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내내 정신없게 뒤흔드는 영화.
영화를 보고난 느낌이라면 딱 이정도 일듯싶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가만히 지켜보았지요. '그래 이 시끌시끌한 광고 값 만큼 하는 영화인지 한번 두고보자.'란 마음으로 노려봤습니다. 그렇게 노려보려고 하는데, 초반부터 쿵쾅쿵쾅 액션이 시작되더군요.
그래요. 액션은 남자의 눈을 사로잡아서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장치입니다. 거기다가 로봇이잖아요. "철컹철컹 우앙~~ " 이런 기계음에 귀와 마음까지 빼앗기죠. 이렇게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 앞 자리 앉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키면 김이 새긴해요. 한대 때려주려다가 말았습니다. ㅡㅡ;; 뭐가 그리 바쁜지 영화 끝나갈 무렵되서 화면을 떡하니 막다가 나가더군요.
뭐 영화관에서 본 비매너는 일단 치워두고, 영화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그렇게 초반부터 시작된 액션이 마지막까지 이어지더군요. 아! 그렇다고 영화 내내 액션 장면만 나오는 것은 아니에요. 음... 웅장한 액션 장면이 영화의 전반을 다 차지할 정도라는 것이지요. 등장 인물들의 고뇌와 고통이 없냐구요? 아뇨. 있어요. 나름 진지하게 나오긴 해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액션으로 승화시켜서 그런 이야기에 신경쓸 겨를이 없더군요. 영화를 보고나면, "참 신나게도 싸웠네"라는 말 한마디 내뱉게 됩답니다.
액션과 SF 로봇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환호할 만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괜찮은 것은 일부러 아무생각 안하고 봐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봐야할 영화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아무생각 없어지는 영화라는 점이지요. 최근에 개봉했던 대작들이 애써 단순하게 보자며 되뇌여야만 했던 영화라면, 퍼시픽 림은 보다보니 별생각 없어지는 영화에 가깝습니다. 물론 영화를 노려보면서 '이건 이런 이유로 이렇게 해석해야되고 어쩌고 저쩌고'라며 따지면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요.
액션과 더불어서 눈여겨봐야 할 것, 혹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영화 안에 녹아들어가있는 일본 대중 문화 색입니다. 이야기의 설정과 이야기 속에서 표현되는 케릭터들의 표현 방식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지요.
우선은 주인공이 타는 로봇 집시 데인져가 처음 등장해 싸움을 시작할 때 취하는 포즈는 일본식 무사도를 나타내는 행동입니다. 물론 중국의 무협에서 따왔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석하는 것보다는 중국의 무협속 무사도를 일본 애니등에서 활용한 것을 미국인 감독이 가져왔다고 봐야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로봇을 칭하는 단어인 예거에서도 확인 할 수 있는데요. 왜 독일어인 예거가 일본 문화의 흔적이냐고 반발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그럴만하죠. 일본 대중문화의 특성을 모른다면 단순한 독일어일 뿐이죠.
그런데 일본 문화에서 독일식 단어는 일본인들의 서양에 대한 동경의 잔재입니다. 역사적으로 일본이 독일을 비롯한 북동부 유럽과 꽤 가까웠습니다. 네덜란드가 그러했고 세계대전 때 독일과 동맹을 맺은 것도 그러했구요. 그래서 독일어에 대한 영향과 게르만 족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일본 대중문화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대표적인 SF소설 은하영웅전설이 입니다. 거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중 한명이 로엔그람이 속한 제국의 시스템(?)과 귀족을 표현하는 이름 모두가 독일에서 따온 것이지요. 가장 최근의 유행 애니메이션인 진격의 거인에서도 오프닝 음악의 가사에서 예거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이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다보면, 일본이 얼마나 독일 그리고 게르만족에 대한 동경이 강한지 쉽게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괴물의 형태는 전형적인 일본식 괴물의 느낌이지요. 마치 일본식 고질라의 느낌이 강하지요. 괴물들의 생김새가 일본의 특촬물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강렬하게 풍깁니다. 음... 혹시 보셨을지도 모르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사도라 불리는 괴물들과도 꽤 닮은 점이 많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야기의 전체적인 틀도 에반게리온과 같군요. 어디선가 나타나는 거대 괴수와 그에 맞서 싸우는 거대 로봇과 그 안에서 싸우는 파일럿(사람)들의 갈등과 회복, 뭐 이런 이야기가 같죠. ^^;;;
이야기를 이끄는 스토리부터 표현되는 모든 것들이 일본 대중문화가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단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미국 사람이고, 스토리를 쓴 사람이 미국사람이며, 자본이 미국 자본이라서 미국에서 돈을 벌어간다는 것 정도랄까???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미국 세대들이 왕성한 사회 진출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다시말해 일본 대중 문화가 매우 친숙한 미국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받고 성공 가능성이 있음을 점쳐졌다는 것이 그만큼 미국 안에 일본 대중문화가 얼마나 잘 녹아들어 있는지를 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있다는 이야기지요.
영화 이야기 하다가 이야기가 일본 문화쪽으로 흘러가버렸는데요. 그만큼 이 영화는 흥행을 떠나서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는 영화입니다. 미국내의 대중문화 뿐만 아니라 일본과의 연계성 등을 모두 살펴볼 수 있고 또 그것이 표현된 영화기도 하기 때문이죠. 크레딧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올린 수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지요.
앞선 이야기를 정리해서 영화에 대한 평을 다시 한번 해야겠군요. 영화는 볼만합니다. 걸작까지 나아간다고 할 수는 없지만, 챙겨서 볼 만한 정도의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재미도 재미지만 영화가 가지는 문화적인 의미가 있으니까요.
영화에 대한 평을 하자면, 미국인이 만든 일본식 괴수와 로봇의 싸움 영화.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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