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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2013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특집 (2)



2부 시작합니다.

1부에서 남은 영화가 8편이라고 했습니다만, 그 사이에 보고 싶은걸 늘려서 두편을 더 봤습니다. 열편을 봤네요.

저번주 수요일부터 본 영화들은 전체적으로 마음에 듭니다. 다만 이번 피판에서 본 영화들 중 절반 이상이 묘하게 마무리에서 걸리는게 많아요. 대체로는 작품의 컨셉이나 목적에서는 납득할 수 있는 엔딩이지만 베스트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애매한 선택들이네요. 극이라는게 마무리하기 힘든 것임은 사실이지만, 그렇다면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그럼 저번주 수요일부터 본 10편의 영화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7월 24일 수요일


이 영화는 카탈로그의 설명을 보고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꽤 만족했습니다.


주인공 마이클에게는 산중에 쳐박혀 약이나 하면서 인생을 허비하는 크리스라는 친구가 있어요. 마이클은 임신한 아내가 있지만 그럼에도 이 친구를 구제해주기 위해서 크리스를 찾아갑니다. 크리스는 약을 하고 허공에 총질이나 빵빵 하면서 언제 죽을까만 고민하고 있어요. 마이클은 그런 크리스를 스턴건으로 제압하고 오두막에 약기운이 빠질 7일간 수갑을 채워 감금해둡니다. 


여기까지보면 그냥 마약쟁이 친구와 그걸 구제하려는 멀쩡한 친구사이의 툭탁거리는 코미디 영화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이 영화는 꽤 웃겨요. 어떻게던 빠져나가려는 크리스와 그걸 막는 마이클간의 대화는 스크루볼 코미디처럼 표현되거든요. 하지만 이 영화는 적혀있는대로 공포/미스테리 영화입니다. 그리고 공포는... 음,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미스테리 요소는 확실히 있습니다.


크리스가 지내던 이 오두막은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는데, 이상한 사람들이 찍힌 사진들이 있어요. 사람의 죽음에 관한 음산한 사진이죠. 게다가 주변에는 왠지 고대 종교의 재단같은 수상한 구조물도 있고요. 게다가 크리스에게 마약을 판 친구들이 자꾸 나타나서 빌려간 마약을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오두막의 진짜 주인이라는 사람도 나타나서 '여길 떠나는게 좋을거다'라고 으름장도 놓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두막 주변에 어떤것들이 자꾸 발견되는데, 사람이 죽는 음산한 이야기가 적힌 책이나 결국 자살로 끝나는 슬라이드같은 것들입니다. 


이렇게 음산한 분위기에 오두막이라는 고립된 장소를 쓰면서 의외로 밤이라는 시간을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예 안쓰는건 아니고 잠깐 사용하긴 하지만 밤에 일어나는 사건은 거의 없어요. 게다가 뭔가 확정적인 장치가 나오기 전까지는 두 주인공은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현실적인 문제에만 매달립니다. 다른 영화들처럼 어벙하게 초자연적인 사건에 마구 발을 들여놓지 않거든요. 애당초 이게 어떤 초자연적인 사건인지도 의심하지 않고요. 그냥 누가 장난친다고 생각하고 마약에 관련된 일만 걱정하죠.


그래서 영화가 주는 분위기는 굉장히 독특합니다. 대다수의 사건은 쨍쨍한 햇빛 아래에서 이루어지지만, 이상한 기록물이 발견될때마다 관객은 낮 씬인데도 긴장하게 됩니다. 게다가 주인공들이 이런 이상한 일에 크게 관심이 없다보니까 되려 관객이 몸이 동하는 느낌도 있고요. 분명히 어떤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주인공들이 무단방치 되는것 같은거죠. 언제 어디서 이상한 것이 튀어나와서 주인공을 채간다고 해더라도 모를것 같습니다. 주인공들은 그만큼 무방비 상태니까요.


그리고 이 영화는... 기록에 관한 영화라고 보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항상 보는 '이야기가 존재하는' 정제된 기록같은 거죠. 한동안 범람했던 파운드 푸티지 영화들에 관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감독들도 이 영화가 파운드 푸티지 영화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여튼 많은 파운드 푸티지가 동일한 엔딩을 주인공들에게 강요했는데, 이 영화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일종의 메타픽션처럼 다루는 거죠.


이 영화의 엔딩은 그래서 미묘합니다. 설정적으로는 납득이 가고 맞는 이야기지만, 어딘가 극 전체로 보자면 이상한 곳에서 툭 끝나버리고 말거든요. 이런 설정을 가지고 더 영리한 방법으로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2013 노테르담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영화라 하여 선택했습니다.


카탈로그에 적혀있는 시놉시스는 좀 이상합니다. 카탈로그에는 마치 여성판 <왕자와 거지>같은 뉘앙스로 적어놨거든요. 도시에서 살던 파니가 현실에 만족을 못하고 농장으로 가고, 농장에서 일하던 안나라는 여자와 생활을 바꾸기로 한다.. 라는 식으로 적어놨습니다. 완전히 틀린건 아닙니다만, 이 영화는 둘이 생활을 바꾸는게 중요한게 아니예요. 애당초 생활을 바꿔서 너는 여기살고 나는 여기살고.. 하는 장면도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그러한 논의, 혹은 그런 뉘앙스의 일시적인 일탈이 잠깐 나올 뿐이죠


영화의 제목은 '그녀 제인'입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제인이라는 여자는 나오지 않습니다. 두명의 주인공 여성은 파니와 안나라는 이름이거든요. 그럼 제인은 누구냐.. 라면 아무래도 잔 다르크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이유는 초반에 파니가 들어간 극장 이름이 '잔다르크'인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장 뤽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인데, 하필 영화의 주인공 나나가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의 수난>을 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좀 더 나아가 보자면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는 '그녀 생을 살다'라는 식으로 번역이 됐으니, 아무래도 두 개념을 합친것 같죠.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게 영화의 원제는 Soldate Jannette, 영어로는 Soldier Jane이거든요. '그녀 제인'이라는 제목은 한국에서 단 거니까 <비브르 사 비>의 예전 번안제를 신경썼을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만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는 절반 이상, 아니 80% 정도가 의도를 알 수 없는 파니의 행동들로 채워져 있거든요. 파니는 집세를 납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있는데도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되려 자신은 당당하다는 입장이죠. 집은 원래 남편의 소유물이었던 모양이나 둘은 혼인증명을 하지 않은고로 파니의 소유가 아니게 되어버린듯 합니다. 재산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면서 틈틈히 태권도(진짜 태권도 입니다) 수련을 다니고 영화를 보는 등 당당합니다. 돈이라도 좀 벌 수 있게 백화점 일을 소개해준다는 친구에게도 '나는 백화점에 돈을 받기위해 가지 않는다. 쓰기위해서만 간다'고 말하니까요.


이 여인의 어느 부분이 이렇게 당당함을 유지하게 하는지는 작중에서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극장에서 <비브르 사 비>를 보고 있을때, 영화내의 나나는 잔다르크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만 파니는 우습다는듯 객석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비브르 사 비>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답이라고 여겨집니다. 두 영화는 돈이라는 개념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그에 의해 휘둘리는 여성들을 다루고 있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파니는 나나와 다르게 그 안에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당당하게 삶을 유지하려 합니다. 당연히 체제는 그런 그녀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곧 쫓겨나지만요.


안나는 이런 파니와 또다시 반대되는 입장입니다. 안나는 돈을 벌기위해 농장에 있는 것이지만 사실 돈이 걱정스럽진 않아요. 되려 남성들의 세계인 농장에서 자신의 거치가 불분명한 것이 스트레스인듯 보입니다. 남자들 사이에서도 강력한 에너지를 보이던 파니와는 완전히 반대죠. 그러니 이 영화는 나나-파니-안나 의 세 여인을 선상에 올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만, 나나 역시 잔다르크를 보고 있었으므로 잔다르크-나나-파니-안나 라는 라인이 구성됩니다. 이렇게 올리면 결국 프랑스 여성의 시대별 투쟁사가 되게되죠. 시대별 여성들이 사회에 어떤식으로 순웅하거나 반발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되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배경지식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한번만 관람해서는 확실하게 알기 힘든듯 해요. 정식 개봉을 하면 그때 다시 봐야할듯 싶습니다.


- 7월 25일 목요일


이 영화는 장애인 전문 업소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전주에서 한국 페이크 다큐멘터리인 <섹스 볼란티어> 라는 영화를 봤었는데 그 영화를 꽤 좋게 봤어서 비슷한 소재인 이 영화도 선택해 봤습니다. 비슷하게 <세션 :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에도 장애인에게 성적인 자신감과 섹스의 방법을 알려주는 봉사자가 나오기도 했죠.

물론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장애인 전문 '업소녀'가 나오는 영화입니다. 봉사자가 아니라 업소의 직원인거죠. 다만 그 업소가 장애인만을 상대로 하고 있을 뿐입니다. 작중에 나오는 업소이름은 '허니 립스'라고 하는데, 크레딧을 보니 촬영 협조에 '허니 립스'가 있더군요. 실제 존재하는 업소를 모티브로 삼고 있는 모양입니다.


영화의 도입은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깝습니다. 주인공 사오리는 이제 막 업소에 들어온 여성입니다. '장애인이 상대라면 더 편할것 같아서'라는 이유라는군요. 그리고 주로 나오게 될 세명의 손님을 순서대로 받게됩니다. 이 손님들은 사오리에게 자신의 병명이 무엇인지, 어떻게 불편한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오게 됐는지 털어놓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그냥 만든 이야기가 아닌듯 합니다. 아마도 진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그대로 사용한 듯 할 정도로 생생해요. 특히 두번째 만나는 손님은 배우도 진짜 장애인입니다. 아마도 일본 도서 <웃어라! 배리어프리 섹스>라는 책을 지은 장애인 개그맨 호킹 아오야마인 모양입니다. 참고서적으로 이 책이 나오고 '특별출연'이라며 이름도 나오거든요.


그리고 장애인인 척 사오리를 스토킹하던 스토커의 이야기가 나온 후, 사오리가 이 일을 계속하게 되는 계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자신이 첫날 만났던 손님들과 다시 만나는 이야기들이 나오죠. 이 이야기들을 다루는 후반부는 전반부가 가지고 있던 생생한 이야기들과는 좀 비교됩니다. 뒤쪽은 좀 지독할 정도로 감상적이거든요. 물론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법한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게 실제로 있는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전반부와 잘 어울리는 질감은 아니예요. 후반은 너무 감상적인데다가 긍정적이라 사안을 좀 가볍게 만드는 감도 있어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챙겨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디테일한 내용이 나오는 전반부가 좋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도식적이라고 하더라도 후반부도 나쁘지 않아요. 사오리가 지나치게 자신의 손님들과의 감정 교류에 공을 들이는것처럼 보이긴 해도, 앞부분의 인터뷰를 들은 사람이라면 그정도는 납득할 수 있을듯 싶네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는 호킹 아오야마의 대사인듯 합니다. 그는 자신이 선천적 장애임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친지들에게서 축복받으며 태어나 성장했다고 합니다. 임신중에 장애가 발견되어서 낙태할것이냐는 종용을 받았음에도 되려 의사에게 화를 내며 출산했다고 하네요. 그 이야기 뒤에 '이렇게 축복받으며 성장한 나와, 돈때문에 몸을 파는 너 중에 누가 더 불행한 인생일까?' 라는 질문을 합니다. 물론 이때의 뉘앙스는 이런 업소녀들에 대한 경멸조의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그냥 '불행이라는 개념을 함부로 규정할 수 있어?'라고 묻는것에 가까웠죠. 영화의 자세도 이와 마찬가지 인듯 싶습니다.



배를 엮다

The Great Passage 
10
감독
이시이 유야
출연
마츠다 류헤이, 미야자키 아오이, 오다기리 조, 쿠로키 하루, 와타나베 미사코
정보
드라마, 코미디 | 일본 | 133 분 | -

이 시간에 보는 영화는 세편중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배를 엮다>가 가장 관객이 많이 몰려있길래 선택하게 됐습니다. 다행히 한자리가 남아있더라고요.


아마 마츠다 류헤이, 미야자키 아오이, 오다기리 조의 3인방 때문에 몰리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미우라 시온의 소설인 <배를 엮다>가 원작이고 국내에서 잘 나간 모양이더군요. 아마도 원작때문에도 많은 사람들이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는듯 합니다. 그렇다면 원작도 꽤 좋은 작품을거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제가 올해 부천에서 본 영화중 단연 최고입니다. 특별히 흠잡을 곳이 없어요.


영화의 배경은 출판사입니다. 이 출판사의 사전 편집부서에서 '대도해'라는 새 사전을 낼 예정인듯 합니다. 문제는 대도해를 기획한 부장이 집안 문제로 퇴사하기로 결정합니다. 편집부에는 마사시라는 청년이 있긴 하지만 천성이 자유분방하고 놀기를 좋아해서 사진 편집을 완전히 일임하긴 힘듭니다. 그래서 영업부에서 겉돌고 있는 마지메라는 청년을 스카웃합니다. 이 마지메라는 인물은 이름(마지메-眞面目는 일본어로 '성실하다'라는 의미입니다.)대로 성실하기 그지없고 책을 아주 좋아합니다. 문제는 대인관계가 서툴고, 그것도 모자라 거의 관심이 없어요.


영화는 크게 2부구성입니다. 마지메의 스카웃과 사전 편집부에 적응해가는 것이 전반부, 그리고 12년 뒤에 사전을 완성하는 것이 후반부죠. 전반부는 마지메라는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는게 좋습니다. 지나치게 성실하지만 이상할정도로 대인관계가 서투른 마지메의 캐릭터를 통해서 수많은 코미디들을 만들고 있죠. 이 파트는 아주 웃깁니다. 웃음이 튀어나오는 빈도로 치자면 <변태 가면>과 거의 동급이었어요. 하지만 핵심적으로 다른 것은, 이 코미디들은 모두 마지메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어디에 있는지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거죠. 마지메의 황당한 행동들이 웃기긴 하지만 그의 진지하면서 올곧은 성품은 굉장히 호감이 갑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하고싶지 않은 일을 하느라 잃고 있었던 것들을 되찾아가고, 그래서 '사전을 완성하기 위해' 대인관계마저 극복하려 하는 모습도 보여주고요. 이 파트가 겨우 한시간 남짓하지만 그 안에는 코미디와 드라마, 그리고 개인의 성장까지 꼼꼼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후반부는 그런 전반부에 비해서 웃음기는 적습니다. 물론 아예 없는건 아닙니다. 신입사원 키시베가 사전 편집부에 들어오면서 생기는 트러블같은 것들이 있죠. 소소하게 재미있지만, 1부처럼 빵빵 터질정도는 아닙니다. 저는 이 2부의 도입구성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12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뛰어서 사전 편집부가 어떤식으로 변화했는지 알 수 없는 관객들에게 쉽게 전달해 주거든요. 마지메가 이끄는 사전 편집부가 어떤 모양인지, 그리고 12년동안 성장한 마지메가 어떤 인물인지 키시베를 통해서 확인할 수도 있고 말이죠.


그리고 전/후반부 모두 굉장히 건실한 영화입니다. 주인공 마지메의 이름과 성격이 영화자체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듯 해요. 영화는 코미디를 하던 러브스토리를 하던, 결국 '대도해'를 완성해가는 꼼꼼한 과정을 그립니다. 그저 기록하는 것 만이 아닌, 현재의 시대와 동일하게 움직이는 사전을 만드는 일이고 이것은 긴 시간과 관심을 요하는 일이니까요. 영화의 길이가 130분이나 되는 이유도 그렇다고 봅니다. 이 영화는 사전을 만든다는 시간의 무게를 거의 그대로 담아주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특정하게 장르로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감정이 담깁니다. 이 영화는 시간이 갖는 특성을 꽤 잘 이해하고 있다고 보여요.


배우들의 연기도 캐릭터와 거의 잘 맞아떨어집니다. 이 영화는 좋은 배우들을 쓰고 있고요. 그만큼 그 효과를 잘 보고 있어요. 마지메를 연기한 마츠다 류헤이는 정말 영화의 진행과 맞춰서 성장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정작 미야자키 아오이와 오다기리 조는 그렇게 확 비중있는 역들은 아니예요. 하지만 마지메와 가장 큰 감정을 나누는 캐릭터들이고 충분히 의미있는 연기들을 보여줍니다.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 이 영화에서 편집장으로 나온 츠루미 신고씨는 <가면 라이더 포제>에서 악당의 보스로 나온적이 있습니다. 오다기리 조는 <가면 라이더 쿠우가>에서 주인공 가면라이더로 나왔었죠. 시리즈 팬 입장에서는 둘이 대화하는 장면만 봐도 꽤 재밌긴 하더라고요.


- 7월 26일 금요일


중학생 마루야마

Maruyama, the Middle Schooler 
8.3
감독
쿠도 칸쿠로
출연
쿠사나기 츠요시, 히라오카 타쿠마, 양익준, 카리야 유이코,
정보
코미디, 드라마 | 일본 | 119 분 | -

올해 피판 작품들중에 유난히 인기가 폭발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금요일 오후 2시에는 특별히 관람할 영화를 생각해두고 있지 않았는데 깜짝 상영으로 상영한다길래 얼른 보게 됐습니다.


쿠도 칸쿠로는 2년전에 <소년 메리켄사쿠>로 피판에 왔었죠. 그때 이 영화도 굉장히 인기가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아마 제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이 영화와 <소년 메리켄사쿠>의 분위기는 꽤 비슷할것 같습니다. 이 '비슷한 분위기'라는게.. 한마디로 이 영화는 꽤 정신없습니다. 몇몇 일본영화들에서 느낄수 있는 그런 비현실적인 에너지도 있고요. 캐릭터들도 여러명이 잔뜩 나오고, 인물들의 행동도 오버스럽습니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일본영화를 싫어하는 이유들을 모아서 만든 영화같은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나쁘진 않습니다. 이 영화는 일본영화들의 몇가지 독특한 특징을 묶어 놓긴 했지만 실수를 범하진 않았습니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다루는 감정마저 뜬금없지는 않은거죠. 제목대로 중학생(그것도 하필 2학년!)이 주인공이며 그에 걸맞는 감성들을 다뤄주고 있어요. 이 주인공은 성적인 호기심이 극단에 달해 어떤 (조금 변태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쾌락을 충족하려 하는데... 그 노력을 할때마다 밑도끝도 없는 망상에 빠져드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런데 집 주변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이 중학생 마루야마 카츠야는 자신의 이 망상벽으로 사건을 맘대로 풀이하고 있는거죠.


이 풀이법이라는게 정상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윗집에 홀아비 남자가 하나 이사왔는데 이 남자를 <아이를 동반한 무사>의 주인공이랑 동일시 하는겁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킬러라고요. 유모차에는 총기가 장착되어 있다거나... 영화는 결국 이 카츠야의 망상화 현실의 갭을 통해서 우스개를 만듭니다. 망상 자체도 꽤 우스꽝스러워서 재밌고요. 그 현실의 갭도 재미있죠. 다만 카츠야의 망상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이 아니긴 하지만요. (왕년에 기타리스트였던 할아버지. 왕년에 배우였던 한국인 청년)


하지만 작품에는 똑바른 테마가 있습니다. 그건 카츠야의 망상과도 이어져요. 왜냐면 '일상적인 것'과 '일상에서 비틀린 것'의 갭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카츠야는 그런 사건들을 통해서 자신이 너무 심심해서 싫어하던 일상이야 말로 진짜 자극적인 세계임을 발견합니다. 사실 이런 테마까지도 일본영화스럽긴 하죠.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여튼 꽤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주제를 확 땡겨주는 맛은 없어서 다 보고나면 조금 혼란스럽기는 해요. 하지만 코미디로써, 캐릭터 영화로써 꽤 유능합니다. 전체적으로 기능적인 부분들도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고요. 카츠야의 오버스러운 망상들도 감독 특유의 색체가 묻어서인지 볼거리가 되고 말이죠.



뭐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그냥 코미디가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제목만 딱 봐도 코미디 같잖아요.


주인공 던컨은 사방에서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대장에 낭종같은게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곧 제거하기로 해놨죠. 그런데 사실 이 스트레스 라는게... 어머니는 왠 젊은 인도남자랑 결혼한데다가 아이가 안생긴다고 맘대로 성 클리닉을 신청해놨고요. 어머니의 남친인 인도남자는 나이도 적으면서 자신을 아빠라 부르라 하질 않나, 성 클리닉 의사는 자꾸 성적인 부분으로 짜증나게 굽니다. 아이는 갖기 싫은데 아내는 자꾸 친구가 아이를 갖은걸 부럽다고 하질 않나요. 직장도 난리인데, 직장상사는 난데없이 자신을 인사과로 넘겨놓고 정리해고를 시킵니다. 한술 더 떠서 이 상사가 정말 개념없는 인간이라 자꾸 장난질이죠. 사무실을 화장실로 지정해놓질 않나...


던컨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심각한 변의를 느낍니다. 그래서 이 모든 스트레스를 한방에 받은날 배변을 하다가 기절합니다. 그런데 엉덩이에서 뭔가가 나와서... 짜증나게 하던 직장동료를 죽입니다. 그리고 되돌아오죠. 네, 엉덩이 안으로요... 


뭐 결국은 이 엉덩이에서 나오는 괴물의 이야기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 단테의 <그렘린>이후에 한동안 유행했던 소악마형 크리쳐 영화의 최신계보예요. 한 50cm 정도 될법한 괴물이 나와서 사람을 죽이는 그런 이야기죠. 그리고 대개 이런 장르의 크리쳐들은 얼핏보면 귀엽고 얼핏보면 좀 무섭기도 하고, 톤도 좀 높은 톤이라 웃기기도 하죠. 이 영화는 이런 구조를 특별히 거부하지 않고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화가 꽤 고전적이예요. 요새영화라고 하긴 좀 묘한 구석이 있죠. 전체적으로 90년대 중반 영화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떨어지는건 아닙니다.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역시나 엉덩이와 관련된 화장실 유머고요. 꽤 찰진 코미디가 많아서 보는 내내 웃겨요. 게다가 괴물이 살인을 하는 영화긴 하지만 특별히 징그러운 장면도 없고요... 아 하나 있긴 하네요. 하지만 이건 남성들이 정신적인 충격을 좀 받을 정도지, 시각적으로는 별로 무시무시하진 않습니다. 이정도 되면 대충 눈치까시겠죠.


이 영화를 칭찬하고 싶은건 한동안 명맥이 끊겨서 비실비실 살아남던 장르를 거의 그대로 복원하고 있다는 겁니다. 음, 그보다는 조금 더 코미디로 복원하긴 했지만. 그래도 장르적 구성이나 크리쳐의 디자인 같은 부분들은 거의 그때 테이스트가 그대로 살아있어요. 심지어는 이 영화는 CG도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괴물 마일로는 인형으로 만든거예요. 제 생각에는 마일로가 눈을 깜빡일때 정도만 CG를 쓴듯 합니다. 나머지는 거의 다 제작한 인형으로 보이고요. 아날로그 방식으로 만들어서 꼼꼼하고 면밀한 부분이 엿보이죠. 물론 그만큼 개그도 아날로그이긴 합니다만, 요새도 아날로그 개그는 잘 먹히잖아요.


참고로 주인공 던컨의 아내로 질리언 제이콥스가 나옵니다. 국내에는 미국 시트콤 <커뮤니티>의 브리타로 유명하죠.




아이 엠 어 고스트

I Am a Ghost 
8
감독
H.P. 멘도자
출연
안나 이시다, 지니 배로가, 릭 버크하트, 줄리엣 헬러, 다이애나 테네스
정보
드라마, 공포 | 미국 | 76 분 | -

음.. 공식 포스터가 조금 무섭네요.


이 영화는... 주인공이 자신이 유령인걸 알고 시작하는 유령 영화라고 적혀 있어서 봤습니다. 이것과 같은 설정의 영화를 올해 피판에서 하나 더 봤었는데 말이죠. 어째 비슷한 영화가 동시에 두개 있는건 재미있습니다.


여튼 주인공 에밀리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저택의 유령이예요. 이 유령은 매번 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그러다가 집에서 고용한 영매와 대화가 시작되고 자신이 죽었으며, 치료의 과정을 거쳐야 되는다는걸 알게되죠.


이 영화는 여러부분에서 독특합니다. 단순히 설정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예요. 그보다는 영화를 구성하는 스타일이죠. 일단, 도입부의 에밀리의 행동들이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만 보고 이 영화가 전위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에밀리의 행동들은 방의 전체가 다 보이도록 설치된 카메라를 고정시킨채로 에밀리의 행동만 노출해서 보여주거든요. 그리고 샷은 딱 방의 모든 부분이 수직 수평을 이루도록 만들어 놓고요. 기묘할 정도로 방의 큐빅형태가 적나라하게 보이고 에밀리는 자신의 일을 반복하죠. 그렇게 계속 여러개의 행동들을 보여주지만 각각의 행동들 사이에는 특별히 논리성을 주지 않았어요. 물론 몇가지들은 논리성이 존재하는데 (요리하는 에밀리 - 식사하다 칼을 드는 에밀리 - 손에 붕대를 감고 욕실에 있는 에밀리) 그 편집이 되는 기점은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그냥 시간 순서라고만 생각되죠. 덧붙여 초반에는 이렇게 순서를 지켰지만 점점 이 순서가 어그러져요. 앞도 뒤도 없이 마구 반복됩니다.


그러다가 영매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카메라는 그 정형성을 깨고 불쑥 에밀리를 향해 달려갑니다. 방의 수직/수평을 지키기 위해서 왜곡시켜놓은 카메라가 불쑥 움직이는 순간 사방의 모든것들이 왜곡되고... 그리고 에밀리의 불안감과 혼란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이 시점부터는 어찌되던 장르영화의 속성을 지닙니다. 앞에서 있었던 반복들이 에밀리가 유령으로써 기억하는 기억의 반복이라는 것도 이때부터 설정으로 불어주고요. 그리고 다시 반복이 돌아오는데 이때는 샷들이 고정성을 피합니다. 더 가까이 에밀리에게 다가가죠. 하지만 이때는 그런 행동들이 유령인 에밀리가 만들어낸 기억의 반복이라는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에밀리의 심리에 대한 대답이죠.


그리고 영화는 시작부터 내내 외각에 프레임이 쳐져 있습니다. 영화 자체가 하나의 프레임이라고 보면, 그 안에 또 하나의 프레임이 더 존재하는거죠. 이를 통해서 이 모든것이 마치 하나의 기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흐르는 방향은... 결국은 영매가 에밀리를 해방시키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에밀리의 과거와 죽음에 대한 진실등이 드러나죠. 카탈로그에는 <디아더스>를 능가하는 반전이니 적어 놨지만... 그렇게 반전요소로 쓰지도 않고, 다른 영화처럼 충격요법으로 굴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테크닉적으로 반전거리를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진실들은 꽤 강력하고 매혹적이긴 해요.


제가 올해 피판에서 본 영화중 가장 무섭게 본 영화로 이 영화를 꼽을 만 합니다. 주인공이 유령이라고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조성하는 장면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어떤장면들은 반복만을 이용해서 소름돋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에밀리의 진실이 나오는 시점에서 에밀리가 유령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유령임에도 불구하고 더욱 더 끔찍한 존재와 만나게 되거든요.


다만 이 영화도 엔딩에 조금 불만이 있습니다. 역시나 설정적으로는 틀린 엔딩은 아니예요. 다만 너무 설정만을 생각해서 안이하게 구는 구석이 있어보입니다. 확실한 완결을 원하지는 않지만 아무것도 해소하지 않는 것은 방치에 가깝죠. 저는 이 엔딩만 더 깨끗하게 손봤다면 만점을 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 7월 27일 토요일



배드 씨드

Bad S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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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사피 네부
출연
에밀 베를링, 샤를르 베를링, 사라 스턴, 케빈 아자이스, 미레이유 뻬리에
정보
드라마 | 룩셈부르크, 벨기에, 프랑스 | 95 분 | -

이 영화 역시 카탈로그의 시놉시스를 보고 선택했습니다.


카탈로그에는 이런식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모범생 루이스와 문제아 그렉은 친군데, 그렉이 여교사 하나를 협박하다가 퇴학당합니다. 그런데 이 그렉이란놈이 보복성으로 여교사를 납치하고 루이스는 그렉이 친구라고 또 거들어주죠. 그리고 카탈로그에는 그렉이 여교사에게 '끔찍한 복수'를 감행하고 루이스의 '내면에서 무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는 식으로요.


위에서 강조해둔 부분이 제가 느끼는 괴리입니다. 물론 관점에 따라서 그렉의 복수는 끔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여기는 피판이고, 피판에서 말하는 '끔찍함'은 일반적인 관점과는 좀 다르죠. 정도에 대해서 말하는게 아닙니다. 그냥 방향성이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복수는 통상적인 방향에서의 '끔찍한 복수'예요... 그렇다고 해도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꽤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루이스의 내면에서 뭔가 끓어오르는건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루이스의 내면은 이 영화에서 그렇게 직설적으로 표현되지 않아요. 하지만 최소한, 사건을 같이 처리하면서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이 나온다거나 그런건 없습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 영화는 경찰청 사람들의 한 에피소드 정도입니다. 실제 있을법한 사건이 있고요. 범인의 배경을 소개하고요. 범인이 그런 일을 벌이게 된 정황을 장황하게 설명해주는 거죠. 물론 루이스의 내면은 그렇게 직설적으로 표현되지 않습니다만, 루이스라는 인물이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가 자체는 친절하게 설명되어요. 아마 영화를 보고 나면 대개 예측이 가능할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재연 드라마 이상으로 나아가는 어떤 선택도 하지 않습니다. 엔딩은 그야말로 교훈적이기까지 하거든요. 물론 영화가 다루는 테마가 꽤 보편적인 문제들이고요. 특히 한국 사람들은 쉽게 공감할만한 사안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가지는 매력이 상승하진 않지요. 보면 교훈과 경각을 얻지만 너무 흔한거라서 일시적이기 까지 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지독하길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금 더 극에대한 고민을 하는쪽이 좋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 머신

The Ma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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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카라독 W. 제임스
출연
토비 스티븐스, 케이티 로츠, 데니스 로슨, 샘 하젤딘, 리 니콜라스 해리스
정보
SF, 스릴러 | 영국 | 100 분 | -

올해 피판에서 본 영화중 가장 클래식한 SF영화입니다. 소재도 마음에 들어서 고른 영화죠.


여튼 냉전이 다시 온 모양입니다. 정부는 더욱 강력한 무기를 원하고, 기술자인 주인공 맥카시는 정부의 도움으로 최신예의 AI를 만들고 있습니다. 목적은 전투중에 뇌를 포함한 신체기관을 잃은 사람들을 부활시키기 위해서죠. 의족이나 의수라면 그것을 제어하기 위한 시스템으로써, 뇌의 일부를 잃었다면 기억과 판단을 되살리기 위해서요.  사실 맥카시가 AI를 연구하는 이유는 지적장애인 딸을 위해서입니다. 최신예의 AI를 완성하고 나면 딸의 정신을 스캔해서 지적인 능력을 부활시키고 싶은거죠. 여튼 그러던 와중에 에이바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 엔지니어를 스카웃합니다. 그녀는 AI와 대화를 함으로써 AI의 능력을 극대화시킨 샘플을 완성했거든요. 하지만 에이바는 이 기관의 진실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버리는 바람에 살해되고요. 맥카시는 그 사이에 에이바의 뇌와 표정등을 스캔해놓은 데이타로 안드로이드 '더 머신'을 만듭니다.


카탈로그에는 무슨 <터미네이터> 이후 어쩌구.. 라고 적혀 있습니다만 터미네이터와는 질감이 다릅니다. 이 영화는 로봇에 관한 영화라기 보다는 AI에 관한 영화거든요. AI가 논리성 이외의 감정등을 습득하면서 생기는 이야기고요. 그리고 정확한 지점을 짚자면,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과 같은 개념의 영화입니다. 그러니까 '다음 세대'의 탄생에 대해 그리고 있는 것 뿐이죠. 다만 아서 클라크가 기술과 문화와 사회의 발달을 통한... 같은 느낌으로 말했다면 이 영화는 전적으로 AI의 탄생으로써 해법을 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맛으로 보면 꽤 괜찮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큰 단점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이런류의 장르에 안착하고 있는 탓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몇 안나오는 인간들 중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인간이 너무 개자식입니다. 결국 더 머신과 AI 군단이 난리를 피우게 되는 것도 다 이 인간이 너무 개자식처럼 굴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머신은 너무 인간적이죠. 이런 대비는 이제는 솔직히 지겨울때도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애니 매트릭스>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두번째 르네상스>도 이런 연유에서 혹평을 받은적이 있죠. 로봇은 다 착하고 인간은 개자식으로 만들어서 편협하게 응원하게 만든다고요.


저는 이런 단순한 구도보다는 AI들의 진화적 동기를 더욱 강화시켜서 갈등을 구축했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영화의 엔딩을 봐도 진짜 중요한건 그거거든요. 인간이 너무 쓰레기 같아서 다음 세대가 필요한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영화가 보여주는 시각적인 장면들은 좋습니다. 전체적으로 실내를 배경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명을 꽤 기막히게 이용해요. 그리고 활달하고 지적인 에이바와 순수하지만 아직 기계같으며 여전사의 이미지를 지닌 더 머신을 동시에 연기한 케이티 로츠의 호연도 볼거리입니다. 초반에 슈트를 입은 에이바와 후반에 대완근이 보이는 더 머신이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들거든요.



피판의 마지막 영화입니다. 이것 역시 시놉시를 보고 기대했던 영화지요. 이때보다는 더 먼저 보고싶었으나 다른 영화들을 위해서 이 시간까지 피한 영화기도 합니다. 다만 제가 본 타임이 GV가 예정되어 있었던 모양인데 캔슬된 모양입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제설차 드라이버인 사이먼은 한밤중에 퀘벡에서 제설차를 타다가 한 남자를 칩니다. 사이먼은 그의 시체를 급하게 눈속에 쳐박아두고 떠나죠. 충격때문인지 정신없게 제설차를 몰아서 결국 제설차는 나무와 충돌해 망가집니다. 사이먼은 눈이 가득한 퀘벡의 산중에서 홀로 생존해나가며 사고가 있기 직전의 과거를 회상합니다.


스포일러거리도 안되니 그냥 털자면, 일단 사이먼이 친 남자는 사이먼과 아는 사이입니다. 그리고 사이먼의 집에서 몇일 묵었던 모양입니다. 영화 거의 초반에 나와요. 그러니까 이 영화는 사이먼이 아는 사람을 치게 되는 과정과, 그 죄의식으로 인해 설산에서 움직이지 않고 살아가는 그 사이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미묘하게 서바이벌 냄새가 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드한 서바이벌 같은건 아닙니다. 사이먼은 모종의 이유로 사람들과 접촉하는것 자체를 피하고 있을 뿐이죠. 그냥 제설차 안에서 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가까운 곳에 마을이 있어서 장 정도는 봐오는 정도고요. 그러니 시체가 발각날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남자의 심리드라마 같은건 아닙니다. 사이먼의 당장의 행동들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사실 이 사람이 이렇게 까지 산속에서 생활할 이유는 딱히 없어요. 그리고 그런 이유들을 사이먼의 단기적인 과거에서 천천히 설명해준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다고 이유를 그렇게 직설적으로 확 알려주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결국 그 사이의 연관성은 관객들이 직접 찾아야 하는 몫이예요.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확실히 축을 잡아주는 감정은 있습니다. 대체로는 죄책감정도로 상정할 수 있는 어떤것들이요.


어떠한 서스펜스적인 장면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솔직히 장르영화 보다는 드라마 영화로 보는것이 더 알맞습니다. 그것도 주인공 개인의 심리에 많이 기대는 드라마죠. 작은 영화들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니 익숙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지루한 편은 아닙니다. 종종 재밌는 유머도 있고요. 하지만 영화 전체를 파악하기에는 좀 맥이 잘 짚히는 편은 아닌듯 합니다.


이 영화도 엔딩이 좀 모호합니다. 다만 다른 영화들과 다르게 이 영화는 이 선택도 일종의 베스트가 될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엔딩의 직전까지 사이먼의 감정을 추스린 사람들에게만 내리는 상 같기도 해요. 만약 영화가 다루는 방식을 쫓아오지 못했다면 엔딩도 그렇게 확 납득가지 않을겁니다. 그만큼 극적이라기 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방향이죠. 물론 전체의 감정을 이해했다고 이 엔딩을 무조건 좋아할것 같지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