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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용

가입 인사 겸, 단편 하나 올려봅니다.

앞으로 월요일에 글을 쓰게 된 롤랑바르트라고 합니다. 닉은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의 이름입니다.

책을 좋아해 항상 읽기만 하다가, 언젠가 부터 글을 직접 써 보는 것이 취미가 되었습니다. 제 품에만 넣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꺼내 보려고 초대 받았습니다.


간단하게 제 소개를 하자면, 사는 곳은 천안이고 나이는 서른 하나 됐습니다. 남자구요.

천안은 참 정신없는 도시에요. 빠르고 불편하고, 외로운 도시입니다. 하지만 매력은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정확하게는 찾지 못했지만 말이죠. ㅋㅋ


지금 부터 보여드릴 단편은 2년 쯤 전에 썼던 글입니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끄럽지만, 딱히 제 글의 정체를 밝히기에는 그것만한 것이 없네요.


처음 올리는 글인데 글 속에 욕설이 좀 많아서 걱정이에요. 너그럽게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한번도 교정을 보지 않아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문장의 진행이 매끄럽지 못 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양해 바래요~


매서운 질타와 평가도 환영합니다.



제목은 "보름" 입니다.



넓적하고 기다란 쇳덩이가 동력을 받아 원을 만들었다. 초가을의 찬 기운에 숨이 죽어 버린 풀들은 회전체에 닿자 마자 대지에 조각조각 흩어졌다. 잘려 나간 줄기의 단면에서 진득한 액체가 나왔고, 잔혹한 무기를 휘두르는 해결사의 등에서는 노동의 땀이 흘렀다. 새참을 먹고 난 뒤 잠시 휴식을 가졌던 팔다리가 다시 강행되는 노동에 예초기의 비명과 함께 진동하고 있었다. 모터의 굉음은 RPM이 올라갈 수록 고막을 찢어버릴 기세로 귓바퀴로 감겨 들어왔다. 두삼은 산 주인 박씨의 얼굴을 흘기며 쳐다봤다. 주인은 굳은 표정으로 예초기를 두 손에 잡고 허리를 좌우로 움직였다. 땀 범벅이다. 두삼은 일을 부리는 주인이 함께하고 있는 터라 꾀를 부릴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새참으로 먹은 삶은 달걀의 노른자들이 신물과 함께 목구멍을 넘어 올라왔다. 대충 씹어 삼켰던 탓인지 덩어리들이 혀에 걸렸다. 두삼은 이물감을 느끼면서도 다시 그 덩어리를 소처럼 우물거렸다. 어제 주막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이라 생각하며, 그는 눈앞의 장록()을 베어 넘겼다. 늘어져 매달려 있던 열매가 터져 검붉은 액체가 눈이며 볼에 사정없이 튀었다. 예초기의 시동을 잠시 끄고 눈을 비볐다.

 

어이 시팔꺼, 뭐 들어갔네.”

 

 소매를 걷은 팔은 잘게 썰린 잡초 가루들이 잔뜩 붙어있었기 때문에, 그는 조금이나마 깨끗해 보였던 티셔츠 끝자락을 바지춤에서 꺼냈다. 모터오일과 기름때가 묻어 얼룩덜룩 한 천을 검지에 감쌌다. 불룩히 나온 뱃살을 내밀고 옷자락으로 눈을 비비는 모습이 그가 서있는 민둥산 같았다. 태양아래 까맣게 그을렸던 얼굴과 달리 오랜만에 볕에 드러난 그의 배는 우유처럼 하얬다. 눈에서도 맛을 느끼는지 시큼해서 제대로 눈이 떠지지 않았다. 쓸데없이 한참 눈꺼풀만 비빈 탓에 살이 따끔거렸다. 눈을 계속 꿈뻑거리며 눈물을 짜냈다. 조금 상태가 호전되어 자동으로 눈이 감기지는 않았다. 주머니 속에서 땀을 피해 비닐봉지에 안전하게 싸여있는 디스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매캐한 담배연기가 위액으로 쓰라렸던 목구멍을 쓸어 내리며 넘어갔다. 공기는 서늘했지만 햇살은 아직 여름처럼 따가웠다. 그는 가벼운 현기증이 났다. 혈액을 도는 담배연기 탓인지 일에는 항상 매정한 날씨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눈을 살며시 감고 도시의 미식가들처럼 담배와 짧은 휴식의 맛을 음미했다.

 

해 진다 두삼아 내일도 나오고 싶은거여?”

 산 주인 박씨는 자신의 엔진소리 때문인지, 비싸게 치른 하루 품삯 때문인지 메아리와 함께 두 번이나 큰 소리로 그를 다그쳤다. 산 바람이

 




두삼의 거친 뺨을 만졌다.

 


오빠는 수염도 안깎아?”

서울여자는 간지럽고 달콤하게 교태를 잘 부렸다. 두삼은 자신을 그녀의 손끝으로 어루만지는 느낌이 부드럽고 좋았다. 격렬함 뒤 채 식지 않은 온기 때문인지 그녀의 손끝이 차가웠지만 기분은 아주 달다. 온 몸을 술에 담그고 나온 뒤라 등뒤의 오래된 침대도 편안했다

- 에이 귀찮어, 뭐더러 깎냐? 잘 보일 사람도 없는디.

두삼은 아랫도리가 다시 불룩 해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항상 욕망은 주머니사정을 챙겨보지 않는다. 그는 창피함을 갓난아기 때 잃어버린 사람처럼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벌떡 일어섰다. 두삼이 일어나자 반사적으로 서울 여자는 속옷을 빠르게 주워 입었다. 속옷을 벗고 입는 것이 일이었던 여자는 절도 있고 간결한 움직임으로 어느새 옷을 다 입고 겉옷과 핸드백을 집어 들었다. 번화가 끄트머리의 싸구려 모텔 방에는 이유는 달랐으나 합의를 거쳐 섹스를 했던 남녀가 그렇게 몇 초간 어색한 숨을 섞었다

그 가방 비싼거 아니여?”

두삼은 능글맞게 웃으며 크게 박힌 명품의 로고를 가리켰다. 성냥이 오래되어 눅눅한지 불이 잘 붙지 않는다. 라이터를 찾아 침대이불을 들추는 그를 향해 서울여자가 라이터를 던졌다.

아니 이거 짜가야. 일할 때 그렇게 비싼걸 어떻게 메고 다녀.”

그녀는 실제로 진짜명품가방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말했다그리고 거울을 보며 화장을 다시 만졌다.

어디서 샀는디?”

가짜 명품가방을 보고 있는데, 20년이 넘은 인조 가죽 가방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군데 군데 찢어지고 장식에 녹이 슨 투박한 가방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그녀의 가방이 명품이라는 말에 그럴싸해 보였다.

동대문 노점

여자는 입을 오므려 인중을 넓게 폈다. 두삼은 생전 가본 일이 없는 동대문을 머리에 심어두었다. 그리고는 담배를 그대로 입에 물고 침대에 널브러져 눈을 감았다. 서울여자는 화장대 거울에 비친 두삼의 알몸을 슬쩍 쳐다봤다. 다섯 번. 문득 이 시골 손님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언제까지 자신을 찾을지 생각했다. 머리카락을 손으로 몇 차례 쓸어 넘겼다. 그녀의 잡생각들도 함께 땅에 떨어졌다. 의식처럼 향수를 흠뻑 몸에 뿌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울 속의 누군가를 향해 활짝 웃었다.

간다.”

그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서울 여자는 싸구려 향수 냄새만 방안 가득히 남기고 떠났다. 소리도 함께 데려갔는지 조용해진 방에는 온전히 그만 남아있었다. 오래 물고 있었던 담배필터가 침으로 축축했다.

씨발년 창문이나 열고 뿌리지.”

누워서 라이터를 켰다. 빨리 담배냄새를 방안 가득 채워 서울여자의 흔적을 없애고 싶었다.

한참을 생각없이 태우던 두삼의 검지에 불꽃이 닿았다.

 

 

"앗 뜨거 씨발." 

 

 

두삼은 뜨거운 엔진에 장딴지 안쪽을 데이자 마자 오토바이를 받쳐두지도 않고 내던졌다.

오토바이를 감싸고 있던 플라스틱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시동도 채 끄지 않은 오토바이가 길가에 쓰러졌다. 죽음을 앞두고 주인 앞에서 나지막이 신음하는 개처럼, 낡아빠진 그의 애마는 애원과 고통이 섞인 엔진소리를 냈다. 그는 조금 전 마당에서 고추를 널던 노모를 뿌리치고 면()에 나오는 길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낡은 유모차를 붙잡지 않고는 몇 발자국 딛지도 못할 만큼 굽은 허리를 더욱 한껏 구부리고 고추를 펴 널고 있었다.

"두삼아 갈쿠 가져와서 이것 좀 펴. 허리 아퍼서 못하겄응게."

어머니가 구부러진 손으로 비닐 포장 위의 덜 마른 고추들을 더듬는 모습이 그는 안쓰러웠지만

마침, 면에 나가서 술을 한잔 먹을 생각으로 오토바이에 오른 참이었다.

"에이. 엄니 그거 놔두라니께, 구름꼈는디 뭐더러 고추는 넌댜."

그는 술을 포기 할 수 없어, 내리지도 못하고 노모에게 소리만 질렀다.

"곰팽이 나니께 그러지. 어디를 뒤질러 갈라고 또 오도바이는 줘 타는겨."

원망을 가득 담은 노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두삼은 그 떨림이 어머니가 기운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가늘게 말려있던 파마머리는 계속 풀리는데 어머니의 허리는 다시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 장날이랴, 엄니 좋아하는 서대나 몇 마리 사올라고."

노모는 아들의 핑계가 항상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술은 작작먹어, 또 오도바이 넘어져서 까지고 오지말고."

오십이 가까운 나이에 장가도 못간 작은아들의 유일한 낙을 만류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면서도 늘 술에 취해 비틀비틀 마당을 걸어 들어오는 그를 보면 가슴이 쑤셨다.

두삼은 눈 앞의 오토바이에서 고추를 말리던 노모를 보았다. 꺼질 듯 말듯 돌아가는 엔진 소리가 짜증이 났다. 한참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는 오토바이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떨림이 멈추고 시동이 꺼졌다.

 

 

"그나 저나 두삼이 말은 잘 달렸냐?"

주말마다 가는 포장마차의 늙은 주인이 머릿고기를 썰어 내 주며 경마의 성과를 물었다. 두삼은 나무젓가락을 대충 뜯어 고기를 허둥지둥 입에 주워 넣었다

"땄으면 여자끼고 술먹지, 여기 왔겄남"

언제, 어떻게 삶아놓은 고기인지 돼지 비린내가 심하게 나는 고기였지만 술과 함께 넘기니 먹을 만 했다. 두삼은 매주 주말마다 아침 첫차를 타고 경마장에 왔다. 가끔 따는 날도 있었지만 아닌 날에는 꼭 이 집에 와 술을 한잔씩 마셨다. 이제는 외상을 달아놓고 마실 만큼 몇 달 꼬박꼬박 오고 있는 참이었다

"외상값은 오늘 긋고 가는 거냐?" 

파마를 오늘 말고 나왔는지 주인 여자에게서 파마약 냄새가 심하게 났다

" 에이, 못먹겄네, 얼레 뭔 냄새가 이렇게 난댜. "

두삼은 마권을 사느라 차비를 제외한 돈은 모두 탕진한 참이라 외상은 커녕 지금 먹는 술값도 못 낼 처지였다. 투정을 부리며 젓가락을  테이블에 던지고는 돈 없다는 소리는 못하겠는지 성질을 냈다

"지랄 말고 빨리 주서먹고 집에나 들어가."

두삼은 말없이 바닥에 떨어진 흙 묻은 나무젓가락을 주워서 후후 불었다. 그리고 손으로 대충 훔친 뒤 남은 고기와 술을 빠르게 입으로 가져갔다. 모래가 어금니 사이에서 씹히는 이질감을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삼키고는 주인 눈치를 보며 빈 소주병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한 시간 만에 두삼은 머리끝까지 소주가 차오른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폈다.

" , 가요

점퍼를 어깨에 둘러메고 주인에게 손짓하며 포장마차를 나섰다. 외상값은 커녕 오늘 먹은 술값도 못 치른 터라 차마 눈을 마주치기도 어려워, 취한 두발을 재촉했다. 동네였으면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 될 노릇이었지만 두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온 낯선 동네에서는 무턱대고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두삼의 어깨를 치며 퀭한 눈으로 경마꾼들이 포장마차쪽으로 걸어갔지만, 그와 그들은 미안하다는 말도, 눈길도 서로 교환하지 않았다. 생기 넘치게 트랙을 달리던 말에 자신들의 생명을 모두 주어버린 경마장의 사람들은 시체처럼 어딘가를 향해 발을 떼고 있었다. 두삼은 도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택쉬이! 택쉬이!!"

 

두삼은 정신을 잃은 노모를 등에 업고 큰길 가에서 읍내를 향하는 택시를 불렀다. 택시는 한대도 지나가지 않는 길에서 그는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면서 택시를 외쳤다. 축 늘어진 노모의 팔이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바람을 맞은 버드나무 가지처럼 힘없이 흔들렸다. 두삼은 문득 등에서 어머니의 심장소리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무시해 버렸다

" 그릉게 밤은 왜 줍는댜,  밤주서다가 누구 쳐멕일라고 그려."

낡은 트럭 한대가 길가에 멈춰서고 빠르게 운전기사가 내렸다.  옆 마을 주막에서 가끔 아는 체 하던 과수원집 아들이었다

"아저씨, 할머니 왜이래요."

말할 겨를도 없이 두삼은 트럭 뒷좌석에 노모를 눕히고 보조석에 올라탔다

" 빨리 성심병원"

과수원집 아들은 누군가의 죽음이 두려워 겁에 잔뜩 질린 눈으로 트럭을 몰았다. 10분쯤 달리던 트럭의 속도가 읍내로 가는 다리 근처의 신호에 걸렸다. 정신없이 운전하던 과수원집 아들은 룸미러를 힐끔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아저씨. 할머니 목이요..."

두삼은 반쯤 정신이 흩어져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그가 일을 일찍 마치고 마당에 들어서자 부엌에서 나야만 하는 밥 냄새가 나질 않았다. 노모가 반찬 없다며 매일 넣는 것 없이 끓여주던 된장찌개 냄새도 없었다

" 노인네 늦게꺼쩡 일 허지 말랑게, 어디갔댜."

심장이 이유도 없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두삼은 대문을 발로 차고 허둥지둥 뛰어 몇 그루 되지 않는 밤나무 밭으로 달려갔다. 노모가 아침부터 큰 형 얘기를 꺼낸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두삼이 중학교도 못 가고 집에서 농사를 지을 때부터 큰형은 도시로 나가서 공부를 했다. 동네에서는 인물이 났다며 두삼의 부모들에게 형식적인 부러움의 말들을 꺼냈고, 부모들은 우쭐해 지곤 했다.

대학교에 들어갈 때가 될 무렵 부 터 큰 형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큰형은 필요한데 수습이 안됨) 아니 정확하게는 돈이 필요할 때마다 전화가 왔고 두삼의 부모들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심정으로 돈을 부쳐주고는 했다

두삼의 아버지는 평생 남의 머슴살이를 하며 살았다. 빌린 논에 벼 농사를 지었고, 빌린 밭에 콩을 심었다. 땅 주인네에게 몇 섬의 쌀과 콩을 건네주고 나면 다섯 식구가 일년 동안 빠듯하게 먹을 수 있는 정도였다. 두삼이 공부가 하기 싫어 중학교를 안가고 농사를 짓겠다며 아버지를 따라다녔을 즈음, 어느 겨울날 그의 아버지는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의 산으로 두삼을 데리고 갔었다

"여기가 최가네 종종땅이여, 두삼이도 알지?"

두삼의 아비는 하얗게 눈이 덮인 산등성이를 가르키며 제 아들을 바라보았다늘 피부가 약해 볼과 손등이 터졌던 두삼을 보면서, 아버지는 자신을 꼭 닮은 두삼에게 연민과 뜻 모를 분노를 동시에 느끼곤 했다.

두삼은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자기 입에서 연기가 나온다는 것에 감탄 하고 있을 때, 빨갛게 부어 오른 뺨에 굳은살 박힌 두툼한 손이 충돌했다. 영문도 모를 따귀를 맞은 두삼은 순간 아픔보다 소리에 놀라 멍한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육시럴늠, 으른이 말하면 말을 들어 쳐먹어야지."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한 어린아이는 아비의 무서움에 벌벌 떨었다. 매일 농사일이 끝나면 얼큰하게 약주를 하고 들어오던 만식은, 늘 부인과 둘째 아들을 때렸다. 무서운 표정과 공포는 없었다.

눈에 눈물이 잔뜩 고여 만식은 자신의 부모님을 원망했다. 잔뜩 취해 마당 구석의 샘에서 오줌을 누면서도, 대문에 걸려 넘어져 이마가 터져 피를 흘리면서도, 만식은 부모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해댔다.

두삼의 모는 건넛방에서 문고리에 수저를 걸고, 안방으로 통하는 미닫이 손잡이를 두 손으로 꼭 잡고 울었다. 두삼은 곁에서 우는 어미의 모습이 서러워 울었다. 만식은 매일 술에 취해 들어올 때마다 그렇게 눈물을 옮겨 날랐다.

"저기 구석쟁이, 비탈진디 있잖여, 저기를 팔어줬응게 저기다 밤남구를 심으야겄어."

두삼은 가파른 경사가 진 냇가 바로 위의 산 비탈을 바라보며 하얀 입김을 내뿜었다

"야중이 니가 나이먹어서 밤주서다 팔면 먹구살때 돈좀 보태겄지?."

이듬해 가을 만식은 밤나무를 심었다. 그는 밤나무는 가을에 심어야 죽는 놈이 없다고 두삼에게 일러주었다. 밤나무는 잘 크다가도 어느 순간 모든 잎사귀를 남김없이 떨군 채 말라 죽었다. 땅이나 병이 문제라면 근처의 나무들도 죽어나가야 정상이지만, 갑자기 이유도 없이 많은 나무들 사이에서 말라 죽는 나무가 나왔다. 사람 키의 몇 배는 되 보이는 큰 나무가 잎사귀 속 가지를 앙상하게 모두 드러내고서 죽은 모습은 쓸쓸했다. 산새들 조차 죽은 밤나무에는 앉아 있지 않았다. 밑동만 남기고 베어다가 아궁이에 집어넣기 전 까지 생명 넘치는 산의 반대편에서 죽음을 견디고 있었다. 만식은 그런 밤나무처럼 죽었다. 그 해에 밤나무를 심고 나서부터 만식은 겨울 내내 시름시름 앓았다.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고 미음도 잘 넘기지 못하더니, 몸이 바짝 말라갔다

"두삼아 죽은 밤나무 있냐? 겨울은 잘 버텼는가 모르겄네."

새까맣게 불에 탄 논두렁에 초록의 새싹들이 삐죽 삐죽 고개를 내밀 즈음 만식은 두삼에게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만식은 대답도 듣기 전에 서둘러 눈을 감았다.

 

 

두삼은 눈을 찡그리며 밖으로 터져 나오는 슬픔을 씹어 삼켰다.

 

"돌아가셨습니다. 아마 발견하셨을 때 이미 사망하신거 같습니다."

노모는 가파른 비탈에서 밤을 줍다가 실족을 했다. 그렇게 머리부터 넘어지면서 목뼈가 완전히 부러져 죽었다. 굽은 허리로 비료포대자루를 힘겹게 옮겼을 노모가 떠올랐다. 집게질도 온전치 않아 늘 목장갑 하나만 끼고 밤송이 사이를 손으로 헤쳐 밤을 줍던 노인이었다. 늘 손바닥에 박힌 가시를 빼려 바늘에 머릿기름을 묻혀가며 침침한 눈을 잔뜩 찌푸린 채 손바닥의 엉뚱한 살을 팠다. 보다 못한 그가 거칠고 두툼한 손으로 가시를 빼 보려 엄지와 검지를 아무리 움직여도 가시는 잡히지 않았다. 우두커니 박힌 가시와 그가 한참 씨름하다 보면 성질이 났다.

두삼 눈앞의 차갑게 식은 어머니의 얼굴은 보이지도 않는 가시를 빼내려 바늘을 움직이던 그 때의 얼굴과 신기하게도 꼭 닮아 있었다. 노모의 시신을 두고 병원에서 나오니 한밤중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손전등을 들고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주웠던 비료포대를 메고 왔다

"밤이냐구 버레 잔뜩 먹은걸, 뭐더러 주섰나 모르겄네."

두삼은 삐걱거리는 마루에 털썩 앉아 괜찮은 놈을 골랐다. 그리고 껍질을 입으로 벗겼다. 떫은 속 껍질 때문에 침이 나왔다. 이빨로 대고 밤을 돌려가며 부드러운 속 껍질을 벗겼다. 노란 밤 알맹이가 그의 손에 쥐어졌다. 부엌 냉장고 문을 열고 반주로 먹다 남은 소주병을 꺼내왔다. 텁텁한 입으로 소주병을 기울였다. 술에서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또 노모가 술을 버리고 물을 채워놓은 것이 분명했다. 깐 밤을 입에 넣고 깨물었다

오도독하고 씹는 소리가 경쾌하게 마당에 퍼져나갔다그는 조금 다를 거라 생각했던 밤의 맛이 너무 똑같아 실망스러웠다.

몇일 동안 두삼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인기척을 감추고 지냈다.

 

 

첫날 일을 마치고 두삼은 산주인의 집에서 밤 늦게 까지 술을 마셨다. 박씨는 내일의 일이 걱정이었다. 눈치가 빠른 박씨의 아내는 한숨을 쉬며 냉장고의 술병들을 꺼내어 

쌀 단지에 넣어버렸다.

 "어이 형수!, 술 없어. !"

박씨는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두삼을 쏘아보았다.

"집이 있는거 다 쳐먹고 무슨 술을 달랴, 여기가 주막이여, 술집이여?"

두삼은 접시에 남은 배를 손으로 집어 빠르게 입에 넣었다. 배즙이 입에서 튀어나와 턱 밑으로 흘러내렸다. 손으로 턱을 문질렀다. 찐득한 감촉이 남아 바지에 손등을 문질렀다.

"우리는 고기 없으면 술 더 안먹어."

더 이상 술을 얻어 마실 수 없겠다는 생각에 두삼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오도바이 놓고가, 태다 줄팅게."

박씨는 현관문을 위태롭게 밀고 나서는 두삼을 쳐다보며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됐슈, ! 내가 하루 이틀 먹구 댕기간디? 존나게 잘타 내가 오도바이는."

두삼은 조금도 믿음이 생기지 않는 말을 현관에 두고 나왔다. 박씨도 축사에 가서 소 밥을 줄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신발을 신고 현관 계단을 내려오며 

담배에 불을 붙이려 멈춘 두삼의 등짝을 세게 때렸다.

"정신 차려, 이 미친늠아."

부적을 붙이는 무당처럼 박씨는 걱정을 두삼의 등에 매달았다. 그는 고개를 넘어 갈 때 까지 두삼을 지켜볼까 생각했다가, 소들의 배고픈 울음소리에 축사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술을 얼큰하게 마셔서 두삼은 속도감이 나지 않았다. 손목을 끝까지 비틀어 당겨 오토바이의 속도를 올렸지만 주변의 풍경들은 천천히 그를 지나치고 있었다. 고개를 넘어 자신의 동네로 가는 삼거리에서 그는 핸들을 빠르게 틀었다. 시멘트로 깔끔하게 정돈된 수로 옆 도로였지만 여름의 장마에 쓸려 내려온 모래들이 브레이크를 잡은 뒷바퀴에 닿자 순식간에 중심이 무너졌다. 그는 애마와 함께 도로를 쓸며 수로 밑으로 떨어졌다.

푹신한 수로의 잡초들이 아니었다면 크게 다칠만한 사고였다. 어렸을 때 눈 안에 가득 찼던 별들은 누가 빗자루로 쓸어버렸는지, 침침한 두삼의 눈에는 보름달만 희미하게 빛을 내 뿜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아무의 도움도 없이 고장난 오토바이를 끌고 집에 돌아올 힘이 생겼다. 자신의 신세를 보니, 지팡이 대신 낡은 유모차를 밀며 위태롭게 밤나무밭을 향하던 노모가 떠올랐다.

가을 밤의 찬 공기에 취기가 조금 가셨다담배 때문에 라이터를 켜자 피투성이 된 손등이 자세히 보였다. 늦은 밤이었지만 혹시나 피떡이 된 자신을 쳐다 볼 까봐 걱정이 되었다. 왼쪽 다리가 걸을 때 마다 쑤시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빠르게 걸음을 재촉하며 아직 불이 켜진 창문들을 주시했다. 집에 도착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 부숴진 오토바이를 메치고 발로 바퀴를 세게 몇 번 찼다.

덕분인지 화가 조금 가라앉았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마당의 샘에서 몸에 묻은 피를 간단히 씻어내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누웠다.

차가운 비닐 장판이 뺨에 늘러 붙었지만 생각보다 쉽게 잠에 빠졌다.

"아들내미. 점슨 먹자."

친구와 새벽까지 술을 마셨던 두삼은 11시가 넘어서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넓은 대접에 담긴 콩나물국에 족히 두 명분은 되보이는 쌀밥 한 공기가 상위에 올려져 있었다.

"얼레 무슨 머슴 밥을 준댜."

두삼은 눈꼽을 떼며 입맛을 다시고는 밥상 앞에 고쳐 앉았다. 그는 풀린 눈을 하고 국을 연거푸 입에 떠 넣으며 갈증을 풀었다.

"집이서 질른콩나물잉게 시원헐껴."

그가 술에 취하는 날이 점점 잦아질 수록 노모의 잔소리는 줄어 들었다그가 담배를 처음 배워 멋모르고 피우던 어린 시절에도 비슷했다. 피우던 갑수가 늘어나던 어느 날 노모는 말없이 문지방 너머로 재떨이를 밀어주었다

금새 콩나물국만 두 그릇을 비운 두삼은 상을 물렀다. 몇 술 뜨지 않은 수북한 밥을 보며 노모는 속으로 한숨을 뱉었다. 뜨거운 덩어리가 가슴에 걸려 숨이 가쁘고 통증이 왔다.

"어허, 잘먹었네."

그는 이빨을 쑤시며 돌아 앉아 마당 구석의 개를 쳐다 봤다. 분명히 자신이 데리고 온 기억은 없었지만 비스듬하게 세워 놓은 나무판자 밑에 몇 일 전부터 개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래턱이 앞으로 삐져 나와 볼썽사나운 인상에 눈도 사나운 맛이 없고, 털도 얼룩 덜룩한 잡종이었다. 성질은 괴팍한지 목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묶어 놓은 기둥 주변을 뛰어 다녔다. 힘차게 짖으며 힘을 쓰다가도 이내 지치는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엄니, 그거 놔둬 내가 치울 텡게, 아니 근디 개는 어디서 났댜?."

상을 들어 보려 던 노모는 안되겠는지 한숨을 한번 쉬었다. 마당의 개는 새로 이사 온 회관 옆집 사람이 가져다 주었다고 했다.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귀농을 한 부부였는데 연고도 없는 곳에 땅만 사서 들어온 상황이라 마을 이곳 저곳에 눈 도장을 찍는 것 같았다. 기왕이면 인상 좋은 놈을 받았으면 싶었지만, 어짜피 가끔 오는 개장수에게 팔거나 입으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크지 않았다. 아니이 마을에서 누구에게 노모가 선물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사실 동네 사람들에게 두삼의 어머니는 평판이 좋지 않았다. 주인이 있는 산에 올라가 봄이면 어리고 연한 고사리며, 취나물, 심어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둥글레 뿌리까지 뽑아 갔다

그렇게 가져온 나물과 뿌리들을 잘 말려 장에 내다 팔았다. 남김없이 팔아도 차비를 제하면 만원 남짓한 돈이 었지만, 노모는 한번도 거르지 않고 5일장에 나갔다

아마 허리가 어린 고사리같이 굽고, 말린 나물처럼 몸이 앙상해지기 시작한 무렵이 5일장에 더 이상 나가지 못하게 된 날이었을 것이다.

 농사일에 바쁜 시골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하루 종일 경비를 설 수가 없었다. 그저, 마을 회관에 함께 모였을 때 서로의 피해 사례를 늘어놓으며 욕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어느 날은 이웃집에 사는 한씨가 찾아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떠밀리다시피 왔다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한 씨네 채전 밭에 들깨를 좀 심어 놓았는데 깻잎을 누가 다 따가서 들깨 농사를 망쳤다는 얘기였다.

두삼의 모는 인기척도 없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두삼은 삼자대면을 해 보자며 우기고 따졌지만, 정작 자신의 어머니를 찾을 길이 없어 소리만 지르며 집을 살폈다

그는 어머니가 저지른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로 어제, 노모가 된장 독에 깻잎을 잔뜩 가져다 박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봤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더욱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날카롭게 한씨를 쏘아봤다. 동시에 마음속으로는 그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외쳤다.

가진 것 배운 것 없이 자라서 쉰이 다 되도록 장가도 가지 못하고 노모와 단 둘이 지내는 모습을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고 있다고 마음을 되새김질했다.

목소리가 점점 커져 옆집까지 들렸는지 한씨의 부인이 팔을 내두르며 뛰어왔다부인은 남편의 팔을 잡아 당기며 소용없다는 듯 인상을 썼다

조금 전 까지 별로 큰 소리 없이 타이르던 한씨는 부인의 등장과 함께, 언성의 높이를 두삼과 맞추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불만을 품고 있었다며, 두삼이 모르는 비밀을 폭로하듯 말했다.

한씨는 걷는 것도, 끌려가는 것도 아닌 모양새로 두삼의 눈에서 천천히 멀어져 갔다

그는 침을 크게 한번 뱉고는 한씨네 집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니미"

 

 

 

창기가 동남아 여자라도 괜찮다면 삼백만원에 자기가 아는 곳에 부탁을 해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창기는 제 앞의 형이 결혼을 하지 못했던 이유가 늙은 노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지 1년이 지났으니, 이제 두삼이 가정을 꾸리고 제대로 사는 모습도 보고 싶었다.

"먹고 죽을래도 읍써, 지랄 마."

두삼은 막걸리 한 대접을 단숨에 들이키고 트림을 했다.

주막집 딸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식당 한 켠의 방에서 잔뜩 차려 입고 나왔다. 고등학생이거나 갓 스무살 남짓 쯤으로 보였다.

땀 냄새 나는 두 손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위태로운 길이의 치마에 높은 구두를 신고 성큼성큼 걸어 가게 미닫이 문을 열고 나갔다.

소녀가 사라진 방에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대파를 다듬던 식당 여주인이 급하게 다듬던 파를 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집 나갔다가 어디서 낳아 왔댜."

창기는 식당 주인의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 해 주었다. 두삼은 어색한 공기 속에 흐르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탐탁지 않았다.

더는 마시지 않고 창기의 트럭을 얻어 타 집으로 왔다. 대문을 닫고 나왔다고 생각 했는데 문이 열려있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두삼이 마당에 들어서자, 마루에 한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알록달록한 짐가방을 발 밑에 두고 책 가방도 하나 둘러 메고 있었다.

눈과 코가 막내를 꼭 닮아 있었다

"외삼촌?"

오래된 장독 뚜껑 밀었을 때 날 법한 낮은 목소리가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목소리만 들어서는 슬픈지, 기쁜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는 말없이 휴대폰을 내 밀었다. 이미 막내에게 통화가 연결 중 이었다. 몇 번의 신호음 뒤에 반가운 목소리로 막내가 전화를 받았다.

"오빠!, 얼마만이야 이게, 나 일이 얼마나 바빴는지 엄마 돌아가시고 난 뒤로 통화를 못했네."

"뭐여..."

두삼의 조카는 이런 언쟁이 흔한 일이라도 되는 것 처럼, 이어폰을 귀에 걸고 크게 노래를 틀었다. 막내는 두 번째로 이혼을 했다고 고백했다.

첫 남편과의 아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의 남자에게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싫다고 말하고는 첫 인사와 다르게 눈물 섞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양육비는 보탤 테니 시집가기 전 까지만 꼭 잘 부탁한다고 말 하고 동생은 전화를 끊었다. 그는 자기 자식과의 인연이 통화 종료를 누르는 것으로 쉽게 끊어진 다는 것이 놀라웠다.

"밥은?"

아이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가방을 뒤적여 작은 고추 참치 캔을 꺼내 보였다.

"이것만 있으면 먹는데.."

조카는 삼촌의 눈치를 살폈다

밥상을 차리며 계속 빤히 조카를 쳐다보던 두삼은 아이가 자신의 얼굴도 조금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내 막내보다 조금 더 닮았다고 생각을 고쳤다. 주막에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두삼의 귀까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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