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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냉침 커피

* 지난 주에 이어 또 커피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내 일상에서 커피를 빼면 남는 게 몇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커피에서 시작된 이 글은 안드로메다에서 끝을 맺는다;


날이 부쩍 더워졌다. 낮에만 조금 풀리는 척하다가 아침, 저녁으론 쌀쌀했던 날들이 이어져 '봄은 대체 언제쯤?' 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곧장 여름으로 직행했다. 차가운 커피가 생각나는 계절이 왔다.


커피숍에서 마실 수 있는 아이스 커피는 크게  3가지이다. 에스프레소를 얼음에 붓고 차가운 물을 적당량 채워 만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를 좀 진하게 얼음 위에 바로 내린 뒤 다시 얼음을 채워 만드는 아이스 드립커피, 분쇄한 원두 위에 물을 한 방울씩 똑똑 떨어뜨려 아래쪽에서 우러난 커피가 한 방울씩 떨어지게 해 그걸 모은 더치커피. 셋 다 집에서 만들기 어렵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드립은 일단 얼음부터 크고 굵어야 한다. 마트에서 파는 각얼음이 필요한데 '사 먹던 걸 만들어 먹기'로 한다면서 뭔가를 새로 사긴 싫었다. 더치 커피는 특수한 장비 없이는 만들 수가 없다. (참고로 대형 프랜차이즈의 아이스 드립커피는 대체로 미리 내려 차갑게 식힌 것이다.)


이런 이유로 커피를 내려마시기 시작한 뒤로도 여름엔 아이스커피믹스를 마셨다. 간혹 커피를 내려 유리병에 담고 상온에서 식힌 다음 냉장고에 넣어 마시기도 했지만 몹시 번거로웠다. 그러다 재작년 여름부터 '냉침커피'라는 걸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사 먹던 걸 매달 한 가지씩 직접 만들어 먹기' 프로젝트(라고 쓰니 좀 거창하긴 하지만)를 하고 있던 때였는데 적당한 아이템을 궁리하다가 커피를 선택했다. 검색해 봤다. 당연히 있었다. 커피를 찬물에 우려 마시는 사람들이.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1)찬물을 준비한다. 나는 생수를 사 먹지 않기 때문에 브리타 정수기에 거른 수돗물을 주전자로 팔팔 끓여 그걸 식혀서 쓴다. 2)원두를 간다. 원두:물=1:10 정도로 하는데 취향에 따라 조절한다. 3)찬물에 원두를 붓고 잘 흔든 뒤 냉장고에 넣는다. 하루쯤 둔다. 4)찬물에 우러난 커피를 종이 필터로 거른다. 생각만큼 빠르게 걸러지지 않으니 시간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게 좋다. 5)원두를 걸러낸 커피를 다시 냉장고에 넣는다. 하루쯤 숙성시켜 마시되 숙성 기간 역시 취향에 따라 늘리거나 줄인다. 끝.


방법은 간단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한 번에 500~600ml 정도를 만드는데 하루에서 사흘이 걸리는 셈이니 시간만 따지면 더치커피 못지 않다. 맛 또한 전문 커피숍만큼은 아니어도 꽤 그럴싸한 맛이 난다. 뜨겁게 내린 커피보다 맛이 날렵하진 않은 것 같다. 대신 부드럽고 풍부한 느낌이 있다. 유리잔에 얼음 넣고 냉침 커피를 쪼르륵 부어 마시면 '이런 호사라니...' 싶어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맛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도 있었다. 찬물에서는 개성이 살지 않는 원두였을 수도 있고 물의 양이 너무 많거나 적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오랜 시간을 기다려 만든 것이라 용서할 수 있다.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흠이 아니라 다음에 다른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여지가 된다. 원두를 바꿔 본다든지 물을 조절해 본다든지 하루쯤 더 숙성시켜 본다든지. 맛이 있네 없네 따지고 투덜거리기에는 한 잔, 한 모금이 너무 귀하다. 긴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것이니까!


이게 만약 커피숍에서 사온 더치커피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기대에 못 미쳤을 때 맨 먼저 드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화'일 것 같다. '내가 갖다 바친 시간과 돈이 얼만데!' 하는 마음. 그 뒤에는 '이런 걸 이 돈 받고 팔 생각을 하다니' 라며 주인장을 비난하지 않았을까. 똑같이 맛없는 커피인데 왜 이런 감정 차이가 생기는 건지 조금 궁금해졌다. 처음엔 돈 때문인가 싶었다. 내가 지불한 금액만큼의 가치를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분노말이다. 단가를 낮춰 마진을 높이기 위해 값이 싼 원두를 쓴다든지 충분히 숙성시키지 않는다든지 해서 실제로 저급한 더치커피를 파는 가게도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게 주인이 최선을 다해 만든 커피였는데도 맛이 이렇다면? 그때에는 화가 스르륵 사라질까? 글쎄, 자신이 없다.


내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샀다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을 가치있게 여긴다는 뜻일 거다. 무가치한 것을 굳이 구입하진 않을 테니까. 내가 직접하는 것보다는 숙련된 타인이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계산도 한 편 깔려 있었을 것이다. 정리하면 '나는 이것을 가치있게 여긴다. 직접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시간이나 비용의 효율을 따졌을 때 나보다는 당신이 하는 게 나으니 비용을 지불하고 당신에게 맡기겠다' 정도가 될 것 같다. 합리적인 이유였든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핑계였든 '나'의 자리에 '남'을 세운 것이다. 단순히 돈을 쓰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 삶의 일부를 남에게 위임하는 면이 숨어 있었다.


이렇다 보니 내가 구입한 것에 성이 차지 않았을 때 저 사람에게 위임한 내 삶의 일부가 망가졌다는 생각,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불안, 위임한 부분을 영영 되찾지 못해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나도 모르게 작동했던 게 아닐까.너무 멀리 나간 느낌도 있지만 터무니 없는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언제부턴가 일상의 많은 부분을 상품과 서비스가 대체하고 있다. 예전에는 몸을 움직여 하던 것, 집에 있는 것들을 적절히 동원해 대충 하던 것들이 편리하고 예쁘고 심지어 가격도 싼 상품으로 바뀌었다. 이제 개인은 이런 상품들을 살 수 있는 돈만 벌면 된다. 기술을 어렵게 익힐 필요가 없어졌다. 다 사면 되고 남한테 시키면 된다. 그런데 그게 늘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형편 없는 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소비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화를 내는 것밖에 없어 보인다. 판매자에게 항의를 하며 화를 내든, 이 정도의 후진 상품밖에 못 사는 무능한 나에게 화를 내든.


삶에서 화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소비 생활을 다시 돌아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습관적으로 사서 쓰고 먹고 부렸던 것들이 무엇인지, 정말 필요한지, 내가 원하는 것이 맞는지, 구입하는 대신 직접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빌려 쓸 수는 없는지, 살 수밖에 없다면 다른 구입 경로는 없는지 고민해 보는 거다. 서점에 가면 100가지 물건으로만 산다든지, 전기를 쓰지 않는다든지, 하루에 1달러로 살아봤다든지 하는 책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어떤 책은 너무 극단적이어서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뭘 이렇게까지?' 하며 비웃는 대신 가볍게 책장을 넘기며 내가 할 만한 게 있는지 살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이 과정에서 지출을 줄이고 만드는 재미를 느끼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점도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통제권을 되찾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을 남들 손에 맡긴 채 행복해지기란 어려운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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