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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러스트 앤 본


(그림 출처 : http://filmforest.egloos.com/1642422)


  요즘 책을 잘 못 읽는다. 주업무가 많아져 시간이 부족해진 탓도 있고 스마트폰으로 바꾼 지 얼마되지 않아서 잠자리에 누워서 책을 보던 습관을 버리고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무거운 내용보다는 인터넷에 쓴 가벼운 글들이 자기 전에 더 당기는 것 같다. 그래서 한동안 책을 읽는 진도가 느려질 것 같다. 성급하게 책을 읽으려 하지는 않겠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연히 책으로 시선을 돌리겠지 한다.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에 비해서 혼자 보기 좋다. 친구들은 나 혼자 영화관에 갔다고 하면 피식거리는 것이 있는데 그런 시선에는 이미 면역이 되어 있지만 상업영화관에서 혼자 앉아 있는 기분은 쉽게 면역이 되지 않는다. 특히 상영관 외부에서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느낌은 더 싫다. 물론 그런 이유로 상업영화를 피하는 것은 아니다. 과장된 감정과 억지스러운 스토리를 보기 싫어서 피하는 이유가 크다. 모든 상업영화가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런 점이 많이 있지도 않지만 내 눈에는 그것이 확대되어 보이는 것이다. 나도 내가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인물의 캐릭터에 주목하게 만드는 영화다. 장르는 드라마 혹은 로맨스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부분은 남녀주인공의 로맨스가 아닌 누나와의 갈등을 야기시킨 남자주인공이 설치한 몰카 이야기이다.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 속에서 내가 하는 일이 누구에게 이익이 될지 그렇지 않을 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보지 못한다면 내가 밥을 먹기 위해서 하는 일이  내 가족 중 누구에게 크나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남자 주인공이 공장에 몰카를 설치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데 누나가 그 몰카에 유통 기한 지난 식품을 훔치는 것을 들켜서 직장에서 쫓겨나게 되는 스토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거시적 구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지 알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야기 구조가 선과 악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 주인공이 몰카를 설치하는 것도 불법인지만 누나가 유통기한 지난 식품을 훔쳐 내는 것도 불법이기 때문이다. 누가 선인지 악인지 명확히 구분이 불가능 한 것이 우리의 삶이지 않은가. 실생활에서 우리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누군가 100% 억울하게 남의 잘못을 뒤집어 쓰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나도 조금 잘못을 했기 때문에(혹은 나의 탐욕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입게 되거나 사기를 당하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왕왕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피해 본 것에 대해서 큰 소리로 저항하거나 억울함을 그래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많지 않나? 이 부분 너무 좋았다.

 

  영화는 어떤 측면으로 보면 남자 주인공의 성장드라마 같다고 해야 할까? 남자주인공은 극 초반부터 최종 직전까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자신이 좋은 것만에 관심을 둔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을 돌보는 것도 자신의 관심사 때문에 뒤로 밀어 버린다. 또 다른 예로써 누나와 갈등이 생겼다고 아이들 놔 두고 혼자 도망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괴로울 지경이다. 그런 장면이 보일 때마다 뭐, 저런 무책임한 인간이 있나 싶었다. 그런데 아이가 얼음 호수에 빠지고 나서는 정신을 차린다. 아들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 홀로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꼈고 그래서 그는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사람으로 변한 것 같다. 한결 여유 있는 사람이 된 듯 해서 흐뭇했다. 아들은  잃을 뻔한 상황이 뼈에 새겨진 듯 했다. 그가 주먹을 휘둘러 팔에 압력이 가해질 때마다 그 때의 외롭고 두려웠던 감정이 계속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계속 기억해 나갈 것이다. 안심이다.


 여자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보고 싶은데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좀 난감하다. 사람들은 사고를 당한다고 해서 많이 변하지 않는다. 처음 사고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 기간을 잘 벗어나면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오곤 한다. 하지만 분명히 바뀌는 부분이 있다. 이 영화에서 나이트 클럽 안전요원이었던 남자주인공의 연락을 한 것부터가 그랬다.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아에서 약간 변하는데(실제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이끌어 내려고 하면 영화가 억지스러워 보인다. 그렇지만 영화는 이 부분에 완급 조절에 절묘하게 성공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때 변한 부분 혹은 새롭게 생성된 자아를 만족시킬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하다. 사고 전에 맺었던 인간 관계에서는 새롭게 생긴 자아가 결핍을 느낀다. 새롭게 발굴된 자신의 자아를 터 놓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계와는 다른 관계가 필요하다. 사고 후의 여자주인공에게는 그 대상이 남자주인공이었던 거다. 둘의 영혼은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여자는 남자의 결핍이 보이고 그런 결핍에 대해서 관용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것은 장애로 얻은 자신의 또다른 자아의 강력한 역할에 의해서 일 것이다. 상처 받거나 피해의식에 빠져 있거나 혹은 어린애 같은 이기적인 면을 여자 주인공 스스로도 경험해 보고 약한 인간을 보듬는다는 행동이 자연스레 발현되었을 것이다. 그랬으니 남자 주인공이 아들을 내버려두고 도망쳤을 때도 침착하게 기다린다. 물론 그녀는 남자주인공의 도움으로 일상생활에서 자신감을 찾아갔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사고 직후 약해졌던 자신의 자아에서 남자주인공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 더 큰 이유였으리라 생각된다.


  영화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 왔는지는 썩 자연스럽게 해석해 내기 쉽지 않다. 내가 원래 그 정도 사고력이나 상황판단력밖에 되지 않는 한마디로 눈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정말 좋은 영화다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소개해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서 포스팅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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