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요일

뮤지컬 그날들

"넌 김광석 노래를 들으면 뭐가 생각나?"

"나? 음, 말로는 정확히 표현을 못하겠는데 세상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절망, 허전함, 외로움이 생각나"

  당신은 어떠신지? 당황스럽게도 나는 김광석의 노래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접했다. 그 당시 서로 좋아했던 한 여자아이에게서 받은 선물인데 처음 받고서는 당황했었다. 앨범 자켓부터 TV에 나오는 노래와 분위기가 좀 다르니까 이 분위기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리고 듣기 싫은데 그 친구를 생각하면 한번은 듣고 느낌을 말해줘야 하는데 그 불편한 감정을 참아내고 노래들을 들을 수 있을까? 처음 듣고 '한 곡 정도는 좋네'의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한번만 듣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자면서 카세트테이프를 틀어 놓는 버릇이 있었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도 카세트 테이프를 틀어 놓는 버릇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책의 특정부분에서 느꼈던 감성의 밀물을 그 때 듣고 있던 노래의 부분을 다시 들을 때면 언제나 그 감정이 솟아났기 때문이다. 어릴 때 다들 MixTape 한번씩 한 적 있지 않은가? 레코드점에서 노래 하나 녹음하는데 100원인가 200원인가 줬던 기억이 있다. 뭐 그렇다고 노래의 매니아는 아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가서도 간간히 그 카세트 테이프를 듣고 했다. 그 여자애와는 중학교 2학년 때 이후로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김광석은 내가 간간히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하지만 김광석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만날 수 없어서 나 혼자 즐겼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뭔가 흥을 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대학교 와서 드라마틱하게 바뀌게 된다.


  구질구질한 과방에서 나는 쉬는 시간만 되면 기타를 안고 김광석 노래를 불렀다. 동기 선후배들이 시끄럽다고 불평을 하는데도 묵살하고 계속 불렀다. 공부도 못해서 캠퍼스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 나의 서러움을 김광석 노래로 날려버렸다. 그 때만큼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인 것 같아서였다. 적응을 잘 못하는 덜떨어진 면을 여실히 보였지만 그의 노래를 듣고 부를 때는 아니었다. 그리고 몇몇의 다른 이들이 김광석 노래를 좋아하는 나를 좋아해 주었다. 무슨 그의 노래를 잘 이해하는 것이 대단한 뭐라도 되는 양 말이다.


  나에겐 김광석의 노래는 아픔과 기쁨이었다. 그것도 곰삭은 아픔과 기쁨이다. 불현듯 스치는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 오랫동안 묵혀온 그런 감정이었다. 당연히 굉장한 기대를 하고 들어하며 극장으로 들어갔는데(사실 뭔가 보기 전에 관련 내용을 일부러 전혀 모르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대략 남감하게도 뮤지컬 "그날들"은 이야기 구조가 헐리우드식이었다. 이런 나의 비판에 친구는 '요즘 누가 그런 곰삭은 분위기를 좋아하니?'이라고 대응했다. 난 뮤지컬을 보면서 계속 무거운 심정이었다. '아닌데, 이건 아닌데......'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정체 모를 이 배신감을 어떻게 떨쳐야 하나?'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극 중간중간의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를 무음으로 따라 불러보며 동화되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되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잘 안된다. 로맨스의 설정이라도 오래된 연인으로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둘 사이의 로맨스가 김광석의 정서로 표현 되기엔  너무 가볍다. 어떻게 그렇게 잠시보고 그렇게 첫 눈에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김광석의 노래와 안 어울려' 이런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한 기분을 속시원하게 내색하지는 못했다. 같이 갔던 친구가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노래는 좋지. 김광석 노래는 어느 시점에 들어도 나를 단숨에 추억속으로 이끄니까' 모르겠다. 내가 너무 올드한가 아니면 너무 이상적인가? 분명 나에게도 문제는 있지만(나의 한계를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뼈속까지 꽉 막힌 박스안에 사는 사람이라고)  김광석의 노래를 저런 정서로 묶으려는 시도에는 서운하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평가를 박하게 할 수 밖에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지 말라고 말리고 싶지 않다.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 구조와 무관하게 충분히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비교할 수 없다. '광화문 연가'와 비슷한 정도의 비쥬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작년에 봤던 '위키드'에 비하면 무대연출이 아직 멀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뮤지컬 내외적 요소를 다 비슷하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나도 안다. 그 가정이 말이 안됨을......

'수요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인의 삶  (4) 2013.07.12
비포 미드나잇  (4) 2013.07.03
헤비메탈 좋아해요?  (12) 2013.06.19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과 김조광수 감독  (4) 2013.06.12
자폐아를 위한 의사소통 앱  (3) 2013.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