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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스컬맨> - 권력이 풀어놓은 야수





스컬맨 : 사람의 정신을 썩게 만드는 TV... 그 방송국의 사장에게 들러붙어있는 인기 여배우! 은행장의 불량한 딸! 독직이라느니 세금낭비라느니 멋대로 하다가 해외 관광 여행을 다녀올때는 복대 안쪽에 밀수품을 가득 집어넣어 오는 국회의원들! 권총을 불법소지하고 있는 총리의 보디 가드! 대량 살인을 위한 전차용 무기탄약을 만드는 회사! 그것을 실어나르는 화물열차!

 이런 일들에 손을 들이고 있는 놈들에게 조금도 죄가 없다고 말하는 거냐!? 응!?

코게츠 : 네놈은.... 엄청난 바보놈이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자라면 죽인다고 말한다면... 네놈은 이 나라의 모든 인간을 죽이게 되어버릴거다!!

스컬맨 : 후... 후후후후후  좋지. 모두 죽여버릴거다! 시간은 잔뜩 있어.. 일단은 지금 여기서...

-<스컬맨> 중 91p에서 발췌



내가 이시노모리 쇼타로라는 작가에게 반하게 된 계기는 <인조인간 키카이더>였다. <인조인간 키카이더>는 동화 <피노키오>를 베이스로 각색된 SF 히어로 만화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히어로가 적을 무찌르는 구도에 한정하기 보다는 원작이 되는 <피노키오>의 테마를 바탕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에 대해서 논하는 철학적인 매무새가 가미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본게 2000년대 후반이었음에도 감히 당대의 다른 작품들이 범접하기 힘든 깊이와 세련미가 느껴졌다. 세간에는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대표작이 <가면 라이더>와 <사이보그 009>로 알려져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시노모리 월드의 냄새가 가장 깊이있게 묻어난 작품은 <인조인간 키카이더>라고 말하고 싶다.


이시노모리 만화의 가장 큭 특징 중 하나라면 그 어두운 세계관을 들 수 있다. 이시노모리의 세계에서는 많은 것들이 전복되어 있는데, 특히 정의와 악이라는 기초적인 도덕관념에서 그 전복이 시작된다. 그의 작품에서 영웅은 악당에 의해 탄생하고, 그 창조주에 대해 배신이라는 비윤리적 행위를 했을 때에야 비로소 영웅으로써의 자태를 갖게 된다. 게다가 그렇게 만들어진 영웅이 악의 실체에 도달할 수록 체제적인 전횡을 마주하게 된다. 그의 만화에서 대개 악은 체제의 안쪽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이보그 009>의 블랙 고스트, <가면라이더>의 비밀결사 쇼커등이 그런 전횡된 악의 대표적 예시가 된다. 그리하여 작품들은 초기에 악의 손에 의해 태어난 히어로의 개인적인 비극을 보여주지만, 이것은 결국 세계 전체에 대한 시각으로 확장되어간다.


<스컬맨>이 그의 작품 중에서도 유독 컬트적인 찬양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이 구조에 있다. 이 구조가 가장 밀도있게 담겨있는 작품이 바로 <스컬맨>이기 때문. 스컬맨은 약 100p 정도가 되는 중편인데, 다른 이시노모리의 대표작들이 최소 4~5권을 넘어간다는 것과 비교해보자면 심히 짧은 감이 있다. 하지만 그 짧은 내용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시노모리의 세계관이 압축적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에 충분히 부합하는 작품이 되었다 생각한다.


이 <스컬맨>에서는 주인공 스컬맨의 슬픔이나 고독등을 다루지 않는다. 이것이 독특한 이유는 이시노모리의 작품군에 있어서 영웅의 슬픔과 고독은 작품의 핵심적인 코드가 되기 때문이다. 이시노모리의 히어로들은 남들과는 다른 신체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남들을 위해 싸움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것에 의해 심각한 심리적 격리를 느끼기 때문이다. <스컬맨>에서 이것 배제되어 있다는 것은 이 작품에 한해서는 히어로 캐릭터가 가질 수 있는 동정론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스컬맨>의 스컬맨은 자신의 부모를 죽이고 자신까지 죽이려 하는 '어떠한 흑막'에 대한 복수심에 의해서만 행동한다. 물론 이런 복수심의 발현은 스컬맨 개인에게는 충분히 정당하게 시작하지만 점점 개인적인 감정이라는 틀을 벗어나 버린다. 그리고 결국에는, -작품의 후반에 치사토 코게츠라는 인물로 밝혀지는- 흑막과 관계되는 모든 자들을 복수의 대상으로 삼아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 선정은 철저하게 편집증적으로 변모해 '조금이라도 악한 행위를 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복수의 대상'이라고 선언해 버리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스컬맨>이 가지는 최대의 아이러니다. 스컬맨이 증오하는 이 인간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뒤에서 모든것을 조종하는 권력의 흑막이었다. 이것을 알아낸 스컬맨은 일본이라는 국가 내에서 도덕적으로 더러운 짓을 행하는 자들 모두에게 증오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즉 일본이라는 국가를 조금이라도 더럽히는 모든 자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일본을 조종하는 치사도 코게츠를 위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며, 스컬맨의 분노를 받아 마땅한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스컬맨은 상대적으로 무고한 사람 일 수 있는 많은 이들을 아무렇지 않게 사살하고도 떳떳하게 외칠 수 있는 것이다. '내 손에 죽은 모든 자들은 더러운 인간이었다.' 라고.


하지만 이 관점에는 한가지가 삭제되어 있다. 만약사토 코게츠가 정부를 전횡시키는 거대권력자가 아니었다면? 그래도 스컬맨은 편집증적인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다녔을까? 물론 이런 '만약에'는 일어나기 전까지는 상정할 수 없는 관점이다. 허나 작중의 스컬맨이 행하는 모든 광기어린 행동의 근간에는 '그래도 난 옳은일을 하고 있다'는 위장 정의의식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의 심리에는 '치사토 코게츠는 나의 부모를 죽였기에 악하다. → 그는 국가 권력을 뒤에서 조종하는 흑막이다. → 국가 권력의 치부를 드러내는 인간은 모두 코게츠를 이롭게 한다 → 그들은 죽어 마땅하다.'라는 기이한 구조의 패턴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악의 힘으로 태어난 영웅'은 이 작품에서는 '악의 힘으로 태어난 괴물'이 되어버렸다. 그가 사람을 이롭게 만드는 영웅이 되지 못한 채, 학살과 살육을 반복하게 된 이유는 치사토 코게츠가 거대한 권력을 지닌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이시노모리는 <스컬맨>에서 그가 기존에 보여주던 사회의 암흑을 훨씬 더 기괴하게 확장시키고 있다. 그전까지의 작품들이 사회의 음영이 슬픔과 고독을 끌어안은 영웅을 만들어 낸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이 작품에서는 사회의 그림자를 증오하는 파괴마만을 창조해 낸다는 회의적인 시선을 보여고 있을 뿐이다.


<가면 라이더>도 <사이보그 009>도 이시노모리에게 있어서는 환상이었다. <가면 라이더>의 적 집단인 비밀결사 쇼커, <사이보그 009>의 적 집단인 블랙 고스트는 모두 기분나쁜 탈을 뒤집어 쓰고 세상을 파괴한다고 선언하는 광인들의 집단이었다. 그리고 그런 연유로 그들이 탄생시킨 경계인들은 어렵지 않게 선의라는 선택을 고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컬맨>은 현실이다. <스컬맨>의 악인 치사토 코게츠는 스스로를 위장하지도 비합리적인 선언을 하지도 않는다. 가장 현실적인 방향으로 지배를 선택하고 도덕적 책임감도 잊은 채로 환락을 자행한다. 가면 라이더는 쇼커를 통해서 표면화된 악을 봤었다. 설령 후반에 쇼커가 일본 정부와 유착했다는 사실을 나타난다 하더라도 가면 라이더는 그간의 행보를 통해 자신의 관점을 굳힐 기반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컬맨은? 그가 처음부터 마주한 '악'은 체제 그 자체다. 스컬맨은 표면적인 '악'과 실존하는 '악'을 구분할 심리적 여유가 없다. 그렇기에 스컬맨은 미쳤으며, 그의 착오적인 정의는 수많은 나약한 인간들을 죽음으로 몰고가게 되었다.


이시노모리가 그린 <스컬맨>의 악은 우리가 속한 사회 자체다. 거대 권력, 유착, 대자본의 횡포들 말이다. 이시노모리는 이들에게 우악스러운 이름과 가면을 씌우지 않은 채 우리 앞에 드러내놓는다. 그리고 그들과 대적하는 스컬맨이라는 영웅을 배치시키지만, 그는 미쳤다. 그리고 미칠 수 밖에 없으며,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 과정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이겨낼 수 없는 사회의 어둠과 악,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낸 영웅마저 독자인 '우리들'을 옥죄어온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 둘중 어느쪽이 승리한다 해도 빛은 없다. 이 지독한 패배주의는 이시노모리가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다. 스컬맨을 탄생시키지 않으려면, 권력의 독주를 멈춰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 것은 너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