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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앤젤스 셰어

* 영화 리뷰라기 보다는 영화의 소재에서 비롯된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적은 글입니다.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켄 로치의 영화 [앤젤스 셰어]를 봤다. 영화에 나오는 설명에 따르면, 위스키를 오크통에 넣고 숙성시키면 해마다 2% 정도가 증발하는데 이렇게 날아가는 양을 '천사의 몫'이라 부른다. 오크통이 숨을 쉬고 있어 생기는 현상이지만 이걸 천사가 가져간다고 여기는 점이 재미있기도 하고 낭만적이기도 했다.


이걸 만약 천사가 가져간다고 하지 않고 '매년 2%가 사라짐'이라고만 했다면 사람들 기분이 어땠을까. 오래 묵힐 수록 위스키의 가치가 오르는 건 생각하지 않고 '올해 가치가 천만 원이니까 2%면 이십만 원이 공중으로 사라졌군' 하면서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증발한 부분은 천사가 가져 갔음'이라고 설명함으로써 감내할 만하다고, 더 나아가 천사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 참 절묘하고 현명한 이름 붙이기이다.


영화의 원제는 [Angels' Share]인데 제목에서 '를 살짝 빼면 Angels Share, 즉 '천사는 나눈다'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영화 속 인물들은 많은 것을 나눈다. 시간을 내 주고 아끼던 술을 나눠 마신다. 친구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생각을 나누고 힘을 보탠다. 예전에 받았던 도움 덕분에 삶이 바뀐 누군가는 다른 이에게 조건 없는 친절을 베푼다. 어렵사리 손에 넣은 것을 과감히 뚝 떼어 누군가에게 나눠 준다. 이들 모두가 천사인 건 아니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언뜻언뜻 천사가 깃든다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런 순간들 속에서 이런 저런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을 법하고.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소위 '루저'이다. 변변한 직업도 없는 사고뭉치이지만 이들을 바라 보는 감독의 시선은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하다. 그들이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며 다분히 사회적, 구조적인 문제임을 감독은 알고 있다. 하지만 뜻밖에도(?) 사회가 잘못이다,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사회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주인공들에게 '너희 잘못이 아니야'라며 무조건 감싸지도 않는다. '살아 내기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서로 돕고 나누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어떨까' 라며 어깨를 두드리는 쪽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말은 쉽지, 서로 돕는 것도 어렵고 내 것을 남과 나누는 것도 어렵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실천하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이런 영화가 빛이 난다. 보면서 용기도 내 보고 희망도 가져 보게 되니까. 그런 점에서 노감독 켄 로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아주 잘' 하고 계신 셈이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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