망이라는 요소가 없기 때문에 편하게 진행할 수 있다. 게임이 가진 외관과 게임 플레이만으로 보자면 동화적인 이미지를 부여한 재미있는 액션 어드벤쳐 게임으로 봐도 무관할 정도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게임이 센세이셔널하게 여겨질 이유는 없다. 냉정히 말하자면, <파포 & 요>의 어드벤쳐적인 요소들은 훌륭하지만 새로운 구석은 없다. 레벨 디자인은 깔끔하지만 독특한 사고와 플레이 감각을 요하진 않는다. 장르적으로 보자면 평이한 게임이다. 물론 꽤 재미있지만, 꽤 재미있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 게임이라는 바닥이다. 플레이어들에게 명확한 인상을 제시하지 않으면 기억에 남지 않는다. <파포 & 요>가 게임 플레이라는 면에서 <이코>보다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파포 & 요>에는 상기에 제시한 대로 인디게임들이 가지는 모호함과 상징적인 스토리텔링을 지니고 있다. 마치 꿈처럼 여겨지는 배경,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 과일을 좋아하는 거대한 괴물, 주인공을 지켜주는 로봇 등의 요소들이 그렇다. 게임을 플레이하면 이들이 왜 등장하는지, 주인공은 왜 이곳을 헤메이고 있는지, 소녀는 왜 주인공의 앞에 자주 나타나는지 알 도리가 없다. 다른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이 진위는 어딘가에 숨겨져 있고, 플레이어는 이것에 동기를 갖고 게임 플레이라는 행위로 그 진위를 파헤쳐 나가게 된다.
이 게임이 가지는 미덕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발생한다. 첫 문단에서 밝힌대로 많은 게임들은 그런 요소들을 게임의 끝까지 꽁꽁 감춰둔다. 그저 상상할 수 있는 단초만을 제시할 뿐이다. 이 단초를 가지고 플레이어들을 많은 의견을 내놓으며, 그것들을 서로 교환하고 진실을 찾는 작업으로 확장한다. 하지만 <파포 & 요>는 아니다. 이 게임은 그런 상징들을 담아두고 있긴 하지만, 완벽하게 감추진 않는다. 이 게임이 담고 있는 상징들 (주인공, 배경, 괴물, 소녀 등) 은 게임을 클리클 할 때 즈음 플레이어로 하여금 쉽사리 추리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차이는 바로 자세에서 나온다. <파포 & 요>에는 다른 게임들과 차별되는 ‘진실성’이 존재한다. 물론 다른 게임들 (<브레이드>, <더 패스> 등) 이 거짓을 말하는 게임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시된 게임들은 어디까지나 의중을 숨기고 외적인 담론을 통해서 메시지를 확립하도록 요한다. 이것은 돌려서 말하자면, 게임 자체가 직관적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보다는 의견 교환이라는 소통에 의한 결과물에 더 주목한다고 할 수 있다. 자체적으로 품고 있는 메시지는 플레이어들간의 소통이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 불완전한 것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이것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 또한 목적이며 방법론이다.)
<파포 & 요>는 게임 발매 전에 공개한 트레일러 영상에서 이미 괴물이 양복을 입고 있는 장면을 공개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정황상 괴물이 주인공의 아빠임을 짐작 할 수 있는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고도 한다. 이 게임은 괴물이 상징하는 상징물을 애당초부터 숨길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괴물이 아빠라는 것을 추적하도록 요하는 것 또한 아니라는 것. 괴물이 아빠라는 것이 이 게임이 품고 있는 메시지의 답도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요소는 ‘괴물이 아빠인데 그게 어쩌라는 것이냐.’다. 다른 게임과 다르게 <파포 & 요>에서는 진실 자체에 큰 공란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공란을 채워나가는 방법이 바로 게임 플레이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이 게임을 플레이 하고 난 후 괴물이 아빠고, 개구리가 술이라는 것을 탐구하는 자체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혹 이 요소를 미리 알았다고 하더라도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알게 되는 충격에도 크게 문제가 없다. (눈치 빠른 플레이어는 이미 첫번째 데모씬에서 괴물이 아빠라는 것을 눈치 챈다. 애당초 제목도 <아빠와 나>이기도 하고.) 이 게임에서 주는 메시지와 충격은 게임의 내부에, 게임 플레이에 담겨져 있다. <파포 & 요>의 메시지에 대한 탐구는 게임을 온건히 클리어 했을때만 나오도록 조정되어 있다고 봐도 충분하다.
다시 ‘진실성’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면, <파포 & 요>가 가지고 있는 진실성은 전달하려는 메시지 그 자체에 있다. <파포 & 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게임의 디자이너인 밴더 카발레로(Vander Caballero)의 과거사에 기인하며, 그가 아버지를 보고 느꼈던 그 감정 그대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로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전달하기로 결정하는데 10년이 걸렸다고 인터뷰 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게임을 플레이하면 밴더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느꼈을 듬직함, 친숙함, 두려움, 슬픔등이 거의 그대로 드러난다. 이것은 메시지와 상징을 숨겨놨다가 많은 담론과 접촉해야 알게 되는 진실과는 그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이 게임을 통해서 얻게 되는 감정은 해석을 요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게임은 각각의 상징이 무엇을 뜻하는지 감추지 않는다.
<파포 & 요>를 플레이 하면서 얻는 경험은 다른 형태로 어레인지된 밴더의 축약된 경험이다. 비록 그가 아들로써 아버지와 함께 겪은 이야기들과는 완전히 다르겠지만, 그 안에서 괴물과 함께 느끼는 감정은 거의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게임은 플레이를 끝내는 것에 그 가치가 존재한다고 봐도 좋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 했던 그 경험이 밴더의 감정으로 치환되는 시기가 오게 되면, 게임의 레벨 디자인이 가지고 있던 구성들이 단순한 게임 플레이로 느껴지지 않게 된다. 그야말로 메시지와 게임 플레이가 온건히 함께 움직인다.
물론 이 배경에는 제작자의 용기있는 자기고백이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가 흔히 불 수 있는 액션 어드벤쳐가 누군가의 과거사에 대한 기록으로 탈바꿈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게임을 ‘플레이’했기 때문에 그의 감정을 경험으로써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많은 매체들이 감정을 전달하려 한다. 이야기의 기반에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보다 더 강력한 전달제는 없다. 밴더 카발레로가 자신의 고백을 위해서 게임을 선택한 경위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지금보다 더 강력한 전달은 힘들었을 것 같다. 최소한 내 느낌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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