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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회의

<감시자들>



감시자들 (2013)

Cold Eyes 
8.1
감독
조의석, 김병서
출연
설경구, 정우성, 한효주, 진경, 준호
정보
범죄, 액션 | 한국 | 119 분 | 2013-07-03


* 스포일러 대량 함유 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채로 영화를 감상하게 되는 -또한 영화가 끝나도 모르는-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 영화는 홍콩의 유내해 감독이 데뷔작으로 만든 영화 <천공의 눈>의 리메이크입니다. 이 유내해 감독은 현 홍콩에서 저예산 오락영화들을 재밌게 많이 뽑아내고 있는 밀키웨이 이미지 소속으로 <흑사회>의 감독인 두기봉 감독과 자주 작업을 했었죠. (그리고 <흑사회>의 시나리오도 이 유내해가 참여했습니다.)


밀키웨이 이미지의 영화들은 대개 형사 혹은 그 형사를 기준으로 하는 일군의 형사들이 사회의 찌꺼기들로 구성된 범죄조직과 한바탕 추격전을 한다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물론 이례가 많이 있긴 합니다만, 대체로 그런 느낌의 영화를 많이 만들죠. <천공의 눈>도 실은 이런 기조의 영화에서 크게 벗어난 영화가 아닙니다. 밀키웨이에서 자주 주연을 맡았던 임달화(<감시자들>의 마지막 부분에 까메오로 출연합니다.)가 형사반장으로 등장하는 범죄영화죠. 


<감시자들>은 홍보나 언론 공개, 그리고 영화 내부에서까지 원작이 있다는 문구를 보여주질 않습니다. (엔딩 크레딧에서는 나오는 모양입니다만.) 그게 왜 그런지 썩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그에 관련된 이야기는 기사 ( ‘감시자들’ 잘 만들어 놓고 왜 원작을 숨겼나 )가 따로 있으니 이 쪽을 참고하셔도 될 듯 싶습니다.


여튼 이 <감시자들>은 원작이 되는 <천공의 눈>과 여러모로 다른 영화가 되었습니다만, 크게 보자면 두가지가 다릅니다. 하나는 적이 되는 범죄 조직의 특징입니다. <천공의 눈>의 범죄조직은 진중산이라는 두뇌형 범죄자와 그를 따르는 범죄자 무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개의 목적은 보석털이 입니다. 진중산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캐릭터는 홍콩이라는 사회에 속한 인물이며, 홍콩 영화에 대개 나오는 '직업 범죄자'입니다. (영화 <도둑들>에 나온 주인공들이 바로 이 '직업 범죄자'입니다.) 하지만 이 인물은 <감시자들>에서는 '제임스'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로 변모되어 있습니다. 이 제임스는 진중산과는 다르게 좀 더 세련되고 무국적의 이미지를 풍기며 정체모를 배후에 의해서 움직이는 듯이 묘사됩니다. 범죄도 자발적으로 벌이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들어오는 의뢰를 받고, 범죄의 내용도 국가적 수사를 곤란하게 만들 정도로 큰 규모를 가집니다.


사실 <천공의 눈>이 갖는 범죄조직의 형태는 밀키웨이에서 만드는 - 그리고 과거 홍콩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한 범죄조직의 클리셰에 가깝습니다.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에 나오기 시작한 이 범죄 전문가 집단은 홍콩에서 실존할 수 있는 혼돈의 집약입니다. 반환 이전의 불안감과 반환 이후의 패배감이 섞여서 나오게 된 홍콩 고유의 특징이며 빈부의 격차가 극심한 사회와 상류사회에 대한 모델들(그러니까 관광객들)이 판을 치는 홍콩에서 나올 수 있는 독특한 형태죠. 이런 영화에서 등장하는 범죄자들은 사회 도태계층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깁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모습을 그대로 한국에 옮겨오긴 좀 껄끄럽습니다. 물론 한국을 배경으로 이런 범죄조직을 만드는 것이 썩 불가능 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사회의 보편적인 납득은 힘들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그보다는 차라리 제임스같은 좀 오버스러운 무국적 범죄자로 만드는 게 영화를 더 '그럴싸'하게 만드는 맛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기왕 양쪽 다 비현실 적일거면 조금 더 멋스러운 걸 선택한다는 거죠. 


<천공의 눈>과 다른 두번째 차이점은 바로 극 전체의 구성입니다. 원작은 진짜 형사 vs 범죄자 영화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이 치고 들어올 여지가 별로 없죠. 물론 그 안에는 어떠한 사회적인 레이어나 홍콩식 마초이즘등이 펼쳐집니다만, 극의 구성면에서 보자면 큰 한줄기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감시자들>은 형사들이 범죄자를 추적한다는 한개의 레이어외에 또다른 극을 깔아놓습니다. 바로 하윤주(한효주 분)가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오프닝에서 부터 이 두가지를 함께 움직입니다. 처음에는 연계된 하나의 사건인 것처럼 꾸미고 있는데, (특히 '물먹는 하마'가 양자에 모두 등장하는 것으로 속입니다.) 실제로는 나눠진 두개의 사건이죠. 하나는 제임스 일당이 은행을 터는 신속하고 정확한 사건이고 또 하나는 하윤주가 황반장(설경구 분)에게 테스트를 받는 사건입니다. 영화의 오프닝을 구성하는 방법에서 읽을 수 있듯, 이 영화는 이 큰 두개의 줄기를 한꺼번에 가져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전자인 '범죄자와 형사의 대결'과 다르게 후자 '신참형사의 적응기'는 나중에 추가된 줄기죠. 리메이크를 직관적으로 그대로 만들기 보다는 또다른 레이어를, 그것도 주된 줄기로 추가한 겁니다. 그렇다면 이 <감시자들>에서 상대적으로 이 줄기를 더 크게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저는 <감시자들>을 사회초년생이 사회에 적응해가는 이야기로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 내부에서도 그 단초들이 심심찮에 발견되지요. 일단은 이 영화가 형사집단인 '감시반'을 다루는 방법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전에도 한국영화에서 형사들을 '회사원'으로 보이게 하려는 시도는 꽤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부당거래>에서 강력반에 싸움이 나자 최철기(황정민 분)가 "야! 이게 회사냐? 이게 회사야?" 라고 소리칩니다. 경찰서를 '회사'라고 부르며 회사에서 싸움이나 하는 한심한 놈들로 부르는 장면인데, 이 묘사 자체가 형사들이 자신의 직장을 '회사'라고 지칭하는 특징이 있는 장면입니다. 그 외에도 경찰은 아니지만 <베를린>도 국정원을 직장처럼 묘사한 구석도 있고 말이지요. 하지만 <감시자들>은 그보다 훨씬 차별적인 방법을 씁니다. 하윤주가 처음 출근했을때를 보면 우리가 보통 상상할 수 있는 경찰서가 아니라 강남에나 있을 법한 커다란 회사로 들어가죠. 여기서 하윤주는 적응을 못하고 멍하니 주변을 바라만 봅니다. 관객도 마찬가지였겠죠. 경찰인 줄 알았는데 회사로 출근 한 겁니다. 하윤주도 놀라고 관객도 놀랍니다. 또한 경찰 제복을 가져와서 락커에 집어넣자 선배인 다람쥐(준호 분)이 '행사 있을때나 입는 걸 왜 가져왔냐'고 비아냥 댑니다. 


이 영화에서 하윤주와 황반장이 일하게 되는 감시반은 우리가 기존에 봐오던 경찰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르며, 상기에 표기한 단초들로 명확하게 선을 긋습니다. 이것은 크게 두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표면적인 이유로, 이 영화에서 다루는 형사들의 모습은 기존 한국영화에서 다루던 형사들과는 질적으로 차이를 두려고 합니다. 약간 막무가내고 지능보다는 직관을 믿고 폭력적인, <공공의 적>의 강철중 같은 모습 말이죠. 강철중과는 다르게 이들은 지능적이고 명확한 자료와 논리를 원하며 저돌적이기 보다는 팀웍을 더 강조하니까요. 그리고 심층적인 이유로는 주인공들이 다니게 되는 감시반이 '회사'라는 겁니다. 강남 사옥에 출근하는 하윤주의 모습이나 경찰 제복도 필요가 없다는 다람쥐의 대사로 딱 정리하죠. 게다가 직장내에서는 목에 사원카드까지 걸고 돌아다니니 말입니다. 여기에 대학을 졸업해서 들어온 하윤주는 진짜 막 입사한 사회초년생이나 다름없죠.


그래서 극중에서 크게 보여주는 충돌도 이런 부분을 극대화합니다. 작전중 작전지 근처에서 생긴 트러블을 하윤주가 독단적으로 처리하려다가 황반장과 충돌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단순화 하자면 하윤주는 '내가 하는게 윤리적으로 옳다.'고 황반장은 '우리 직업에서는 아니다'죠. 사회초년생들이 회사에 들어가고, 그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배우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여러가지야 있겠지만 결국에는 직업의식, 직업윤리, 직업적 방법론입니다. 아무리 능력과 재능을 갖추고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회사에서 지향하는 직업적 방향과 충돌하면 트러블이 생깁니다. 이 장면에서 하윤주는 자신의 직업이 가지고 있는 '직업 윤리'와 자신의 '윤리 의식'이 충돌합니다. 그리고 직장상사와 이 부분에서 충돌하죠. 모든 사회초년생들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충돌하진 않겠지만, 직업적 윤리와 크게 벗어날때 생기는 심적인 갭을 돌아본다면 꽤 납득 할만한 모습이지 않을까합니다.


이 윤리의식이 직업적으로 변모한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다람쥐가 제임스에게 공격당해 죽는 장면입니다. 회사의 상사들과 당사자인 다람쥐는 제임스를 쫓아가라고 채근하지만 결국 하윤주는 쫓지 못하죠. 하지만 나중에 하윤주가 황반장에게 하는 고백은 초기와는 좀 다릅니다. 하윤주는 '죽어가는 다람쥐를 가만 둘 수 없었어요.'가 아니라 '무서웠어요'라고 말하죠. 자신이 주장했던 윤리관이 직업적 특성과 마주했을때 생기는 진짜 마찰이예요. 직장 상사와 언변을 높이면서까지 주장했던 스스로의 정의감인데 말입니다. 직접 자신이 직장의 필드에서 마주하자 진짜 느끼게 되는 것은 썩 다른 것인거죠.


그래서 이 영화의 해법이 하윤주의 특수한 기억능력에 의존하지 않는데 가치가 있습니다. 상기에 말했던 대로, 재능은 그 사회에서 원하는 직업 의식, 직업 윤리, 직업적 방법론과 융화해야 진짜 효과를 지닙니다. 이 영화에서 하윤주가 가진 기억능력은 일종의 재능이예요. 하지만 그 재능조차도 자신이 보려고 한 것에 집착되어서 전부 보지 못했음이 초장부터 드러나죠. 그것도 직장 선배에 의해서요. 이 시점에서 하윤주는 재능은 있으나 직업적 방법론이 부족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능력은 계속 쓰이지 않다가, 나중에 지하철에서 제임스와 지나쳐갔음을 기억하면서 가장 큰 증거를 만들어 냅니다. 이때 하윤주는 황반장에서 배운 방법, 즉 직업적 방법론을 최대한 이용했기 때문에 해결이 가능했었던 것이죠. 


만약 이것이 일반적인 수사극이고 형사가 범죄자를 잡는데 올인하는 작품이었다면 하윤주의 이 능력도 꽤 유용하게 쓰였을 겁니다. 그야말로 도구적인 방법이죠. 하지만 그렇게 편하게 쓰이지 않고 하윤주가 직장에 적응한 후에야 가장 효과적인 개화를 하는 형식으로 밀어붙였다는 것은, 그만큼 이 영화가 하윤주의 직업적 성장에 더 신경쓰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이런 모습들은 극이 진행되면서 점점 더 태도와 말투에 여유가 붙는 하윤주의 모습으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물론 이렇다보니 실제로 표면적으로 다뤄지는 이야기인 '범죄자와의 지능적 대결'은 약간 미진한 감이 있습니다. 악당인 제임스도 너무 기능적으로만 다뤄지고요. 제임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같은 것들도 크게 다뤄지지 않으니 작업도 실패하고 윗사람도 처단한 제임스의 입장이 굉장히 불분명합니다. 후반에 들어서 감시반에게 추격당하면서 완강히 저항하는 제임스는 조금 미묘하죠. 제임스가 경찰에게 상해를 입히면서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큰 이유가 있다면 이때의 긴장도 조금 더 당겨올 수 있었을거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영화에서 다루려는 것은 큰 건수를 다루는 회사에서 점점 성장해가는 하윤주의 모습이었으니, 이쪽에서 덜어낸 것도 납득은 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락적인 쾌감이 살짝 덜어내진 것은 사실이니 아쉬운 감이 있지요. 결국 제임스도 하윤주와 황반장의 최종적 팀워크를 위해 기능적으로 사용된 것에 지나지 않거든요.


그리고 몇가지 대구식의 장면들에도 아쉬움이 묻습니다. 일단은 후반에 제임스와 테이블에서 대면하게 된 하윤주입니다. 이 장면은 오프닝에 황반장과 대면하게 된 장면과 그대로 대구됩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하윤주의 대응은 그대로 그녀의 성장으로 묘사되어야 옳지요. 물론 오프닝에 나온 장면에 비하면 꽤 크게 성장한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만 결국 이 장면에서 긴장을 와해시킨건 하윤주 본인이 아니라 황반장이라는 점, 그리고 하윤주 본인이 가져야 되는 긴장이 많이 미진한 점이 아쉽습니다. 이 씬은 접시위의 칼을 계속 만지는 제임스의 손과 교차편집되며 긴장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만, 실질적으로는 칼을 만지기만 할 뿐인 것이 아쉽죠. 하윤주의 약간 아쉬운 삑사리와 만회, 그에 맞는 제임스의 액션등을 조금 더 가미했으면 <바스터즈>의 생크림 씬 같은 꽤 그럴써한 장면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물론 이 클로즈업은 나중에 칼이 사라진 클로즈업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쓰이므로 꽤 어느정도 목적달성은 하고 있죠.


다음은 제임스의 공격에 의해 쓰러진 황반장. 그리고 황반장을 두고 제임스를 추격하는 하윤주의 선택입니다. 이 장면또한 다람쥐의 죽음과 곧장 대구되는 씬이죠. 그리고 다람쥐의 죽음은 그 전에 황반장에게 했던 말 '사람이 죽더라도 대기하라면 대기해야 합니까?'와도 직접연결되는 씬입니다. 그러니까 3단계로 하윤주의 갈등을 끌어내는 장면이죠. 그럼에도 황반장을 두고 제임스를 쫓게되는 경위가 너무 쉽사리 연결됩니다. 물론 전체적으로 가속도를 올리던 부분이고, 이 장면에서 오래 끌면 맛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럼에도 약간의 조정을 통해서 하윤주가 '너무 무서웠던'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한다는 느낌을 더 강조해줬으면 좋았을 법 했습니다. 그래야 인물의 성장에도 더 의미있는 방점이 찍히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이 영화는 정말 좋은 미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자세입니다. 지금까지 영화들은 여성을 척박한 환경에 집어넣을때 지나치게 구는 경향이 있었거든요. 여성에게 어떠한 과거의 내상을 입혀서 지금 움직이게 만들던가, 아니면 그냥 어떻게던 여전사 코스프레를 시키려고 했으니까요. 남녀 형사가 어떠한 사건을 추적한다는 기조로 비교할 수 있는 <하울링>에서도 이나영은 이혼이라는 내상을 가지고 있었죠. 지금까지는 강한 직업을 가진 여성은 어떠한 작동원리가 없이는 움직이지 못했다고 봐도 될 정도로요.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하윤주를 다루는 방식은 철저하게 본인과 본인이 접하는 사회로만 한정짓고 있지요. 과거의 내상도 없고, 여성이라 생기는 페널티도 쥐어주지 않고, 극단적으로 여전사를 만들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선에서요. 오직 사회에 막 나와서 어리버리하다가 사회에 적응하는 보편적인 작동원리로만 움직여주고 있습니다. 이건 충분한 미덕이라고 봐도 좋아요.


그렇다면 왜 사회초년생의 적응기인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을 여성으로 설정했을까요. 그 이유는 마지막 장면에서 찾는게 좋아보입니다. 마지막에 또 다른 사건을 맡게 된 하윤주는 그동안 불려오던 '꽃돼지'에서 '꽃사슴'으로 코드네임이 변모합니다. 그리고 (작전의상이지만) 화장도 하고, 머리도 하고, 옷도 신경썼습니다. 이 변화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와 비교해봅시다. 하윤주는 <감시자들>이라는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사회에 적응했습니다. 그리고 여성은 남성에 비해 사회의 적응도를 훨씬 외면화해서 보여줄 수 있죠. 여성은 성장할수록 정말 아름다워집니다. 그래서 꽃돼지가 꽃사슴이 되기도 하죠. 주인공이 남자였으면 마지막에 이렇게 그럴싸한 한방은 못 날렸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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