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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폭풍을 부르는 맹렬! 어른제국의 역습> - 추억을 지키는 법



(캐릭터 이름이 오락가락하여 짱구와 짱아를 제외한 다른 캐릭터는 일본 이름을 위주로 표기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추억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에서 매력을 느낀다. 이때 이 추억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추억들이 아니다. 그보다는 추억 속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한 호의에 가깝다. 추억이 미화되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가장 큰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그에 대한 실망, 즉 현재에 대한 불만족이라 할 수 있다. 어른이 되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그때의 기억과 마찬가지다. 지금에 대한 실망이 과거라는 시절의 아름답던 기억과 비교되기 시작하면서 그때가 더 좋았다고 스스로 납득하게 된다.


1970년부터 1990년 중반까지는 이런 ‘미래’에 대한 기대가 극단으로 떠오르던 시기다. 당시의 과학에 대한 관심은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 이유야 간단하다. 과학이 우리를 멋지게 변화시켜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 그림 경진대회 같은 것들도 숱하게 열렸고, 우주도시나 비행 자동차, 로봇 같은 오브젝트들이 수시로 출현했다. 년대의 앞자리가 바뀌는 2000년이 도래하면, 그리고 21세기가 오면 모든 것이 마법처럼 변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던 시대다.


물론 40년이나 지난 지금 많은 것들은 바뀌어있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던 가시적인 변화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손으로 요리를 해먹고, 자동차는 땅 위로 구르며, 비가 오면 우산을 쓴다. 우리가 기대하던 21세기의 화려함은 다가오지 않았다. 되려 미시적이지만 강력한 변화들은 우리 사회를 서서히 변모시켰고, 그 변화를 통해서 우리가 상정도 하지 못했던 현실적인 문제들이 도래하였다. 이제 우리는 변화하지 않은 삶의 질과 인간성의 변모라는 사회적 페널티를 마주하게 되었고, 때로는 과거에 대한 지나친 향수를 보이게 되었다.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 폭풍을 부르는 맹렬! 어른제국의 역습>(이하 <어른제국>)이 다루는 테마는 이런 극단적인 향수다. 일본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게 과거에 대한 진한 향수를 지닌 나라이며, 특히 이런 향수의 극단이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라는 행사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사카 만국박람회는 1993년 대전 엑스포와 마찬가지로 전세계의 산업과 문화의 최첨단 기술을 망라하는 국제적인 행사였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과학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라는 극단적인 낙관을 가지고 있던 일본은 이 ‘만국박람회’를 통해서 기술과 과학의 미래를 꿈꿔왔다. 하지만 21세기가 되어도 만박이 만들어준 환상은 달성되지 않았고, 이 ‘만박 세대’는 21세기에 대한 극단적인 실망과 아무것도 달성되지 않은 채 치열한 사회를 구성하기만 하는 현재에 비관하게 되기도 하였다.


이 작품에는 그런 ‘만국 박람회의 시대’로 회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라는 조직이 등장한다. 1970년이라는 시기에 집착하는 이들은 1970년의 ‘냄새’를 사용하여 그 시대를 그리워 하는 이들을 과거의 추억 안에 가둬둔다. 물론 이들은 바로 1970년에 만국 박람회를 거쳐온, 1970년대를 살아온 ‘만박 세대’들이다. 그리고 이 만박 세대에 포함되는 짱구의 부모들 또한 이 냄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결국 냄새에 취해 자신의 아이들에게 마저 냉담하게 대하고, 그들을 버리고 떠나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벌이게 된다.


이때 중요한 설정이 존재한다. 바로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가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냄새’라는 것이다. 물론 20세기 박물관이라는 20세기의 재현 구조물을 통해서 시청각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가장 핵심적인 방법은 1970년을 재현한 마을로부터 끌어모은 과거의 냄새를 전국에 뿌려서 전국을 1970년의 세계로 가둬버리는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냄새가 가지는 향수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우리는 추억에 대해서 많은 감각을 남긴다. 사진을 찍어서 시각적인 결과물을 만들기도 하고, 과거의 노래를 들음으로써 청각적인 추억으로도 빠져들 수 있다. 하지만, 오직 온건하게 재현할 수 없는 것은 바로 후각이다. 후각은 오직 그 시기, 그 때만이 만들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말하자면 냄새야 말로 기억과 시간을 담는다. 


이 작품은 이 이야기, 즉 ‘냄새가 기억과 시간을 담는다’는 부분을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어른제국으로 향한 짱구는 완벽하게 과거에 묶여버려 – 어린시절의 자신이 되어서 아버지(짱구의 할아버지)에게 월석이 보고 싶다고 떼를 쓰고 있는 아버지와 마주친다. 짱구는 그런 아버지를 되돌리기 위해 아버지의 신발을 벗겨서 그 냄새를 맡게 한다. 그리고 (무려 지브리 스튜디오가 선정한 극장 애니메이션 명장면 1위로 뽑힌!) ‘노하라 히로시(신형만 또는 신영식)의 회상’ 장면이 등장한다. 



히로시의 발냄새는 원작 <짱구는 못말려>에서도 종종 개그의 소재로 사용된다. 그 특유의 지독한 냄새로 화장실 유머의 핵심을 톡톡히 맡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만은 이 발냄새를 쉬이 우스운 것으로 여길 수가 없다. 히로시는 자신의 발냄새를 맡음으로써 과거의 향취에서 벗어나 현재의 자신을 찾는다. 그것은 단순히 히로시의 발냄새가 지독하다는 유머러스한 상황때문일까. 그 뒤에 등장하는 히로시의 회상에서, 히로시는 고된 회사업무를 마치고 귀가한다. 신발을 벗고 현관에 들어서자 짱구와 짱아는 그런 아빠의 발냄새를 맡는다. 히로시의 발냄새는 단순히 히로시가 가진 어떤 페널티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가 가정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그 긴 시간 성장과 결혼, 출산을 통해서 얻어낸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한 기록에 가깝다. 그리고 이 냄새는, 1970년의 히로시로써 남아있었다면 절대로 얻지 못했을 미래의 기억이다. 그야말로 냄새는 기억과 시간을 담아냈다.


이때부터가 이 작품이 가지는 구도의 진짜 시작이다. 다른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들’과 다르게 이 작품은 이대로 노하라 일가(신씨 일가)만이 적의 조직과 대면한다.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조력자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부부와 두 자녀라는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으로써 적과 대면하게 된다. 하지만 지난 과정,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의 과거에 대한 집착이 부가되면 그들은 단순한 가족이 아니게 된다. 오히려 자신들의 두 발로 미래를 일궈온 두 어른과 그들에게서 미래를 바톤터치 받을 두 아이라는, 미래를 상징하는 존재들이 된다. 그저 작은 하나의 가족인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유난히 짱구의 아빠 히로시에게 많은 부분을 일임한다. 짱구의 아빠는 1970년을 재구성한 마을에서 적의 작전을 막기 위해 달리며 ‘왜 이곳은 이리도 그리운거야!’라고 울기도 하고, 조직의 수뇌인 켄과 챠코(미셸)에게 ‘내 인생은 재미없거나 하지 않아! 가족이 있다는 행복을 너희에게 나눠주고 싶을 정도라구!’라고 외치기도 한다. 그는 이 작품에서 ‘가족’이라는 집단의 대표인 ‘가장’이자, 미래를 대표하는 가족의 표상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의 발냄새는 추억으로 빠지려는 찰나에 계속 가족을 구원해 나간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에서 초인적인 조력자가 필요 없는 이유다. 가정을 이루고 지켜나가는 것이 미래를 밟는 길이라면 이미 히로시는 이 시점에서 초인이나 다름없다. 작품 시작부의 거대 히어로 ‘히로시 썬’으로 분장한 히로시를 기억한다면 이것이 기막힌 대구임을 알 수 있다. 어릴때 동경한 거대 히어로로 분장함으로써 추억 속에 빠졌던 히로시는 자신의 기억을 되살리고, 가족이라는 틀을 다시 얻음으로써 진짜 초인이 된다. 추억 속의 히어로는 그저 히어로일 뿐이다. 진짜 영웅이 해야 하는 일은 광선을 쏘면서 괴수를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지켜야 하는 것을 지키는 거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가정을 꾸리는 것’만이 미래를 대변하진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히로시가 켄과 챠코에게 던지는 일갈은 가정이라는 틀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미래의 가능성을 축소시키고 있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족이란 미래의 상징이라 보는 쪽이 옳다. ‘가족을 이뤄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미래에 대한 선택을 하라’고 말한다.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만들어지는 구도는 히로시가 아빠고 짱구가 아들인 것이 아니다. 그보다 노하라 일가가 짱구를 탑의 꼭대기 까지 올리기 위해서 조금씩이라도 자신들의 속도를 늦춘다는 점에 있다. 히로시는 스스로 희생하여 엘리베이터의 진행을 멈추고, 짱구의 엄마 미사에(봉미선)는 스스로 몸을 던져서 짱구를 향하는 추격을 막아낸다. 이 과정은 마치 계주를 하듯이 선형으로 이어진다. 즉, 여기서의 ‘가족’은 단순히 가정을 이루는 사람들이 아니라 ‘미래로 향하기 위해 다음 사람으로 터치해 나가는 존재들’을 말한다. 가족들의 희생을 뒤로 하고 달리는 짱구의 모습은 한번의 컷으로 쉬지 않고 이어진다. 조직의 보스였던 켄이 1970년의 거리를 달리는 노하라 일가를 보며 “요사이 뛰어본 일이 없군”라고 말 한 것과 충분히 대비된다. 달린다는 것은 안주하는 것의 반대라는 것.


짱구는 조직의 보스인 켄과 챠코에게 자신이 미래에 살고 싶은 이유를 “어른이 돼서 누나 같은 예쁜 여자를 잔뜩 사귀고 싶다.”고 말한다. 어찌 들으면 순박하고, 어찌 들으면 우스운 이유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를 잡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달리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마저도 이룰 수 없는 허망한 꿈일 수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언제나 추억을 가지고 산다. 그때가 아니면 맡을 수 없는 추억의 냄새를 그리워 하고, 상상과는 다른 현실에 주저 앉는다. 하지만 과거를 그리워 할수록 미래는 멀어진다. 걸어서는 달려서 닿을 곳에 도달할 수 없다. 지금 또한 누군가에게는 과거가 되며,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된다. 지금 자신이 가진 추억이 아름답다면, 다른 누군가에게 또 다른 추억을 만들 수 있게 바톤을 넘겨주면 된다. 추억을 지킨다는 것은, 추억이 끊임없이 유지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