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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회의

6회 <500일의 썸머> 정리

참여해주신 분들 - 밍기뉴님, 와일드윙님, 인생다그렇지님, 친구따라왔어요님, 몽룡이누나님, 조제님

<500일의 썸머>에는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 톰과 썸머의 500일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지요. 그런데 영화는 뜬금없이 499일부터 시작하고, 약간의 텀을 두고 톰과 썸머가 처음만난 1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두서없이 중구난방으로 시간을 점프하며 사건이 진행되지요.

어찌보면 이런 형식이 바로 <500일의 썸머>의 아이덴티티라고 봐도 될듯 합니다. 사실 <500일의 썸머>의 이야기를 시간순서대로 다시 재단해놓고 보면 굉장히 흔한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에서 세련되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둔갑한 마법은 이 독특한 구성에서 나올 수 있겠지요.

토론회에서도 역시 여러가지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중 하나는 이 이야기가 모두 누군가의 회고라는 의견이었지요. 500일이라는 시간을 겪은 톰의 기억은 좋았던 기억과 나빴던 기억이 뒤죽박죽 섞여서 나오고 있다는 것 입니다. 하긴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시점에서, 특히 실연을 겪은 시점에서 자신의 연애사를 되돌아보면 좋았던 기억과 싫었던 기억이 함께 떠오르곤 하지요. 나의 추억이란 아름답지만도, 그렇다고 추하지만도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또다른 의견, 그러한 배치가 뒤죽박죽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계산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부분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바로 사랑의 변화의 전후를 반복 묘사하여 두가지 현상을 비교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리하자면 사랑의 진폭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것을 드러내는 장면이 몇가지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구점에서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를 트는 톰과 그것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썸머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썸머가 톰에게 그것으로 장난을 치던 과거를 보여주죠. 톰이 썸머의 좋은 점을 나열하는 장면들도 이후에는 똑같이 싫다는 발언과 함께 나옵니다. 흠. 그 외에도 전체적으로 그것을 보여주는 몇가지 대구들이 존재합니다. 이 것들을 통해서 톰이 겪었던 사랑의 진폭을 체감적으로 더 확실히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토론회는 이런 관점을 영화 전체로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대비'라는 속성이, 사실은 <500일의 썸머>라는 작품 전체에 퍼져 있다는 식으로요. 가장 쉽게 확인이 가능한 장면은 썸머의 초대를 받아 들어가는 톰의 장면이죠. 화면을 아예 분할하여 왼쪽에는 톰이 생각하는 '이상', 그리고 반대편에는 톰이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을 놓았습니다. 영화의 인트로도 그렇죠. 성장하는 톰과 썸머의 기록들을 병치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가구점 IKEA에서 나올때 무슨 의도인지 벽에 붙어있는 문구인 'We don't make fancy quality, We make TRUE everyday quality!'도 오랫동안 보여주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톰 역시 이런 대비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감사 카드의 카피문구를 쓰는 사람이지만 사실은 건축이 하고 싶은 이상을 꿈꾸는 사람이죠. 

그런데 사실 이러한 대비들, 특히 톰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전부 가지고 있는 딜레마죠. 그래요. 톰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될법할 정도로 굉장한 존재감이 있는 사람은 아니예요. 우리와 똑같은 그냥 범인입니다. 이 영화가 시간의 순서대로 배치되면 흔한 이야기가 되는 것처럼요. 톰도 그리고 이 사랑 이야기도 흔한 이야기고 우리와 그다지 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이상과 현실이라는 직관적인 대비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톰처럼 이상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고요. 하지만 눈앞에 이상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왔을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그리고 어떻게 실패하고, 또다시 움직일까요?

토론회에서 뽑은 마지막 대비. 그것은 바로 톰과 썸머입니다. 톰은 소심한 남자입니다. 고백도 자기입으로 한것도 아니죠. 썸머는 그에 반해서 과감합니다. 사실 톰을 리드한건 전부 썸머죠. 둘의 관계는 썸머가 과감히 들어간 키스로 시작했으니까요. 사람은 보통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빠진다고들 합니다. 톰도 그랬다고 생각했습니다. 썸머의 과감성, 운명을 믿지 않는 현실적인 면모 등 모두 톰이 스스로 부재하다고 여긴 것들이예요. 톰이 포기했던 건축의 길, 그 이상의 길이 어찌보면 썸머와 닮아있는 것이죠. 그럼 톰은 어떨까요? 토론회에서는 썸머의 심증을 가지고 갑론을박(실은 남성 vs 여성 구도로!)이 벌어졌습니다. 그래도 일치하는 내용은 썸머는 사실 유리같은 내면을 지닌 여성이고 누군가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운명을 믿지 않는다는 그 단호한 태도는 일정한 자기방어였던 것이예요. 그렇다면 마찬가지이지 않을까요? 썸머 역시 톰에게서 어떠한 구원을 원했던 것이죠.

영화의 시작에는 '이것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이야기다. 하지만 연애이야기는 아니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맞습니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이야기이죠. 동시에 '극단과 극단'이 만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서로 동경하는 정반대의 사람들'이 만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무작정 두 인물을 반대편이라고 말하긴 뭐하지만요.) 

톰이 썸머와 만나고 헤어졌던 500일. 그것은 톰이 자신이 바래왔지만 손에서 놓았던 그 이상과 만나게 된 날들이었습니다. 그는 그 안에서 이기적이 되어 상대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를 상처입히는 결과를 낳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의미없는 일은 아니었다고 보입니다. 톰은 썸머로 인해 다시 자신의 꿈을 쫓게 됩니다. 그리고 무작정 운명의 인연을 믿기 보다는 스스로 인연을 개척하려 합니다. 톰이 얼마나 변했는지는 알 수 없죠. 하지만 최소한,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톰이 500일 전의 그였다면 바보같이 새로운 인연을 흘려보냈을 것입니다. 아뇨 어쩌면 아예 건축을 향한 발걸음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안주하고 있었겠지요. 그 역시 그녀를 만날 가능성은 여전히 사라지지만요.

그렇게 운명의 가치를 포기한 톰은 썸머 다음에 어텀을 만납니다. 완벽한 운명을 손에서 놓은 순간, 장난처럼 진짜 기적같은 만남이 또 일어나지요. 톰이 어텀과 좋은 인연을 보냈는지는 알 수 없을듯 합니다. 하지만 어텀 다음에는 윈터, 그리고 언젠가 스프링과 만나겠지요. 그래도 톰이 보낸 500일의 여름은 수확의 가을을 보내주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성장의 시간 아니었을까요?

- 토론회가 뽑은 명장면 -
와일드윙님께서 뽑아주신 장면입니다.
일어날 수 없는 이상이라는 요소를 잘 반영한 장면입니다.

밍기뉴님께서 뽑아주신 장면입니다.
톰이라는 인물이 가진 기쁨을 아주 직관적으로 잘 표현한 장면이네요.

친구따라왔어요님께서 뽑아주신 장면입니다.
이때 이 단어를 읽는 발음이 참 맛깔스러워서 좋았다고 하십니다.


몽룡이누나님께서 뽑아주신 장면입니다.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고 한차례 성숙한 듯한 느낌을 들게 하셨다고 하네요.

인생다그렇지님께서 뽑아주신 장면입니다.
같은 요소가 달리 해석되는, 그런 대비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 좋으셨다 하셨습니다.

제가 뽑은 장면입니다.
마지막, 어텀에게서 이름을 듣고 갑자기 카메라를 쳐다보는 톰의 모습입니다.
'정말 어떻게 이럴수 있어?'라고 말을 하는 듯한 톰의 반응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뽑아봤습니다.

- 토론회의 한줄평 -
(점수는 5점 만점입니다.)
4 : 사랑의 본질
4.2 : 나쁜년이 나쁜년이 아닌 영화
4.5 : 보면 볼수록 다른 느낌
4.2 : ....
: 현실적인 연애담
4.5 :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4 : 가을의 수확을 위한 여름의 긴 날들

- 토론회가 추천하는 같이 보면 좋은 작품 -
(두 편을 동시에 했기 때문에 <봄날은 간다>의 정리문에서 함께 정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