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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인간적인 에누리

지난 금요일에 글을 쓰지 못 했던 건 집안 일 때문에 1박 2일로 지방에 다녀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기왕 가는 거, 익숙한 홈타운 말고 다른 곳도 가고 싶어서 전주에 들렀다. 예상과 달리 일정이 꼬여서 전주를 구경할 시간은 저녁 나절 두어 시간밖에 나지 않았다. 한 끼라도 전주 음식을 먹고 싶었고 비빔밥이나 한정식은 내키지 않아 콩나물국밥을 선택했다. 대충 찾아 보니 유명한 곳이 세 곳쯤 있었다. 밥 먹고 나서 한옥마을이 어떻게 생겼나 둘러 보면 적당할 듯싶어 그쪽에 있는 '왱이집'을 가기로 했다.


메뉴는 단출했다. 콩나물국밥 육천원, 모주 한 잔에 천원. 끝. 국밥 두 그릇과 모주 한 잔을 시켰다. 펄펄 끓이지 않은 전통 방식이리고 벽에 설명글이 붙어 있었다. 뜨거운 음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밥알이 흐물흐물한 것 역시 내 취향이 아니어서 이 집 국밥이 마음에 들었다. 자극적이지 않고 개운한 맛,  오랜만에 만족스러웠던 식당 김치, 뜨거운 입안을 달래주는 모주 등등 기분 좋은 식사였다.


계산을 하면서 만원짜리 한 장, 오천원짜리 한 장을 냈더니 아주머니께서 테이블을 흘끔 보시더니 삼천원을 거슬러 주셨다. 모주도 한 잔 마신 걸 모르셨던 모양이다. "저, 모주도 마셨.." 이렇게 말을 꺼내며 천원을 돌려드리려고 하는데 '아, 몰라몰라, 괜찮아, 그냥 가' 이런 표정으로 돈을 받지 않으셨다. 생색내는 것도 아니고 '아차' 싶은 표정도 아닌, 참으로 흔쾌한 얼굴이었다.


금액으로는 천원, 비율로 따지면 7~8%쯤이었으니 그리 큰 혜택은 아닐 수 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멤버십 카드의 적립률이나 할인율과 엇비슷하다. 그럼에도 기분이 그토록 좋았던 건 '사람의 얼굴을 한' 에누리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OO원입니다.OO원 받았습니다. 현금영수증 필요하세요? XX멤버십 카드 있으세요? 적립카드 있으세요?" 이렇게 기계적으로 줄줄 읊는 계산원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인간미가 콩나물국밥집 아주머니한테는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동안 프랜차이즈 커피숍, 편의점, 할인마트, 패스트푸드점, 빵집에 알게 모르게 지쳤던 것 같다. 표준화된  제품과 서비스 품질은 실패할 염려를 줄여줘 나를 안심시키는 면도 있지만 그 이상은 기대할 수 없는 답답함과 어딜 가나 비슷비슷하다는 지루함도 안겨주었다. 갈 때마다 알바가 바뀌고 계산원이 바뀌어서 아무리 드나들어도 단골이 아닌, 그저 평범한 손님에 머물게 된다는 점도 왠지 허탈했다. 


그래서인지 요샌 가급적 나를 알아보는 가게, 적어도 나를 반겨주는 가게에 가게 된다. 그래봤자 빵집과 커피집 두어 곳 정도이지만 여기를 드나든 다음부터는 다른 곳에 발길이 뜸해졌다. 기왕이면 '오셨어요?'라고 인사해주는 곳, 덤 하나라도 더 주는 곳, 가벼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에 가고 싶은 탓이다. 이런 집들의 빵이나 커피 맛이 훌륭하기도 하거니와 인간적인 교류 덕분에 기분까지 좋아지니 같은 돈을 훨씬 가치 있게 쓴 느낌마저 든다. 지금은 이런 곳들을 찾아 굳이 멀리까지 가고 있지만 동네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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