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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삭제하시겠습니까?

"야 괜찮냐? 너무 마신거 아냐?"

대학 동기들과의 술자리.

대학 OT에서 처음만나 10년 가까이 만나온 친구들.

그중 한명이 얼마뒤 결혼한다며 모은 자리.

이제 슬슬 하나둘 결혼이란걸 하는 나이가 되었다.

남자4명과 여자2명. 이 녀석들 중 올해 결혼하는 녀석이 세명이다.

한번에 싹 빠져나가는구만.

간단한 저녁 식사와 오랫만에 얘기좀 하자며 옮긴 술자리.

오늘따라 술이 안받는다. 

오늘 이자리를 만든 녀석. 참 많이도 변했다.

어릴적 순수했던 모습은 어딜갔는지...

혼수며 예물이며 이런 말이 나올때마다 내 말수는 줄어만간다.

그때마다 손은 비어있는 술잔을 채우고 녀석들의 대화를 엿들을 뿐이다.

"야 근데 니네 선물 뭐해줄거야?"

"글쎄다~"

"니네 갈때도 서로 다 해주자"

티비? 냉장고? 에어컨?

"이 멍청한놈들아. 저건 다 혼수품이잖냐."

"그러네?"

"야 이혜미. 너 우릴 너무 쉽게 생각했어"

"안넘어가네 자식들. 많이들 컸어."

"야 정작 결혼하는 지원이는 가만히 있는데 니가 왜 더 난리냐?"

"지원이 이 기집애 대신 내가 총대매는거야"

정신이 없다. 뭔얘기로 대화에 끼어야할지 모르겠다.

"야 용찬아. 넌 왜 계속 조용하냐? 술만 계속 마시고"

"너도 결혼할때 선물 해줄게~"

눈치없는 년...

"야 쟤 독거노인으로 혼자 살거니까 홀아비냄새 안나게 공기청정기나 사줘"

그래. 고맙다 이새끼들아.

술이 올라온다. 괜히 더 있다가 실수나 할것같아 화장실로 향했다.

찬물로 얼굴을 좀 식히니 좀 나아진것 같다. 세면대 거울을 들여다 본다.

술기운에 빨개진 얼굴. 풀린눈....

'에라 병신아...'

화장실에 기다리는 뒷사람에 밀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역시나 끼어들기엔 나완 동떨어진 주제들.

안되겠다. 집에나 가야겠다.

"야 미안한데. 나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겠다. 다들 반가웠고 조만간 또 보자"

더 놀다가라는 녀석들을 뒤로하고 문으로 향했다.

나가는 길에 누군가 코트 끝자락을 잡었다.

지원이 녀석이다. 그리곤 내 손에 뭔가를 쥐어주고

아무일 없는척 녀석들과의 자리로 돌아간다.

하얀 메모지에 휘갈겨쓴 글씨.

'들어가서 전화줘. 그리고 고맙고 미안해..."

순간 술이 확 깨는 기분. 얘도 알았던 걸까?

대학교 1학년 시절 잠시 사귀다 친구로 지내온 10여년의 시간...


호프집 문을 나서며 그애가 건넨종이를 무참히 구겨 바닥에 던져버렸다.

괜스레 허망하고 눈물이 난다.

핸드폰을 열고 이름을 찾는다.

'한지원'

'삭제하시겠습니까?'

떨리는 손으로 확인 버튼을 누르려 하니 스마트폰 액정위로 떨어진 눈물때문에 잘 눌리질 않는다.

바지위에 폰을 비벼 닦고 다시 깨끗해진 폰 화면에 뚜렷히 보이는 문구.

'삭제하시겠습니까?'

깨끗하게 삭제가 되었다. 

 

 

안녕....나의 20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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