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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완성체 - 색출


  우리의 피부색은 모두 까맣다. 1년에 한두 번 다 같이 변하기는 하지만 곧 원래의 검정으로 돌아온다. 같은 피부색은 단순히 동질감만을 연상케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안전의 지표이다.

  어느 순간부터 하얀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기원은 알 수 없다.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은 배척당하고, 결국 색출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수가 제법 많아질 때면 제거 작업이 이루어진다. 하나 둘 씩 잡아내어 내버리듯이 쫓아낸다.

  그들은 그런 그들 스스로의 운명을 잘 알기에 우리들 사이에 숨어든다. 그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오인하여 몇몇 까만 이들이 같이 팽개쳐지는 일도 다반사다. 사실 그들이 끼치는 그 어떠한 부정적인 것은 존재 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 주위에 있으면 하얗게 물든다는 소문이 있기는 하지만 근거는 없다. 단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수에 의해 소수가 억압당하는 과정일 뿐이다. 나는 예전부터 이러한 상황이 못마땅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하얀 이들은 이제 다시 많아졌고, 색출 시간이 다가왔다. 내 옆집에 살고 있던 중년의 사내가 바뀐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가여웠기 때문에 모른 체하고 지내왔다. 그는 며칠 째 집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아마 덜덜 떨고 있으리라.

  아침에 살구색 제복을 입은 경찰 두 명이 내게 잘못 찾아왔다. 그들은 문제없는 내 검정색을 보더니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그리고는 주위에 하얀 피부를 가진 이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했다. 내게서 물러간 그들이 주위를 이 잡듯 수색하는 것을 몰래 훔쳐보고 있다. 경찰들은 이제 문제의 남자 집을 두드리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주위의 마지막 집이다.


  「09씨?」


  대답이 없다.


  「09씨 다 알고 왔습니다.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순순히 나오세요.」


  그러나 마찬가지다.

  살구색 제복의 그들은 서로 귀엣말로 무어라 속삭이더니 문에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리고는 잠시 뒤, 억지로 몸을 들이밀며 문을 부수었다.

  나는 창문을 통해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보고 있었다. 그때 우리 집 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13! 나 좀 도와주게. 그들이 왔어! 나 좀 숨겨줘!」


  문제의 사내였다. 나는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재빠르게 들어왔고, 문의 경첩이 빠질 정도로 세게 닫았다. 들어오자마자 창문으로 자신의 집을 뒤지고 있는 수색자들을 유심히 보고 있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을 맞은 듯 새하얗다. 


  「아저씨 어떻게?」

  「손 놓고 잡혀 갈 수는 없지.」


  그는 여전히 창문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아무도 못 봤겠지?」


  목소리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모르겠어요.」


  그들은 구석구석 꼼꼼히 수색하고 있었다.


  「나 좀 도와줘. 그럴 거지?」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수색을 마치고 나왔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보아 하얀 이가 우리 집에 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근처에서 제일 약삭빠르고 야비한 14가 그들에게 다가가 우리 집을 곁눈질 하며 경찰들에게 뭐라 얘기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우리 집으로 왔다. 들켰나보다.


  「13씨? 잠깐 협조 좀 해주시겠습니까?」


  하얀 이는 더욱 새하얗게 질렸다. 나는 그를 쳐다본 채로 말했다.


  「무슨 일이시죠?」

  「당신 집을 수색 해야겠습니다.」

  「아까 다 마친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제보가 들어왔어요.」

  「무슨 제보요?」


  그는 묵언으로 나에게 애원 중이었다. 나는 그가 가여웠다.


  「당신 집으로 숨어 든 것 다 알아요. 얼른 열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안 열어? 당신도 같이 잡혀가는 수가 있어.」


  다른 목소리의 경찰이 협박조로 나왔다.


  「우리가 맘만 먹으면 부수고 들어간다는 거 알고 있잖아? 그렇게 되는 순간 당신도 같이 끝이야 알아?」


  나는 갈등했다. 안타깝지만 그를 위함으로 나의 신변까지 위협 받을 필요는 없었다. 내가 문으로 다가가자, 하얀 이는 고개를 미친 듯이 저어댔다.

  나는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아저씨.」


  문이 열렸다.


  「탁월한 선택이오.」

  「저기 계시는구만.」


  하얀 이는 체념한 듯 고개를 떨궜다.


  「빨리 나와.」


  살구색 제복들은 양쪽에 한명씩 붙어 죄인 끌듯이 그를 데리고 나갔다.


  「두고 봐라. 너도 언젠가 하얗게 될 것이다.」


  그는 나갈 때 내게 그렇게 저주를 퍼부었다. 섬뜩했다.




  큰일이다. 잠에서 깨어 세면을 위해 거울을 본 순간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백인이 되어있었다. 온갖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갔다. 절망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내겐 얌전히 잡혀 갈 생각 따위는 없었다.

  야비한 14의 집으로 몰래 숨어들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어김없이 살구색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왔다.


  「14씨? 당신 집을 수색 해야겠습니다.」

  「네? 왜요?」


  그 순간 나는 14를 뒤에서 잡았다. 목에 칼을 들이밀고 말했다.


  「조용히 해.」

  「누...누구?」

  「입 닥치라고!」


  경찰들은 여전히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여기에 숨어들었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없다고 해.」

  「네?..」

  「죽고 싶어? 머리 굴리지 말고 없다고 하라고!」


  14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잘못 찾아오신 거 같아요. 여기 아무도 없어요.」

  「거짓말 말아요. 이번엔 우리가 확실해.」

  「나도 봤거든!」


  경찰 중 한명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니 열어.」


  일말의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래! 나 여기 있다.」


  그러자 그들은 쿵 소리를 내며 문을 부수었다.

  안쪽으로 문이 넘어왔다. 그 밖에는 살구색 제복을 입은 그들이 한쪽 입 꼬리를 올리고 서있었다.


  「뭐하자는 겁니까 지금?」

  「물러서. 애꿎은 생명 다치게 하기 싫으면.」


  그들은 웃었다.


  「아 그 녀석? 필요 없어.」

  「네?」


  14가 높은 어조로 소리쳤다.


  「경찰들이 이래도 되는 건가?」

  「희생 따위는 어딜 가나 있는 법이야.」

  「어서 처리해. 그래야 잡아가지.」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들은 진심 이었다.


  「당신들 경찰 맞아? 죄 없는 시민을 지켜줘야 하는 거 아냐?」

  「까만 이나 하얀 이나 모두 다 죄는 없어. 단지 다른 게 문제일 뿐이야.」


  14의 말에 그들 중 한명이 피식 웃었다.


  「안 들려? 어서 그를 찔러.」


  나는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잡아가라.」


  나는 칼을 내렸다.






  「자기야 왜 이렇게 새치가 많아. 여기 또 있네.」

  「그러게. 요새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그런가?」


  최근 여자 친구는 만나면 내 머리부터 본다.


  「근데 이거 뽑으면 뭐가 좋아? 뽑으면 그 자리에서 두 개씩 난다던데.」

  「그냥. 까만 머리에 허연 게 듬성듬성 있으니까 보기 싫잖아.」


  그녀의 두 손가락은 까만 이들 사이에서 하얀 이를 색출해 내기 위하여 내 머리 위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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