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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끄적끼적] 하루성찰 - 5 (ps. 저번 글 퍼즐 읽고 생각해주신다음 들어와주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그걸 몰라?>. 부제는 '생각만 해도 짜증나는 여자들의 말 있죠? 겪어보면 진짜 그 말 밖에 안나와요'.

 

 

ㅋㅋㅋㅋㅋㅋㅋ조금 코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글이 언제나 그렇듯 어두침침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알고보면 나는 꽤 긍정적인 사람이다.

내가 부정적으로 행동할 때는 주위 사람들에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 본성 때문에 그런 것인데 이건 고치려고 노력해봤자 소용이 없어서 관뒀다.

언젠가 자살 예방 전화에서 이런 내 본성이 싫다는 말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작년에.

유서를 수십 번도 더 쓰고 자해도 미친 듯이 한 중2병 시절을 겪고 애써 긍정적으로 살아봤지만 고통은 더욱 막심해지고 끝이 보이지 않아서 그냥 죽어야겠다, 생각하고 건 전화였다.

결론만 말하자면 대실패였다. 자살 예방 전화 센터 운영할 돈으로 우리 나라를 좀 더 살만하게 가꾸기나 했으면 좋겠다.

(일단 첫번째 문제는 지역번호를 눌러야 연결이 된다는 것이었다ㅋㅋㅋㅋㅋㅋ자살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누군가가 마지막으로 유언을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거는 전화였다면 그 사람이 좋다고 번호를 누를거 같은가? 내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알려줄바에 죽는게 낫다' 였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살 방지 전화를 거는 사람들은 정말 자기 자살을 막아달라, 내가 있는 곳으로 와줘라, 이런 마음으로 전화하는 게 아니다. 그런 마음으로 전화했다면 관심 종자고 정말 인생이 괴로워서 자살하려는 사람들은 진짜 간절한 마음으로 그냥 내가 오늘 죽는다는 것을 한 명쯤은 알고 있었으면 해서 전화하는거다. 슬퍼하고 명복을 빌라는 게 아니라 3초만이라도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근데 지역 번호를 누르라고? 미친 소리다. 단언컨대 이 지역번호가 수십명을 절벽으로 밀어버렸다.)

절벽에서 추락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가? 더 이상 내려갈 데는 없다고 생각했더니 이미 내려가고 있는 거다.

17살과 18살에 걸쳐서 겪은 일들을 털어놓았는데, 이해가 쉽도록 사생활을 조금만 털어놓겠다. 구질구질하게 늘어놓으면 지루하기만 할 뿐이니 웬만한 거 다 생략하고 3가지만.

 

1. 부모님이 번갈아 나를 짓밟다가 잠시 다정해서 바보같이 역시 가족밖에 없구나 생각하면 다음 날 내 싸대기를 때리는 아빠를 발견한다.

2. 전 남자친구. 사귀기 전 난 "내가 누구 애인지 모르겠어"라 했고 걘 자기는 그런 남자가 아니라고 어필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바람 피운 자기한테 화내는 내가 이상한 사람. 애들한테는 바람 피워서 헤어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함.

3. 이런 나를 위로해주던 친구가 있었다. 난 이 아이를 평생 갈 친구라고 생각했고, 의지했고, 잘해줬다. 하지만 결과는 연락두절에 가차없이 절교선언.

3번이 제일 쎘다. 그 시기동안 온갖 사람들에게 배신 당하고 뒤통수 맞았지만 얘 하나만 있으면 인생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얘도 결국 내가 싫어서 떠났으니까. 내게 대체 무슨 망할 문제가 있는걸까. 이유를 생각해봤지만 전혀 모르겠다. 인생 살아봤자 힘든 일 겪는 것만 늘어나는 게 아닐까 싶다.

난 이렇게 말했고 그건 절대 내 문제점을 지적해주세요란 말이 아니었다. 해결책을 내달란 말도 아니었다. 그냥 나는 공감이 필요했다.

연애특강 같은거 보면 주구장창 나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여자가 친구랑 싸우면 절대 해결책 내지 말고 공감하면서 "걔가 쌍년이네."라고 말하라고. 편 좀 들어달라고. 하지만 상담소 여직원은 어째서 여자였는데도 그런 말을 했던 걸까? 덕분에 친구가 고민 늘어놓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배우긴 했다.

 

 

상담소 직원은 절대 해서는 안될 말만 골라 했던 거다.

"청소년 때가 다 그렇죠. 친구들하고 많이 싸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럼 내가 질리도록 보는 '27세 여자인데요ㅠㅠ 베프가 제 남친이랑 바람을 피웠답니다 엄청 싸우고 절교했는데...속이 갑갑하네요'란 사연들은 사실 전부 다 청소년이 보낸 건가?

내 또래가 "요즘에 친구들하고 문제 생기는 애들 많은 거 같아. 나도 그렇다ㅠㅠ 우리 인생 왜 이러냐"라고 했으면 공감해준다고 생각했을텐데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는 뭐지? 난 이런 말은 내 주위에 너무 멋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듣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전화에서까지 들을 줄은 몰랐다. 이게 다가 아니다.

 

 

"못 가진 것보다 가진 것을 생각하는 게 어떨까요? 이대로의 삶에 만족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한다면 그런 친구는 또 생길거에요."

이 일 하시면서 당신 말 듣고 몇 명이나 죽었을지 생각해보셨어요? 목구멍까지 이 말이 나왔지만 내가 생각해도 심한 말 퍼붓는 싸이코패스적인 발언이어서 관뒀다.

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진심은 아니겠지. 자기는 이런 일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아니면 진짜 이런 생각으로 이겨냈으니까 이런 말을 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또 고맙고 위로가 되긴 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거였어.

 

 

"...네. 충고 감사해요. 일이 많이 바쁘시죠?"

"아, 네. 실제로 자살 생각 중이신 분들이 많이 전화하시니까."

 

피날레! 폭죽! 불꽃놀이!

그럼 나는? 난 친구랑 싸운걸로 찡얼대는 여고생에 불과하다 이건가? 어떤 의미로는 진짜 참신했다. 난 나름 나에게 위로나 조언 비스무리한 걸 해줬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은 그냥 피곤하고 바빠서, 난 그냥 친구랑 싸워서 칭얼대는 피곤한 애니까 대충 얼버무린 거라고는 생각도 안해봤으니까.

 

 

나는 통화를 마치고, 이런 말 하면 안되지만 정말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펑펑 울었다.

그리고 면도칼을 찾아서 화장실로 직행했다. 욕조에 물을 받는데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내 인생은 악몽과도 같으니 죽음으로서 이 악몽에서 깨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하지만 나는 살아있고 이유는 좀 더 나중에 말씀드릴 예정이다.

 

 

사설이 너무 길어졌는데 나는 무엇을 쓸까 하다가 이 일을 떠올렸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 내 입장에서 대사를 하나하나 보니 "진짜 이런 말 밖에 안 나오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반대 입장에서 보면 여자는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고도 무난한 조언을 했을 뿐이에요. 다시 대사를 읽어보세요. 독자분들도 이런 말 자주 사용하지 않아요?

ㅋㅋㅋㅋ만약 당신이 읽으면서 '? 나도 자주 하는 말인데; 얘 엄청 예민하네.'라고 생각하셨다면 그것도 정답.

눈치 빠른 분들이시라면 유머사이트에 자주 올라온 글이 하나 생각 나실거다.

 

 

남자가 싫어하는 여자들의 말.

1.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 그걸 몰라서 물어?

2. 뭘 잘못했는데? 이유를 말해봐

3. 그걸 지금 알았어?

4.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게 문제야.

 

눈치 슬슬 채실 때 되셨을거다. 여자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내 글에서 나온다.

상대방을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퍼즐을 맞추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이유도 모른채 미안하다고 하니까.

물론 퍼즐을 맞추다보면 눈이 멀 것 같고 다양한 이면들에 질려 복잡하기만 하고 진짜 상대의 본질을 모르니 답답할거다.

그러나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더 답답한 건 힌트 다 줘놓고 퍼즐 위치까지 알려주는데 복잡하다면서 끙끙대는 자신 아닐까? 

(사실 저번 글에서 이런 생각을 해주시는 분 있을까 조금 기대했는데ㅋㅋ저번 퍼즐은 이번 글을 위한 추진력.)

여자들도 이런 말 하기 싫어하는 사람 되게 많다. 나도 여자고 여자다움이 폭발하는 여고생이지만 이런 말 들으면 짜증부터 난다. 하지만 꼭 이런 말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말하고 싶은 건 하나다. 이런 말 짜증난다고? 더 짜증나는 건 너야.

조금이라도 상대방 생각하고 알려는 노력을 해봐. 그 사람 입장에서 공감 좀 해줘. 아무것도 아니어 보이는 일들도 하나하나 합쳐지면 스트레스가 되는 법이다. 내가 그랬듯이.

나도 이런 것에 무척 서툴다. 하지만 성찰한 이상 조금이라도 실현시켜볼 생각이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것. 공감해주는 것. 이거 하나만 잘하는 사람만 있어도 나도 조금이라도 세상 살고 싶어질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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