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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뮤지컬 어메리칸 이디엇

  고민을 하였다. 좀 비싸더라도 좋은 자리로 할까 아니면 돈이 아까울테니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볼까? 지금까지 몇몇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봐왔던 경험에 의하면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연출력은 대단한 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플롯 또한 튼튼한 편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후회는 해도 뮤지컬을 보고나면 후회하는 경우는 없었다. 끊임없이 좋은 자리로 하라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번 달은 소비 예산을 초과했으니 좀 안 좋은 자리로 선택하자라고 결정을 내렸다.  뮤지컬 티켓은 각종 할인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비쌌다. 

  

  어메리칸 이디엇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가졌던 느낌은 미국의 세속주의에 눈이 멀어서 욕망을 채우는데만 급급한 생각없는 미국의 젊은이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가 했다. 지구 상의 한쪽에서는 못 먹어서 사람들은 굶어 죽어가는데 지구의 다른 쪽에 사는 사람은 너무 많이 먹고 욕망을 절제할 줄 몰라서 죽어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한 생각 혹은 반성이 없는 미국인들, 아 물론 미국인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코리안 이디엇, 저팬 이디엇, 차이나 이디엇 등 많이 있을 것이다. 오직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급급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작년에 같은 장소에서 "위키드"를 보았을 때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빈자리가 반이상될 정도로 꽤 많았다. 어메리칸 이디엇은 뭔가 우리나라 정서와 맞지 않는 구석이 많구나라고 짐작을 했다.  뮤지컬은 대사는 거의 없이 노래로 내용 전달을 하였다. 한글로 된 가사도 잘 안들리는데 하물며 영어로 된 대사라니... 아무리 자막이 나온다고 해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전혀 배경지식이 없는 플롯에 99% 노래로써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은 따라가는 것만 해도 쉽지 않았다. 또 다른 문제는 우리나라는 이런 종류의 멍청이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다. 우리 사회에서 방탕하게 생각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일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나라가 우리나라 아닌가? 잉여가 될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 이디엇이라는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잘 알고 있거나 혹은 내가 심각하게 생각해본 주제의식이 아닌 것에 대한 낯설음 때문에 몰입도가 높지 않았다.


  그리고  노래가 한 곡 끝날 때마다 옆에 앉은 그린데이팬인 것 같은 한 남자아이가 내뱉는 "어휴~! 너무 잘한다"라는 고함은 나를 웃게 만들었다. 도대체 어느정도로 좋아하면 많은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TV에서 그린데이의 노래를 듣고 개인적인 탄성을 내지르는 것처럼 반응할까라고 혼자 속으로 '킥킥' 거렸다. 뮤지컬의 큰 줄거리는 세 명의 멍청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주는데 주인공은 음악을 한답시고 마약에 찌들어서 자신을 파괴해버리는 삶을 살고 다른 한 명은 군대로 입대 후 파병이 되어서 상이군인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하고 마지막 한 명은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집에서 놀고 먹고 사는 삶에 결국에는 여자로부터 이혼당해버리는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들 세 친구가 고향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스토리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왜 어메리칸 이디엇의 표상인지 그로부터 깨달을 수 있는 삶의 지혜는 무엇인지 내 눈에는 불명확해 보였다. 그들은 어떤 삶의 살았건 그로부터 얻은 깨달음이 있을 것이고 이들을 수정하려는 노력을 보인다면 누구나 겪는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어떤 삶의 철학을 유지하면서 살지 않는다. 삶이 계속되는 한 한 개인의 중심철학은 경험에 의해서 끊임없이 바뀐다. 삶을 살면서 나는 이렇게 살아야지 하는 초기의 다짐은 영락없이 깨어지고 또한 중심철학이 없이 사는 사람들이라도 결국은 경험에 의해서 무언가를 배우게 되어있다. 그들이 철학없이 사는 것이 멍청한 삶인지 아니면, 그들에게 어떤 철학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철학이라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면 쓸데없이 가치에 얾매여 자유로운 삶을 망가뜨릴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뭐 그렇지만 어떤 가치를 위해서 삶을 살아야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그런데 어메리칸 이디엇에서 든 예시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나이는 너무나 젊다. 젊음은 그런 철학의 부재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스토리가 얼마나 미국에서 어필했는지 모르지만 작년에 읽은 2000년대 미국을 사는 다양한 계층의 계급의 삶을 들여다보는 책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예전처럼 막무가내로 생각없이 그 때 그 때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사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교육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받고자 하면 그렇지 않다면 빈민에 가까운 삶을 살아야 하는 즉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호의호식할 여유가 더 이상 없어져버렸다. 물론 이것도 철학이 있는 삶이 아닌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삶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졌다고 보여지지만 말이다. 어쨌던 저런 방식으로 사는 삶이 오늘날 미국에서도 보편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없을 수 밖에 없는 스토리로써 나조차도 이런 이야기에 몰입 하기는 어려웠다. 가장 큰 이유는 국제적인 정서에 어두운 나의 식견이 한 몫을 단단히 하였을 것이다. 내가 소화하기에는 나의 경험이나 나의 앎이 짧은 것이 가장 큰 탓이리라. 여튼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일년에 한 편씩이라는 약속을 지켰다는 의미를 두고 싶다. 역시 연출이나 무대의상 춤에서 느껴지는 파워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주제의식으로 파고 들지 않는다면 무난했던 뮤지컬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지인들에게 추천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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