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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팔레스타인 -조 사코


 

조와 사메

 

 같이 일을 한 적이 있는 동료 중에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3년간 살다 온 사람이 있다. 원래 정치 얘긴 하는 사이가 아니지만 딱 한번 물어본 적이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 사이에 자주 갈등이 생기는데 어떤 쪽이 책임이 더 큰 것 같이 느껴지는지 라고 물었던 생각이 난다. 그 사람의 대답이 '둘다 똑같이' 였다. 그래서 약간 발끈해서 진짜 그렇게 생각하나고 팔레스타인이 불리한 상황에서 항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냐고 되물었던 적이 있는데 대답을 회피했던 기억이 있다. 그 사람은 이스라엘 쪽에서 공부를 하고 와서 비겁하게 자신의 정치적 결정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 "팔레스타인"을 읽고 나니 조금은 이해가 갔다. 나 같아도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만화책이라고 초반에 좀 우습게 봤는데 의외로 책장은 잘 넘어가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미묘한 적대감을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조 사코의 어투에서 묻어나는 외부인으로써 팔레스타인에게 가지는 감정을 읽기 위해서...예전 팔레스타인 관련 책에서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동정심에 가슴이 시렸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내가 만약 외국인의 입장에서 팔레스타인에 산다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변할까? 내가 유대 진영의 팔레스타인에 산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게 될까?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차치해 두고서라도 그들의 '크고 슬픈 눈'을 보는 것만으로는 지긋지긋해질 것 같다. 그리고 문제해결에 대해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 나온 어떤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한 국가 두 민족이 될 가능성은 낮게 보인다. 이미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환경은 비참하고 그들의 절망감과 복수심은 깊어 보이고 유대인의 입지는 강해져 있으며 팔레스타인사람들과의 갈등을 생각하기도 전에 자신들의 삶의 문제에 지쳐 있어보이고 좀 생각있는 유대인들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양심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입지를 정해 놓고 더 이상 양보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은 억울한 일들, 가슴 속에 쌓이는 한은 반드시 기억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두 가지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자발리아에서 두 아들을 차례로 이스라엘 군의 총탄에 잃은 한 노파의 이야기와 자발리아에서 조의 통역을 맡아 팔레스타인의 실상을 보여주려고 애쓴 사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 번째 사연은 그 노파의 가슴 속에 맺힌 한이 그대로 전해져와 가슴이 저릿했다. 그 노파가 겪은 일은 그대로 회상해서 묘사된 점이 아마 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 것 같았다. 특히, 총에 맞아 부상당한 그녀의 아들을 유대인 의사는 돌봐주지 않았던 장면에서는 그 가족들이 입었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니 힘들어 책을 더 읽어 나가지 못하고 마음도 어지러워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해서 산책을 나갔던 기억이 있다. 모든 이야기를 마친 그녀는 저자에게 묻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떤 소용이 있나고? 저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저자가 무어라고 할 수 있었을까? 그는 혁명가(선동가)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니며 한 개인으로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가 아니었을까? 그런 무력함에 대한 답이 이 책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팔레스타인에서 보고 들은 것은 감정적인 치우침 없이 독자들에게 전달해서 내면의 차가움을 깨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관심있게 들여다 보게 하는 것일 테니.... 두번째 사연은 더욱 묵직하게 다가왔다. 사메는 자발리아에서 난민촌 부흥센터와 몇몇 다른 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팔레스타인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았고 차분한 그 만의 방식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처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폭력이 배제된 저항을 생각하는지 어떤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서 자발리아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환경을 저자에게 보여주려고 애쓴다. 저자를 위한 그런 사메의 노력이 사회복지센터에서 사메의 입지를 약하게 만들면서까지 말이다. 그의 사연을 보면서 가슴이 저려오는 것은 뒤를 생각하지 않고 그가 팔레스타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메를 보는 저자의 심정은 어떠했을 지 쉽게 짐작을 간다. 그의 작업의 완성도는 이런 사람들로 인해서 더욱 높아지고 정교해졌을 것이다. 저자가 마음에서 진 빚을 갚는 길은 오로지 그가 발간한 책의 완성도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가슴 속에서 뭔가 움직이게끔 하는 것이 조 사코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한다.


  그동안 매스컴에 노출된 팔레스타인과 여러 유명인들에 의해서 판단내려진 콘텐츠로만 팔레스타인을 접해왔는데 이번 책을 보면서 내 스스로가 지나치게 팔레스타인의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정적인 이입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동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해결책 또한 쉽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책의 말단에 예닌에서 만난 전직 교사와의 대화에서 문제를 좀더 명확히 인식할 수 있었다. 아! 이 문제 쉽지 않다. 그리고 팔레스타인들에게 감정 이입이 지나쳐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내 스스로 어떻게 잠정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 팔레스타인 문제에 1%도 이해하지 못한 내가 감히 어떤 입장을 선택한다는 것은 만용으로 느껴져 버렸다. 지금 난 다시 중도적인 입장으로 돌아갈까봐 무섭다. 난 아직도 '달리는 열차 위에 중립은 없다 (하워드진 저)' 라는 말이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아직 니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많다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그렇다면 방법은 더욱 경험해보고 공부해보고 읽어보는 방법뿐이란 말인가? 이 문제의 명확한 그림은 무엇일까?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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