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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회의

5회 영화토론회 <일대종사> 정리


참여해주신 분들 - 동요님, 시월님, 인생다그렇지님, 친구따라왔어요님, 조제님, 몽룡이누나님


일대종사(一代宗師)라는 제목은 참 생소합니다.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류의 단어는 아니지요. 일대종사는 북미에서 개봉당시 The Grandmaster로 개봉했다고 합니다. 이정도면 적당히 감이 오기는 하지만, 정확한 의미는 한번에 알 수 없지요. 일대종사란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위대한 스승, 존경하고 따를만한 사람을 말한다고 합니다. 보통 무협쪽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이고요. 이 영화 <일대종사>역시 무술을 다루고 있으므로 썩 잘 어울리는 제목입니다.


일대종사라는 영화의 인상은 ‘어렵다’입니다. 다행히 토론회에 참여해주신 분들은 모두 재미있게 보셨다고 하십니다만 이 영화의 모든 요소들이 그렇게 직관적으로 잘 보이는 영화는 아니니까요. 특히 이 영화가 보통 알려진 부분과 영화 자체의 구성에서 그런 느낌이 잘 퍼집니다. 이 영화는 영춘권의 권사이자 이소룡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인물 엽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로 알려져 있지요. 하지만 영화를 보면 그게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엽문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하고 있지만 너무나 관조적이고 무감정한 모습들이 먼저 보입니다. 되려 엽문보다는 어느 순간 엽문과 스치게 된 궁보삼의 딸 궁이가 더 대두되는 부분이 있지요. 게다가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 갈등요소는 궁이가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토론회는 그렇다면 과연 엽문이 이 영화의 주인공인가, 엽문만이 주인공이 아니라면 궁이와 엽문이라는 두명의 주인공이 선정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들어가 봤습니다. 이 영화가 어떠한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면, 그 일대를 이루는 인물들이 어째서 선정되었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두명의 주인공이 존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묶지 않고 따로 사용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둘에게 어떠한 비교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궁이와 엽문은 초반에 만나게 되지만 곧 헤어지게 되고, 10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둘의 행보는 완전히 틀어집니다. 그리고 이 두사람은 다른 길을 걷게되지요. 이 10년이라는 시간을 정리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궁이의 복수입니다. 자신의 사형이나 다름없는 마삼이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죠. 더군다나 그 유언마저 마삼이 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궁보삼은 궁이의 복수를 만류합니다. 그 이유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그녀가 복수를 함으로써 잃게 되는 그 많은 것들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궁이는 복수를 위해 파혼함으로써 앞으로 결혼의 가능성을 잃고, 후대를 만들수도 없으며 그로 인해 궁가가 만들어낸 64수를 전달할 수도 없었습니다.


엽문은 이만큼의 개인적인 어떠한 사건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일제에 반해서 항일을 하였으며 친한 친구와 동료들을 잃기도 하였죠. 그에게 있어서는 고향과도 같은 금루마저 일본인들에게 점령당합니다. 그가 겪은 이런 사건들을 아버지를 잃은 궁이의 입장과 동등하게 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두사람은 시대의 흐름에 의해 시련을 겪어왔으며 그 시련에 대해 각자 다른 답을 내려놓았습니다. 궁이는 시대의 흐름을 이어간다는 - 64수를 전수한다는 목적을 끊고 자신의 복수를 선택하였습니다. 하지만 엽문은 홍콩으로 건너가 자신이 알고 있는 공부-영춘권을 전수하기로 합니다.


이런 두사람에 대비하여 영화는 세 번째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바로 일선천이죠. 아마도 항일 투쟁을 하는 듯 한 모습으로 등장한 이 남성은 궁이와 스치듯 지나갑니다. 그 후 두 번의 등장이 더 있지요. 솔직히 모두는 이 일선천의 등장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사실 일선천은 궁이와 잠깐 지나치듯 마주한 것을 제외하고는 두명의 주인공과 접점이 전혀 없기 때문이죠. 일선천을 다루는 남은 두 개의 에피소드는 완전히 본 내용에서 동떨어진,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 의미없이 이런 인물을, 그것도 세 번이나 등장 시킬 필요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일선천은 궁이와 엽문과는 또 다른, 그러니까 세 번째 선택을 만들어낸 사람이지 않을까 하였습니다.


일선천은 아무래도 항일투쟁에 급진적으로 뛰어든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후 정계투쟁에 휩쓸려 도망치듯 홍콩으로 온 듯 하지요. 그리고 이발소를 열긴 하지만 사실 이 이발소는 단순한 이발소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돈으로 힘을 사고, 권법으로 힘을 유지하는 그런 세계의 사람으로 보이지요. 이것은 그가 가장 마지막에 찍는 사진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은 누가 봐도 조직폭력배처럼 보이니까요.


일선천의 행보가 어느 정도 생략된 이유는 대략 유추가 가능합니다. 일선천이 궁이, 엽문과 같은 어떤 일대를 지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 두사람이 보여준 시대와 개인이 갖는 갈등들을 반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겠지요. 분명 같은 시대, 같은 땅에서 삶을 살아왔으니 그들이 겪은 고난의 행보는 아무래도 닮아있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엽문과 궁이에서 말했듯 어떤 선택을 했으며, 그로 인해서 어떻게 변화하였는가입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시대의 가장 존경할만한 인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세명의 인물을 병행하며 보여줍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일대종사’라는 인물상 그 자체로 보입니다. 각각 가장 거칠고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도 스스로 가치를 선택하고 어느정도의 위치에 오르는 그런 사람들을 말이지요. 다만, 토론회는 이 영화에서 ‘일대종사란 이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우리가 보기에 결국 무술을 힘으로 이용하는 일선천의 선택은 음흉해보입니다. 그리고 개인의 선택을 위해 뜻을 전달하기를 포기한 궁이에게서는 아쉬움을 느끼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엽문을 찬양하는 것으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무술밖에 모르고 세상을 사는 조리있는 방법을 몰라 아내와도 이별하여 장례조차 제대로 치러주지 못하는 인물이니까요. 그리고 설령, 궁이의 선택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살아온 인생은 후회로 점철된 인생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중국 상영판에만 들어가있는 장면인) 눈밭에서 팔괘장을 시연하는 궁이는 언뜻 보면 웃는 얼굴로 보입니다. 인생에 후회가 없는 사람이라면 취할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지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인간군상의 모습들은 그들중에서 ‘일대종사’가 있는가 없는가를 위한 배경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목적과 선택으로 ‘일대종사’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엽문은 처음에 말합니다. ‘무술은 오직 두가지다. 수직과 수평. 쓰러진자는 눕고, 이긴자가 선다.’ 엽문은 그렇게 쓰러진 많은 사람들을 뒤로 하고 홀로 계속 서 있습니다. 하지만 엽문에게서는 승자가 가질 수 있는 그 어떠한 환희도 느낄 수 없습니다. 쓰러진 자들도 자신의 역사에서는 일대종사의 길을 쓰고 있었고, 그저 자신이 쓰러지지 않아서 그 길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국내에서 상영된 상영판을 보면, 영화가 종료된 시점에서 갑자기 싸우는 엽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관객을 향해 ‘너는 어떤 무술을 하지?’라고 묻습니다. 이게 진짜 어떤 무술인지 묻는 것일까요. 토론회는 이런 결론을 냈습니다. ‘너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선택을 할거지?’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말입니다. 영화 <일대종사>는 이 물음을 묻기 위해 만든 거대한 초석이었다고 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살아간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 자문하게 하기 위한 기록이었다고요.


그 외에도 영화의 각 장면들(반복해서 나오는 사진의 이미지, 액션씬들이 가지는 특징, 비-고드름-눈으로 이어지는 기상현상들의 의미, 엽문이 궁이에게 주는 단추의 의미 등)에 대한 심도있는 대화들이 이어졌습니다. 영화가 워낙에 단순하지 않다보니 이야기의 폭도 다양하고 내용도 많았네요. 전부 옮겨드리지 못한 점 항상 아쉽게 생각합니다.


- 토론회가 뽑은 명장면 -

동요님이 뽑아주신 장면입니다.

사진으로 찍혀졌어야 하지만 마치 역사에서 제거된 것처럼 사진이 남지 않은 두 남녀의 대면입니다.

그러고보면 이 영화에서 궁이만은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도 이때 알게되었네요.


시월님이 뽑아주신 장면입니다.

마지막 부근, 딸인 궁이에게 팔괘장을 시연하는 궁보삼의 모습입니다.

일대종사란 무엇인지, 뜻을 이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이지요.

편집판에 따라서 이 장면이 잘려있는 터라 공식 스틸로 대체하였습니다. 안타깝네요.



친구따라왔어요님이 뽑아주신 장면입니다.

엽문이 봉으로 벽의 못을 박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엽문이 가진 공부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지 알수 있었습니다.



조제님이 뽑아주신 장면입니다.

홍콩에서 궁이와 엽문이 마지막으로 만났던 장면입니다.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가는 장면이죠.

둘이 가진 감정들이 어떻게 소용돌이 쳤다가 해소되었는지 이 한장면만으로도 읽히는 느낌입니다.

저기 개의 위치가 참 절묘하네요.


인생다그렇지님이 뽑아주신 장면입니다.

<일대종사>하면 딱 이 장면이죠. 너무 당연한 장면이라 아무도 뽑지 않던 장면입니다.

엽문과 궁이의 감정이 스치는 장면으로, 이 영화가 가진 갈래를 모두 표현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생다그렇지님이 뽑아주신 장면입니다.

중반에 엽문과 계속 편지를 주고받던 궁이의 모습입니다.

궁이입장에서는 엽문에게 사모하는 마음을 담고있는 도중이지만 배경의 눈덮인 설원이

그런 마음이 전달되지 않을것 같다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몽룡이누나님이 선정해주신 잔면입니다.

궁이에게 단추를 주는 엽문입니다.

엽문에게 있어서 인생의 봄이란 무엇인지, 이 단추라는 매개물을 통해서 한번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토론회 도중에는 그래서 엽문이 궁이에게 연정을 느꼈느냐 아니냐로 좀 오래 이야기를 했었지요.


제가 뽑은 장면입니다.

마지막으로 엽문을 만난 궁이, 자신이 엽문을 사모했었노라고 말을 합니다.

엽문과 대화가 한창 이어지던 중 눈물을 흘리는데, 절묘하게 궁이의 눈물자국이 뺨을 타고 남아있습니다.

이 눈물자국 하나가 너무 아름다워서 선정해봤습니다.


- 토론회의 한줄평 -

(점수는 5점 만점입니다.)

4 : 영상미가 아름다운 영화.

4.5 : 액션영화의 예술화

4 : 뫼비우스의 띠같은 영화

3.5 : 추상적인 영화

4.5 : 부분부분 잘라내어도 그 자체만으로 가치있는 영화

4.5 : 반드시 곱씹어봐야만 하는 영화

4.5 : 일대종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 토론회가 추천하는 같이 보면 좋은 작품 -

<연인>(영화) : 무술에 아름다운 영상미를 넣은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와호장룡>(영화) : 마찬가지로 무술에 영상미를 자아낸 부분이 비슷합니다.

<엽문4:종극일전>(영화) : 엽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로 일대종사와 비슷한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정무문 : 100대 1의 전설>(영화) : 견자단의 무술과 이 영화의 무술을 비교해서 볼만 합니다.


지금까지 가장 준비를 많이 해간 토론회였고, 가장 많은 이야기가 있었던 토론회입니다. 제가 왕가위 감독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영화가 어떤 깊이를 보여줬기 때문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