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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종착역


 파란 하늘이 싱그러운 가을 아침.
차갑지만 청량감이 느껴지는 바람이 불어오는 날.
그녀를 만나는 날이다.
 언제 어떻게 그녀와 알게 되었고 이러한 사이가 된것인지 모를 만큼 우린 그렇게 만났다.
가끔 만나 커피 한잔의 수다와 술자리, 때론 서로의 고민을 상담해 주기도 하며 그렇게 지내왔다.
친한 오빠 동생으로 지낸지도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흔히들 말한다. 남 녀 사이에 친구란 없다고.
이런 우리 사이를 보는 친구들은 내게 '너흰 첫 단추부터 잘못 맞았어'라고 말한다.
 그 시간동안 혼자만 간직하고 있을 마음을 내비추기엔 이미 늦었다고...
애초에 서로 알고 지낸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내 마음을 보였다면 이런 뜨뜻 미지근한 관계는 없었을 거라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엔 첫 단추는 제대로 채워졌다.
단지... 투 버튼 슈트에서 채우지 않는 아랫 단추처럼 아직 우리 사이에 끝 맺음이 없을 뿐이다.
 "어디야? 나 이제 지하철 내렸어."
 "금방 왔네? 나도 지하철 출구 앞이야. 빨리 와요"
얼마만에 보는 얼굴 인지 모른다. 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보는 순간 마치 어제 만난것 마냥 익숙하다.
 "저녁은 먹었어? 먹고싶은거 있어?"
오랫만에 만나는 약속에 미리 생각해 둔 장소도 있지만 의례적으로 그녀에게 물었고,

 마치 연인인냥 우린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오늘을 위해서 여러 대화 주제를 생각해 두었지만 막상 마주 보고 앉아있자니 어떤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몰랐다.

항상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음식이 어떻게 입으로 들어가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단지 날 보며 배시시 웃는 눈빛과 입꼬리 그리고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긴 생머리 만이 머릿속에 가득할 뿐이었다.
 "나 할 말 있는데."
 "응? 무슨말? 요즘 무슨 고민 있어?"
 "음..."
그때 참 절묘하게도 전화가 울렸다.
 "ㅇㅇ오빠? 왜? 나 지금 아는 오빠랑 밥먹고 있어. 그래 조금 있다 봐"
아.는.오.빠.
 그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오빠 미안. 무슨 얘긴데?"
 "아니 그냥. 근데 넌 연애 안해?"
뜨뜻 미지근한 이 관계를 오늘 확실히 하자던 다짐은 어디가고 또 엉뚱한 말을 내뱉고 있었다.
음식은 이미 다 먹은지 오래다. 그저 조금이나마 더 같이 있고 싶어 빈 물잔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조금 더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 한켠에는 왠지 모를 불편함이 공존 하고 있었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만 같았다.
 "그만 일어날까?"
어떻게 계산을 하고 또 어떻게 다시 지하철 역까지 걸어 왔는지 모르겠다.
 조심히 들어가라는 그녀의 인사에 그저 웃고 있는 인형 마냥 인사하고 돌아섰을 때.
자켓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에 전해지는 차가운 감촉에 정신이 들었다.
 빨간 머리핀.
하얀 피부와 긴 생머릴 가진 그녀에게 잘어울릴것 같아 나도 모르게 사버린 머리핀.
하염없이 손 위에 올려진 머리핀을 들여다 보고 있을 때 누군가 어깰 부딪히며 지나갔다.
손에서 떨어지는 머리핀을 보는 순간 시간이 멈춘듯 했고, 바닥에 떨어져 부서지는 순간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마지막 단추를 마저 채우지 못하고 깨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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