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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집사의 하루3

 

리배 병원에가다

어린 녀석을 껴안고 잠들고 두어시간 뒤에 뭔가 퀘퀘한 냄새에 잠이 깼다. 

"이게 뭔 냄새야. 너 설마 쌌냐?" 

하지만 아무리 봐도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애기야. 넌 아무냄새도 안나?" 

 반쯤 감긴 눈으로 쳐다보는 녀석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다리..꼬리... 마른 똥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하아..왠 똥이... 이걸 어쩌지?' 

딱 보기에 태어난지 한달도 안돼보이는 녀석을 목욕시키자니 겁이났고 그렇다고 그대로 두자니 내가 죽을 맛이었다.

안되겠다. 그냥 씻기자.

 뜨거운물에 수건을 담궈 따뜻하게 만든 물수건으로 닦아주니 왠걸? 가만히 있는다.

 "너도 역시 고양이구나. 깔끔한게 좋지?"

 눈에 보이는 부분을 씻어낸것 뿐이지만 냄새는 많이 가셨다. 

"이제 자자. 나 세시간 뒤면 출근이야. 자자"

한번 깬 녀석은 안잤다. 그리곤 이불 위를 아장아장 걸어다니다 자기전에 덜어놓은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아니 거의 마시기 시작했다. 

"애기야. 숨은 쉬면서 먹어.ㅋㅋㅋ" 

뭔가 흐뭇했다. 자식 먹는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부모마음이 이런것일까?

난 그렇게 흐뭇해 하고 있는데 정작 녀석은 지옥의 문을 열고 있었다.

 "니양!!!삐양!!!" 

배가 차서인지 전보다 울음소리가 우렁차다. 

'망할 잠은 다잤네...'

"기운이 넘치는구나? 그런데 이름을 뭐라고 짓지?"

 일단 직감이다. 그저 이녀석의 이름에 바라는 바가 조금 담기길 바랄뿐이다.

 건강한 녀석. 힘쎈 녀석. 딱 지금은 그것만 바랄뿐이다.

그때 생각난 단어.

 '진격의 고양이? 그래..거기서 젤 쎈녀석 이름을 따자'

새벽형 인간들인 주변 지인들에게 묻기 시작했고 두가지 이름이 정해졌다.

 사내놈이면 리배. 계집애면 미카.

일본 만화인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리바이란 캐릭터와 미카사라는 캐릭터의 이름땄다.

사실 이때 리배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독일어로 리베는 사랑이란 뜻이니까...

그렇게 세시간 가량을 고민하다가 출근했다.

 일하는 내내 집에 두고온 녀석이 걱정이다. 새끼땐 변을 보는것도 어미손을 탄다는데...

 정작 하라는 일은 안하고 고양이 관련 블로그 웹사이트등을 돌아다니다 하루 일과가 끝났다.

평소 15분 거리인 자취방까지 걸어다녔는데 그날은 급한 마음에 버스를 탔다 (3정거장 거리). 

 자취방 문을 여는 순간 방안에서 녀석이 쪼르르 걸어나온다.

자기딴엔 뛰는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걷는거나 다를게없다.

 "아빠 기다렸어? 재밌게 놀았어?"

 방에 들어와 가방도 자켓도 벗어놓지않고 녀석의 밥그릇부터 확인했다. 깨끗했다.

 "잘먹고 잘 놀았구나!!오늘은 병원에 갔다오자"


 녀석을 품안에 안고 동네에 가까운 동물병원을 찾아갔다.

"어제 얘 주웠는데요. 제가 기를건데 뭘 먹이고 예방접종이나 그런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제 주우셨다구요? 근데 애기가 아직 생후 20일 전후인것 같은데.. 예방접종은 아직 무리구요. 일단 확인좀 해볼게요"

 어제 고양이카페 사장과는 달리 꽤나 친절하다. 수의사 품으로 넘어간 녀석도 그다지 긴장한것 같진않았다. 

 "보호자분 잠시 오시겠어요? 일단 전체적으로 건강에 이상은 없구요. 귀진드기가 있어서 이건 치료 받아야해요. 한달은 눈여겨 보시다가 이상하면 바로 병원으로 오세요. 그리고 이는 조금 난 상태니까 초유를 먹이셔도 되고 사료 불려서 주셔도 됩니다. "

 말을 마친 수의사가 녀석의 등에 주사를 놓는다며 좀 잡고있으랬다.

난리칠지도 모르니 꽉잡으란다. 나도 겁이 났다. 얼마나 아프길래...

 "아가 선생님이 주사놓을게. 조금만 참어" 라는 말과 동시에 주사바늘이 들어갔다.

"낑"

어라? 낮게 한번 울고는 가만히 있는다. 단지 귀가 뒤로 젖혀져있는게 겁먹은듯한 표정을 지을뿐이었다.

 "그런데요 선생님. 얘 남자앤가요 여자앤가요?"

"하하 얘 남자앱니다. 아직 모르셨나보네요"

"아 그랬구나. 감사합니다."

"네. 지켜보시다가 조금 이상하다 싶으시면 바로 오시구요."

녀석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품안에서 꼼지락 거리는 녀석을 간지럽히며 오느라 꽤나 기분이 좋았다. 

 자정쯤 이었나? 품안에서 곤히 자던 녀석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리곤 이불 한켠으로 걸어갔다.

'설..마?'

아니나 다를까 이불 한 귀퉁이에 다다른 녀석은 자세를 잡고 싸기 시작했다.

반쯤 내보내고 있는 녀석을 냅다 들어 화장실로 뛰어갔다. 묽은 변을 싼다. 

낮에 블로그에서 본 글들이 머릿속을 휘돌았다.

'새끼때 설사가 제일 위험해요' '새끼때 똥은 좀 묽어요' '노란 물똥을 싸요' 등등등...

 자정이다. 병원은 문을 닫았을테고... 내일까지 괜찮을까? 이런저런 걱정을 멍하니 하고있을때 녀석은 날 안심시키려는듯 발밑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리배야 아프지마...."

녀석을 품안에 안고 멍하니 앉아있으니 녀석은 내 가슴팍 위에서 그루밍을 해대기 시작했다.

어려서인지 아직 지몸도 제대로 못다룬다. 뒷다리를 그루밍하려다 그대로 구른다.

"하하하하. 애기야 몸은 가누면서해"

몇분 동안 기분 좋게 그루밍하던 녀석은 내 가슴팍위에서 그대로 잠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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