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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식은 커피

 

" 늦어도 괜찮아, 천천히 와도 돼. "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목소리에 전화 끊으면서 난 ' 다행이다. 잔소리 안들어도 되겠구나. ' 하면서 그 앨 만나러 갔었어.

오늘은 뭐하지? 밥은 뭐 먹지?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래, 어느 연인들이 그러하듯이 말야.
카페문을 열자마자 둘러볼 것도 없이 그 애가 보였지. 좀 미안해서 오래 기다렸지? 했더니 고개를 저으면서 말하는거야.

늦게올지 몰라 같이 주문한 커피가 식었다고 새로 사다줄까 하길래 됐다고 식은거 먹겠다했지.

사실 그때도 나 몰랐었다? 자리앉아서 폰만 꺼내고 톡온거나 보고 있었거든.

뭐부터 할까? 밥은 먹었어? 영화보러 갈까? 뭘 하든 괜찮다던 애였으니까 당연히 ' 나 하자는 대로 하겠지. ' 하고

그냥 별 생각없이 예의상 물어보던 그 때도 그저 오면서 생각했던 얘기만 늘어놨어. 항상 내가 뭘하든 그 앤 괜찮아,

너 하고싶은거 하자 했으니까 그래서 정말 괜찮을거라 생각했었지. 걘 그냥 나하는대로만 따라오던 애였거든.

 

" 괜찮다고 했는데 사실 안 괜찮아. "

 

 

느닷없는 말에 갑자기 불안해지는거야. 아 뭐랄까. 설명이 안되네. 그냥 갑자기 흠칫하는 뭐 그런거 있잖냐.

그래서 담배를 꺼내물다가 순간 멈칫했었지. 얘가 지금 뭐라 하는 건지 감이 안잡히는거야, 내가 좀 눈치가 없긴 하잖아. 갑자기 뭐야? 하면서 쌩뚱맞게 생각하고 그냥 응? 이러면서 쳐다만 봤어. 평소와 다를바 없는 표정인데 아니, 오히려

유난히도 덤덤하니까 그 순간 왜 그리도 낯설던지.

근데 애 얘기 들어보니까 나를 기다리는 동안 커피만 식은게 아니었더라고. 날 오늘만 기다린 게 아니었더라.

평소처럼 영화보고 거릴걷고 손 맞잡고 오늘도 별반 다르지 않을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내가 너무 부끄워서 견딜 수가 없더라.
그 애, 얘기 다 하더니 처음으로 나한테 묻더라. 이대로 가도 괜찮냐고. 괜찮다곤 했지만 사실 안 괜찮았어.
차마 잡을 수가 없어서 괜찮으니까 이제 상관말고 그냥 가라했다.
야, 그 때 내 기분 네가 알 수 있겠냐.

처음엔 그냥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러나 싶어서 좀 황당했었거든? 근데 걔 가고나서 혼자 멍하니 곱씹고 있는데

진짜 걔한텐 내가 못된 새끼였겠더라고. 나한테 맞춰준다고 그리 노력을 했는데 벽에다가 얘기한 꼴이었던 거야.

걘 더이상 못해먹겠다 싶었던 거지. 기다리다 기다리다 안되겠다했다더라.

여자들이 남자가 뭐 물어보면 괜찮아, 괜찮으니까 너 하고싶은 대로 해 라던가 네가 좋으면 난 괜찮아 뭐 이런 말들

자주 하잖냐? 넌 그거 믿지마라. 나중에 나처럼 한방 얻어맞는다. 그거 은근히 기분 묘하다.
그럴거면 진작 얘기하지 하면서 썅욕하고 싶다가도 좀 지나니까 내가 여자 혼자 기다리게해놓고 몰라준 병신이었구나

싶다니까? 걔 가고 나서 담배만 줄창 피다가 식은 커피 먹는데 와, 진짜 더럽게 쓰더라.

어찌나 쓰던지 내 속이 다 쓰리더라.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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