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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우주원인 고리> - 누가 뭐래도 난 이 제목을 고집할래요.

좌측에서 부터 각각 <우주원인 고리>, <우주원인 고리 대 스펙톨맨>, <스펙톨맨>의 타이틀


1971년에 일본에는 <우주원인 고리>라는 특촬 드라마가 방영됐다. 제목에 들어가있는 우주원인 고리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인원처럼 생긴 외계인, 지구인류가 지구를 더럽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인류를 정복하려 하는 정복자였다. 여기에 우주의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작은 희생정도는 쿨하게 무시하는 스펙톨맨이라는 히어로가 나타나고 둘은 대립하게 된다.


환경을 사랑하는 젠틀한 다크 히어로 고리와 그의 충직한 부하 라.


고리는 충직한 부하 라와 함께 괴수들을 만들어서 지구를 공격하는데 그 기반이 되는건 다 인간이 저지른 업보다. 예를 들자면 1화에 등장한 '공해괴수 헤도론'의 경우 스즈오카현에서 맘대로 바다에 방출한 폐수에서 만들어낸 괴수다. (일본어로 헤도로(へどろ)는 폐수라는 의미다.) 그리고 히어로인 스펙톨맨은 정작 괴수가 도시를 공격하던 말던 본성에서 지령을 내리지 않으면 활동도 하지 않는다.


장르에 대한 냉소적인 패러디와 사회에 대한 가차없는 풍자로 시작된 상상을 초월하는 히어로극은 의외로 엄청난 인기를 얻게되지만 공해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룬 것으로 방송국에 밉보이고 결국 '악역이 제목을 꿰차고 있는게 이상하다'는 트집을 잡혀 제목이 21화에서 <우주원인 고리 대 스펙톨맨>으로 변화, 40화에선 아예 그냥 <스펙톨맨>이 되고 만다. 내용도 그냥 날뛰는 괴수를 쳐부수는 스펙톨맨의 용맹한 활약으로 변모하고 고리와 라는 등장도 잘 하지 않게 된다. 괴수들의 이름도 '공해G맨'에서 '괴수G맨'으로 교체되고 공해의 이미지도 사라진다.

일본의 관료주의를 풍자하는 관료 히어로 스펙톨맨.

그저 '공해가 어쩌니, 제목이 어쩌니'라는 이유로 이딴 놈이 정의의 주인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런일은 지금도 가까운곳에서 잘도 일어나고 있을거다. 사회의 풍기니 도덕성이니를 인질삼아서 작품을 마음대로 자르고 붙여서 결국 온건하지 못한 결과물로 전달하는 그런 일 말이다. 애당초 고리를 싸잡아서 '악역이라고 평하는 것은 올바르지도 않고, 스펙톨맨 역시 히어로라고 일견에 확언할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그렇다. 그저 사회의 보편적 도덕이라는 잣대로 뻔뻔스럽게 나눈 일에 불과하다.


<우주원인 고리>는 시대라는 관점을 초월한 고차원적인 풍자극이었다. 그리고 이런 풍자극은 언제나 사회에 필요하다. 도데체 이런 것들이 뭐가 그리도 두려운 것일까. 가장 유쾌한 점은 <우주원인 고리> 사태는 일본에서는 40년전에 일어난 해프닝이지만 우리에게는 현실이라는 것 아닐까. 으하하하하하.


(그런 연고로 저는 이 작품의 제목은 <우주원인 고리>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펙톨맨>은 없는걸로 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