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화요일

게임 <곤 홈>의 스토리 혹평에 대한 네가지 반론.


(금주는 일이 바쁜 연고로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살짝 긁어옵니다. 정식 리뷰는 나중에 따로 쓰기로 하죠.)


<곤 홈>이 메타크리틱 90점을 받을 만한 게임이 아니라는 주장들이 꽤 보인다. 이유는 대체로 스토리가 별로라는 쪽이 많다. 사실 단순히 '점수를 받을 만한 게임이 아니다'를 넘어서 '애당초 별로다'라는 의견도 꽤 있다. 나는 이런 의견 전체에 대해 상반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되려 <곤 홈>은 이야기 매체로의 게임을 훌륭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여긴다. 이것들은 일단 나의 반론들이다.

(사람에 따라 스포일러로 여길 수 있는 요소가 있음)

첫째. 동성애를 미화한다는 지적. 정말 이 작품이 동성애를 미화하고 있다고 여긴다면 당신은 게임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 게임이 동성애라는 소재를 큰 방향에서 차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화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10대 소녀의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가정과의 충돌이 더 사실적으로 나오지 않는지? 수많은 요소들이 그런 충돌과 혼란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사만다(샘)이 쓰는 소설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만약 그럼에도 이 게임이 동성애(본 게임에서는 샘과 로니의 관계)가 미화된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그만큼 샘의 감정이 순수하고 솔직한 것이라는 사실의 반증이다. 본 게임에서 나오는 대다수의 증거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샘의 기록이며, 그로 인해 샘의 감정을 직관적으로 전달받게 된다. 그러니 여기서 동성애는 미화된 것이 아니다. 샘의 감정이 그만큼 올곧았다는 것 뿐이다. 아 물론 이 지적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단순히 호모포비아적인 사고로 지적한 것 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애당초 번짓수가 틀렸다는 거다. 

둘째. 이야기가 단순하고 뻔하다는 지적. 아 물론 이 게임이 품고 있는 진실이 그렇게 새롭고 획기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가족이 분열직전의 상황이라는 것도. 그런데 도데체 설정된 이야기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가? 스토리보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텔링이다. 즉 이야기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건 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느냐라는 말이다. 만약 이 게임의 이야기가 그정도로 단조롭고 매력이 없다면 도데체 3~4시간 정도 되는 시간을 왜 들여가며 그 뻔한 진실을 들여다 본건데?
답은 하나다. 이 게임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기가막히기 때문이다.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내의 환경이 완벽하게 오픈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실 집 문을 열고 들어가서 집안의 모든 물건들을 만지고 기록들을 조사할 수 있게 되어 있으니 당연히 오픈된 게임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 게임의 진행 정도를 알려주는 샘의 내레이션을 한번 떠올려보자. 한두번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봤을때 이 순서가 부자연스럽게 나온적이 있는가 말이다. 이 게임은 철저하게 플레이어의 심리적 동선을 미리 예측하고, 그에 맞게 증거들을 배치해놨다. 그러므로 게임을 처음하는 사람은 거의 확실하게 동선대로의 정보를 얻게되어있는 것이다. 물론 행동반경을 제약하다가 특정한 트리거에 의해서 행동반경이 넓어지는 방법을 차용하여 정보를 관리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새로운 공간에 들어갔을때에도 예측동선에 의거하여 정보를 배분하고 있다. 혹시 신뢰가 안간다면 다시 한번 플레이 해보길 권장한다.

셋째. 그래서 결국 막장드라마 이야기라는 지적. 그래, 그래서 결국에는 분열된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맞다. 반복해서 지적하지만 그 설정이 그렇게 중요한가? 이 게임의 플레이 방법을 보자. 집 안에는 수많은 기록들이 존재하고 그것을 가족의 큰 딸인 케이티가 하나하나 접하게 된다는 구성이다. 이 기록이라는 것들은 누가 누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부터 가족의 일원이 쓰다 버린 소설, 심지어는 그냥 영수증까지 다양하다. 이것들은 하나하나 떨어뜨려 보면 그냥 단순한 기록일 뿐이다. 하지만 케이티처럼 그것들을 천천히 모아보다 보면 가족이 가진 진짜 균열이 드러나게 되어있다. 이 그린브리어 가족은 여타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대외적으로는 온건한 '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내부에는 심한 갈등과 균열이 다량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균열의 증거가 우리가 하찮다고 여기는 영수증이나 주문서에도 아로새겨져 있었다는것을 발견한다.
이 가족의 상황이 우리가 겪는것보다 상대적으로 더 심하게 비틀려있다는 것을 제외하고 현실로 돌아와보자. 이건 우리에게도 언젠가 또는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에 대한 기록들은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구겨서 버리는 것들에 꼼꼼하게 새겨져 있을 것이다. 이러고도 이게 단순히 막장 드라마라고 여길 수 있는가?

넷째.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관점이 있다. 도중에 샘의 개인 락커를 열어본 케이티는 그 안에서 남성잡지를 발견하는데, 그때 케이티의 생각은 '아, 왜이러니 샘...'이다. 케이티는 그래도 가족내에서 가장 샘을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게임의 배경은 1995년이다. 그녀가 아무리 여성이고 좋은 이해자라고 하더라도 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시대였다.
플레이어의 사고와 관점은 케이티와 함께 움직이게 되어있다. 케이티는 샘의 그런 성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당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고의 여성이었다. 그 이후 더 진실이 밝혀지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지만 케이티의 사고가 더 자세히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케이티는 어떻게 되었을까? 조금 더 이해의 폭이 넓어졌을가?


이 게임을 강렬한 로맨스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게임으로 보는 관점들이 많다. 나도 그렇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깊은 지점이 있을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왜냐면 게임을 끝까지 하고 나면 케이티가 조금이라도 더 샘을 이해하게 되었을거라 상상하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이해의 폭을 넓히고 관점을 바꾸는 게임 또한 될 수 있다. 물론 그게 누구에 의해 플레이 되느냐에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