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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비포 미드나잇

 

그림출처 : http://www.impawards.com


  온전히 포스팅을 위해서 보았다. 서서히 압박으로 다가 온다. 일주일 중 수요일이 제일 싫다. 이유는 포스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고 나면 재미있다. 아니 하는 중에도 재미있다. 쓸데 없는 글을 나열하는 것도 재미있고 쓰레기를 생산하면서도 나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다는 느낌도 좋다. 시간이 지나서 내가 쓴 글을 보면 나의 심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것도 따뜻해서 좋다. 여러 측면에서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일이다라고 가슴에서 속삭인다. 그렇지만 역시 포스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덕분에 내 개인블로그가 죽어가고 있지만 말이다.


  일요일에 항상 가는 영화관이 있다. 영화 티켓을 사고 뭘 먹을 지 고민하다가 혼자서 일본식 매운카레를 먹으러 갔다.  종업원이 혼자라는 사실이 무안하지 않게 잘 접대 해주었지만 조금 벌쭘했다. 나만 혼자고 다 쌍쌍이 내지는 가족과 함께였다. 내가 그런 느낌을 전혀 개의치 않는 성격이 아니라서 허전한 느낌이 있었다. 먹기 전부터 정신적인 허기가 져서 밥이 많이 먹고 싶었다. 결국 카레 일인분에 밥은 두 공기를 먹었다. 내 양의 두 배나 초과한 것이었다. 다 먹고 나서 계산 하려고 일어섰을 때 너무 많이 먹었다라는 느낌에 나에게 실망을 하였지만 먹을 때는 허전함을 메울 수 있어서 좋았다고 애써 자위하였다. 가게를 나와서도 그런 선택한 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버섯카레라고 시켰는데 나온 버섯의 양은 기대 이하였으며, 밥과 카레가 리필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해 보고 싶었고 허기졌던 나의 마음은 채우지 않았냐며 사후에 논리적이고 감성적이 이유를 마구 갖다대면 나의 선택을 옹호하려 했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충동을 어느 정도 허용해야 하는지 혹은 어떤 충동은 외부로 노출시키고 어떤 충동은 내부에 가두어야 하는지 정말 감이 없다. 어떨 때는 충동의 실행을 허락하고 후회를 하는 반면 어떨 때는 충동을 틀어쥐고 억압해서 후회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삶에 관한 설명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내 위의 용량을 초과하는 식사 때문에 영화관에서 앉아서 보는 내내 엉덩이를 자리에서 자꾸 떼고 오른쪽으로 기대 앉았다가 왼쪽으로 기대 앉았다가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가 드러누웠다가 하면서 주위의 사람들을 살짝 짜증나게 했다. 옆에서 자꾸 부스럭거려서 짜증을 돋구는 사람이 내가 된 것이다. 밥의 양을 초과한 것과 합쳐 두 배로 자괴감에 일었다.


  영화를 보면서 느꼈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왜 비포 선라이즈를 여러 번 보았는지 말이다. 현재 기억에 의하면 영화에서 보여 주는 비엔나 거리의 느낌이 좋아서,  줄리 델피가 아름다워서(실제로 그 당시 그녀는 나에게 색다른 아름다움에 대한 지평을 열어 주었다.)  에단 호크와 줄리델피가 함께 하는 그 시간을 영원히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겠지만 비포 미드나잇을 보는 중에 나는 깨달았다. 전부 거짓임을...... 아니 과장임을 (흠흠~ 난 요즘 나의 극단적인 성향을 죽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ㅋ.). 내가 비포 선라이즈를 3~4번 본 것은 그들의 대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한번 봤을 때 둘의 대화의 속도가 내 이해 속도보다 빨랐다. 자막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 때문에 그런 것이리라 나는 대화를 할 때 비언어적인 표현 방법에서 많은 것을 느끼기 때문에 외국 영화를 볼 때 대화가 많은 장면이나 말을 빠르게 하는 캐릭터가 나오면 영화를 한번 보고 그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이 어려워한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고등학교 이후로 나의 시각적 이해 능력이 조금도 발전하지 못한 것을 느꼈다.(그래서 고등학교 때 어려웠던 것은 지금도 어렵구나라고 생각이 든다. 특히 철학책) 줄리델피와 에단호크가 차에서 대화하는 것부터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름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한다고 하지만 내가 그들의 대화를 귀로 듣고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자막에 의존했는데 그들의 표정도 봐야 하니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제법 피곤했다. 그래서 한번 더 보고 싶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의 뇌 속에 숨어있던 비포 선라이즈를 여러 번 본 이유가 드러났던 것이다. 내가 이런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나는 남들 앞에서 감성적인 사람임을 포장하려 들었을 것이다. 결국은 이해력이 부족해서 그래놓고 말이다. 


  이번 편 이야기의 핵심은 역시 그리스 휴가 마지막 날 저녁 호텔에서 주인공 둘 만이 가진 시간일 것이다. 오래된 연인이라도 갈등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지 그런 순간 순간이 모두 헤어짐을 고려하는 사건이 될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주었다. 예전에 5년간 사귀었다가 결혼한 커플에게 물어 본 적이 있다.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니까 헤어질 수 없겠구나라고 느꼈는지?' 그러자 '우리는 그런 순간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들은 기억이 난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 영화에서는 그런 갈등이 어떻게 번질 수 있는지 사실적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간다. 갈등은 과거 상대의 발언 중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모두 끌고 나오게 하며 그리 인해 애초 갈등을 일으킨 사건의 진폭을 급격하게 키워 버리는 것 같다. 보통 대화하면서 상대의 발언을 이렇게 저렇게 돌려서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할 시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렇게 저렇게 상상력을 발휘하면 생각을 뻗어나가면 상대가 겁을 내거나 숨막혀 할 것이다. 별 일 아닌 것은 잘 넘기는 것이 대화를 잘 하는 중요한 자질이다. 오히려 그 발언들을 듣고 비판할 것이 있더라도 '아니야 그런 뜻에서 말한 것은 아닐꺼야' 라고 하면서 애써 문제를 증폭시키지 않으려 한다. 문제는 작은 갈등이라도 스파크가 튀면 다른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던 대화의 매듭들이 모두 생각나면서 상대방 앞에서 열거하기 시작한다. 그런 질책에 상대 또한 맞불로 대화하기 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에단 호크에 있어서는 줄리가 가지는 새 직장의 문제가 그러했고 줄리델피의 경우는 에단 호크가 미국에서 있었던 북투어에서 출판사 한 직원과의 원 나잇 의혹이 그러했다.  '당신이 북투어 하고 있는 동안 나는 쌍둥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강간 위협을 무릅쓰고 동네를 계속 돌아야 했다.'  '내가 애 보느라 시간이 없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지 못한다.' 그 말에 에단호크는 '내가 노느라고 그랬냐' '니가 불평할 시간을 투자해서 음악을 하면 되지 않냐'라며  비아냥 될 뿐이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갈등 소재가 구태의연해서 긴장감이 좀 덜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부부사이에 잘 분담되던 가사 노동이 아이가 생기면 책임과 역할의 상당부분이 아내에게 돌아가는 상황이 유럽이나 우리나라가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이슈가 계속 등장하는 것은 아직도 그런 문제가 부부사이에 특히 여성쪽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슈화되는 것이겠지. 그것도 비슷한 형태로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 그런 문제의식에 이제는 좀 물린다는 느낌이다. 그런 이슈가 해결해야 될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도 아니고 그런 이유없는 희생(만역 여성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을 하고 있는 여성에 대해서 무감각하다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단지 이 이슈가 영화나 문학의 매체로써 접하면 또 이 이야기야 하는 피로증일 것이다. 좀 더 신선한 소재가 부부 사이의 주요 갈등으로 등장했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된다. 아직까지는 남녀 관계에서 여성 쪽의 아픔에 좀 더 포커스를 두고 있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부부 관계에서 상처 받는 쪽은 여성일 가능성이 현재에는 높으니까 말이다. 여성의 이유없는 희생을 당연시하는 것은 여전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성들의 상처에도 집중해 주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남성들의 무능력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관계를 보여주는 것도 괜찮을 텐데 물론 이런 이슈를 제시할 때는 신중해야 된다. 그 무능력을 일으키는 이유를 여자의 한계로 구분짓지 않고 인간의 한계로 설정한다면 비난을 피하면서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제기해 본다.


  어쨌던 이번 영화 역시 줄리델피를 화면에서 보는 것이 영화 보는 맛의 절반은 되었다. 이제는 늙고 통통해져 외향적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아름다움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녀의 사랑스러운 행동들은 여전했다. 특히 작가에게 반한 바보스러운 여자의 연기를 능청스럽게 할 때는 그녀의 연기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면서 사랑스럽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그녀의 풍부한 상상력, 고지식한 면, 약간은 극단적인 면이 어우러져 현실적이면서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낸 것은 입가에 미소를 띄며 시종일관 그녀를 응시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시카고로 가는 문제에서 이별을 얘기하는 장면은 그녀의 취약점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어 화면으로 들어가 그녀의 막다른 심리를 안정 시키주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부성애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아유~! 이 오지랖은 얼른 고쳐야 하는데.......) 좋았던 또 다른 장면은 호텔방에서 초반에 남녀 주인공이 분위기 잡으면서 줄리가 가슴을 노출 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장면을 참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내가 과거의 여자친구들과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서로의 육체에 대해서 갈증을 느끼면서 탐하던 것과 비슷한 분위기를 생각나게 했다. 영화에서 필 받은 남녀 사이의 과한 긴장감에서 느껴지는 배드신이 아닌 오랜 연인들이 서로의 익숙한 몸을 탐하는 이완된 평화로움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이 잘 표현됐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줄리의 가슴은 전혀 인위적이지 않아서 공감이 더 잘 되었던 것 같다. 요즘 미디어에 노출되는 가슴에서는 그런 인간미를 느낄 수가 없다. 물론 남자들이 벗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잔뜩 힘이 들어간 남자들의 상반신 혹은 잔뜩 부풀려진 여성들의 가슴에서 나는 이질감을 느낀다. 그 만큼 이 영화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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